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 허벅지 뽐내는 79살 '젊은 오빠'

인천 살다 전남 곡성에 새 둥지 튼 이광섭씨

등록 2016.10.08 20:17수정 2016.10.0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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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지금까지 딴 메달이 금메달만도 46개, 은·동메달을 합해 70개가 넘는다. 전국대회를 휩쓸다시피 하며 국내 사이클계의 큰나무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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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들녘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는 이광섭 씨. 올해 나이 79살에도 불구하고 그는 청년보다도 더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굴린다. ⓒ 이돈삼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농·귀촌이 늘고 있다. 고향으로 가는 나이도 중년층과 장년층에서 젊은층으로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반대로 드물지만, 나이 들어서 고향을 떠나온 사람도 있다.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칠봉리에 사는 이광섭(79)씨. 그는 나이 들어서 고향을 떠나 타향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9월 27일 우연히 만난 이씨는 팔순을 앞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머리카락만 하얄 뿐 몸은 영락없는 청년이었다.

"나이 들면 떠난 사람도 돌아오고, 또 고향을 안 떠나는 게 인지상정이죠. 저는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내가 정 붙이고 살고, 정 들면 거기가 고향인데요. 서로 보듬고, 돕고 사는 게 즐거움이죠. 지역을 가리지 않고요."

이씨가 삶터를 전남 곡성으로 옮겨온 것은 4년 전. 그동안 다녀 본 수많은 지역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인연이라고는 몇 해 앞서 곡성에 둥지를 마련한 큰딸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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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살고 있는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칠봉리 집. 그는 4년 전 인천에서 이곳 곡성으로 둥지를 옮겨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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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앞 골목을 벗어나고 있다. 겸면천변으로 자전거를 타러 가는 길이다. ⓒ 이돈삼


이씨의 태 자리는 인천이다. 가정동 산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30년 조금 넘게 살았다. 현재 콜롬비아 참전 기념공원이 있는 그 자리다. 삶터가 경인고속도로와 참전 기념공원 부지로 편입되면서 송림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40여 년 동안 석유 소매, 슈퍼, 당구장, 에어로빅 체육관, 건강식품 도매업을 했다. 자전거(사이클)를 탄 것도 그때였다. 자전거사랑전국연합회 초대 인천본부장을 지냈다.


"70년대 중반, 내 나이 37살 때로 기억해요. 우리나라 생활체육의 초창기였죠. 자전거가 내 몸에 딱 맞더라고요. 농사를 지으면서 탈곡기를 밟아댄 덕분인지, 내 다리가 자전거 페달에 빨리 적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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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크고 작은 자전거대회에 나가서 딴 메달들. 그 동안 딴 메달이 금메달 46개를 포함해 모두 70개가 넘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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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집에서 가까운 곡성 겸면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지난 9월 27일이다. ⓒ 이돈삼


이씨는 이태 뒤 생활체육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지금까지 딴 메달이 금메달만도 46개, 은·동메달을 합해 70개가 넘는다. 전국대회를 휩쓸다시피 하며 국내 사이클계의 큰나무로 우뚝 섰다. 동호인 팀끼리 경주를 하는 세미프로(경륜)에서도 활약했다.

"내 다리에는 자동차처럼 기어가 내장돼 있는가 봐요. 나만의 방법으로 근육을 사용해서 속도나 지구력을 적절히 제어를 했어요. 상체운동을 통해서 폐활량과 힘을 길렀고요. 자전거의 속도를 효율적으로 높일 수 있었죠. 체질에 맞았어요. 입상은 나중 일이고요."

자전거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알리고, 자전거 타기를 보급하는 것도 그의 일상이었다. 시쳇말로 자전거에 미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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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가을이 누렇게 물들어가는 남도의 들녘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지난 9월 27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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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타던 자전거를 잠시 멈추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9월 27일 마을 앞 겸면천변에서다. ⓒ 이돈삼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예요? 건강이잖아요. 직위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아요. 건강이 전부지. 자전거를 탄 것도 건강하게 살려고 시작한 겁니다. 틈나는 대로 봉사활동도 하고요."

이씨는 곡성에 내려와서도 자전거를 탄다. 집 부근의 겸면천과 섬진강변은 물론 구례, 남원과 화순 일대까지 페달을 굴린다. 강둑이든 산길이든 가리지 않고, 사람이 다닌 흔적만 있는 길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드나들었다. 지금도 맘먹고 자전거를 타면 하루 200㎞ 정도는 거뜬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틈틈이 집 부근 텃밭을 가꾸는 것도 사는 재미다. 이씨는 방치돼 있던 도로변 풀밭을 밭으로 일궈 배추와 무, 고추, 콩 등을 심었다. 날마다 밭에 나다니며 풀을 뽑고 벌레도 잡아 없앤다. 오가는 길에 이웃 주민들 안부를 살피고,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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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노는 땅을 일궈 만든 텃밭의 채소밭에서 벌레를 잡고 있다. 그가 텃밭에 들르는 것은 일상의 하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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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고속국도 변 노는 땅을 일궈서 만들어 놓은 텃밭. 그의 농촌살이를 더욱 알차고 풍족하게 해주는 텃밭이다. ⓒ 이돈삼


"건강이 중요하다는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그러나 알고만 있으면 뭐 합니까. 행동으로 옮겨야죠. 내 몸인데, 내 뜻대로 하고 살아야지. 그러지 못하면 남의 몸이에요. 나는 20대 안 부럽습니다. 내 몸이 건강하니 늘 즐거워요. 하루가 즐거우니, 평생이 즐겁고요. 난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요."

만남을 끝낸 이씨가 페달을 굴려 겸면천을 달리기 시작한다. 돌처럼 단단한 근육질의 팔과 다리가 눈길을 끈다. 자전거를 타는 자세가 정말 총각 같다. 팔순을 앞둔 나이지만, 영원한 '젊은 오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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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섭 씨가 그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우연히 만난 곡성군 겸면천변에서다. ⓒ 이돈삼


#이광섭 #사이클 #생활체육 #칠봉리 #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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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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