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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본은 없다, 단지 대화가 있을 뿐

[여기는 BIFF] <춘천, 춘천> 우연과 즉흥성이 만들어낸 독립 영화의 쾌거

16.10.15 18:12최종업데이트16.10.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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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화라고 해서 퀄리티까지 낮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어떤 지점에서는 블록버스터보다 더 나은 영화일 수 있다. 제작 여건의 한계가 때론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기도 하고, 투자 주체의 입맛에 맞추는 대신 감독이 진짜 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춘천, 춘천>의 한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된 영화 <춘천, 춘천>은 이같은 저예산 독립영화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제 춘천에서 나고 자란 감독이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춘천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두 가지 이야기를 엮어 만들었다. 서울에서 면접을 보고 춘천으로 돌아온 취준생 지현(우지현 분), 그리고 각각 가정을 두고 단둘이 춘천 여행을 떠난 40대 남녀 흥주(양흥주 분)와 세랑(이세랑 분)의 이야기다.

부산에서 나눈 춘천 이야기

13일 오후 4시 30분 부산 메가박스 해운대에서 영화 상영 이후 GV(관객과의 대화) 무대에 오른 장우진 감독과 이세랑, 양흥주 두 배우에게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전부터 춘천에서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 얘길 하고 싶단 생각이 있었다. 그러다가 제작년 추석을 앞두고 기차 타고 춘천 가는 길에 청량리역에서 수상한 남녀 커플이 옆자리에 탔다. 이어폰을 끼고 몰래 엿들었는데 불륜 사이인 것 같았고 계속 듣다보니 머릿속에 이야기가 번뜩였다. 그때부터 두 에피소드를 갖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춘천이 고향이다 보니 늘 지루하고 나가고 싶단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중년 커플에게는 춘천이 설레는 곳이고 대학생들한테는 MT 여행지이기도 하다. 춘천을 대하는 정서가 서로 다르다는 게 흥미로웠고 그걸 표현하고 싶었다." (장우진 감독)

<춘천, 춘천>의 한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영화로서 <춘천, 춘천>이 가진 가장 큰 동력원은 다름아닌 '우연성'에 있다. 감독은 "대부분의 장면이 대사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며 "단지 상황과 설정만 제시했을 뿐"이라고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컷 없이 주욱 이어지는 인물 간의 대화 장면들이 자연스럽다 못해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덕분이었다.

"구체적 대사는 전혀 없었고 A4용지 15장 분량의 트리트먼트(장소에 따라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 등을 써 놓은 원고)만 썼다. 인물들이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눌 것인지 정도는 정했는데, 촬영에 들어가면서 그것도 다 버리고 배우들의 즉흥 연기에 의존하기로 했다. 매일같이 배우들과 술 마시며 캐릭터에 대해 얘기하고 아이디어를 나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두 배우는 일부러 촬영 전에 미리 만나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은 영화에서처럼 서로 연락만 주고 받다가 실제로 청량리에서 처음 만났다." (장우진 감독)

열정으로 완성한 실험

<춘천, 춘천>의 한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이같은 실험적인 작업 방식은 배우들에게도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배우가 극중 캐릭터에 몰입해야만 가능했을 즉흥 연기는, 감독의 배려와 두 배우의 열정으로 빛을 발했다.

"(감독님이) 얘길 나누다 더 이상 나눌 얘기가 없을 때까지 집요하게 찍어서 속으로 '컷 안하나' 생각했다. 한 신을 커트 없이 한 시간 반 정도 찍었는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영화에 쓰였다. 제 개인적인 얘기와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얘기가 함께 녹아나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동하다가 좋은 장소가 있으면 '여기서 이렇게 한번 찍어볼까' 제안도 하고 그때그때 상황을 잘 활용한 영화다." (이세랑)

"감독의 배려 덕분에 청량리에서 (이세랑 배우를)처음 만났을 때 정말 떨렸다. 저는 진짜 좋은데 세랑 배우는 저를 안 좋아할까봐 걱정했다.(웃음) 촬영 시작하고 처음엔 무슨 얘길 꺼낼까 고민했는데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사건을 두고 어떻게든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 이야기를 듣고 상대 배우가 대답하는 내용에 따라 이야기가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양흥주)

<춘천, 춘천>의 한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단지 세 명의 스태프와 컴팩트한 장비들로 진행된 제작 과정 또한 (역설적이게도) <춘천, 춘천>의 완성도를 극대화한 지점이다. 인공조명 없이 자연광만 이용하는 등 별다른 '장치'를 첨가하지 않은 연출. "촬영 당시의 그 날, 그 순간에 집중하려 했다. 인물과 공간, 소리까지 하나의 풍경처럼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을 이룰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지 않았을까.

"제가 녹음, 촬영, 후반작업 전부를 혼자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처음 실행에 옮긴 작품이다. 신경써야 할 것도 많고, 기술적인 부분도 완전히 체득된 상태가 아니다 보니 버거울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앞으로 예산이 많이 필요한 '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춘천, 춘천>같은 영화도 계속 하고 싶다. 이런 영화라면 한두 명의 스태프만 갖고도 찍을 수 있고, 하다 못해 저 혼자라서도 만들 수 있다." (장우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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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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