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아..." 학생 때문에 퇴직 생각하는 교사

[아이들은 나의 스승 86] 가정과 학교의 '폭탄 돌리기'에 지쳐가는 교사들

등록 2016.09.29 21:16수정 2016.09.2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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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는 학생 수 만큼 개성이 각기 다른 아이들이 있다. ⓒ wiki commons


요즘 들어 아내가 부쩍 힘들어한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반 아이들이 우리 아들딸 같고, 교실이 집 같다더니만, 얼마 전부터는 한숨소리가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좋다던 아이들이 무섭다고 하고, 아침마다 출근하는 게 두렵다고까지 말한다. 퇴근하자마자 노래처럼 흥얼거리던 반 아이들 자랑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사고뭉치 아이들에 대한 '뒷담화'뿐이다.

팔불출이라며 손가락질 할지는 모르지만, 아내는 배울 점이 참 많은 천생 선생이다. 낼모레면 나이가 오십이지만, 여전히 1시간 수업 준비를 위해 기꺼이 하루에 서너 시간을 투자한다. 숙제 검사를 한다며 아이들의 공책 더미를 퇴근 후 집에까지 가져와 빨간 펜으로 일일이 첨삭해주는가 하면, 밤늦도록까지 전화기를 부여잡고 아이들과 상담을 할 정도로 열정적인 교사다.

그런 그가 여태 관심조차 없던 연금 수령 개시 연도를 궁금해 하며 입버릇처럼 퇴직을 되뇌고 있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스스로 의심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모습이, 남편이기 이전에 동료 교사로서 측은하기까지 하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들과 함께 퇴근해 저녁까지 챙겨주던 자상한 그를 좌절케 한 건 대체 뭘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될까 싶어 그와 마주 앉았다.

정훈아, 정훈아, 정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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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란 정말 없는 걸까... 영화 <친구> 중 한 장면. ⓒ 씨네라인 II


요즘 아내의 머릿속엔 온통 반의 정훈(가명)이 하나뿐이다. 며칠 전에 아내는 그의 이름을 연거푸 불러대며 잠꼬대하기도 했다. 그 아이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 버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올해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고작 중학교 1학년인데도, 벌써부터 가출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학년 진급을 위한 수업일수 부족을 걱정해야 할 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잠꼬대를 통해서였다.

그의 '화려한' 학교생활을 듣노라니 아내의 하소연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다. 공부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마음 내킬 때 등교하고, 수가 틀리면 아무 때나 교문을 나서다 보니 교사들마다 수업시간 출결 파악조차 힘들다고 혀를 내두를 지경이란다. 일과 중 소재 파악조차 안 되니 학부모와 전화 연락하며 상황을 공유하는 게 담임으로서 아내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됐다.

체육대회나 소풍, 수련회 때는 또래들과 놀 궁리에 학교를 찾지만, 행사가 끝나면 어김없이 사라지는 행태가 공식처럼 되풀이됐다. 교사들조차 어찌 손 써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다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교실의 '왕'으로 자리매김 됐다. 그런 그와 부러 친하게 지내려고 집적거리거나 애써 태연한 척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교실에서 그를 무시하거나 맞서는 아이는 없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의 돈을 뺏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왕왕 있어 그때마다 선도위원회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었지만 정훈이의 행동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부모님이 안 계신다거나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형편도 아닌데 그러한 폭력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언뜻 일말의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아내는 그의 행동거지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배짱이 사라진 나, 피하라고 말하는 '찌질이'가 됐다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는 정훈이의 일탈을 지켜보며 어떻게 해도 그의 행동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낙담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용암처럼 뜨거웠던 아내의 교육자적 열정을 한순간에 식혀버렸다. 언제부턴가 학교 교육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고, 가정과 학교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아이들을 조리돌리는 형국이다. 아내는 이를 '폭탄 돌리기'라고 표현했다.

고개숙인 아내 앞에서 위로한답시고, 그런 아이들조차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교육시키는 것이 교사로서의 사명 아니겠냐며 다독였다. 기실 이는 위로는커녕 타박에 가까운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냥 세상이 험악해진 탓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해줄 걸 그랬다. 그렇잖아도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기꺼이 '폭탄'을 받으라는 말과 하등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그렇게 말할 처지도 못 된다. 속으론 아내 못지않게 '막장' 아이들 앞에서 끙끙대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요즘 교사들 사이에서 '껌 씹고 침 뱉는'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기피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지에 대한 요령을 공유하는 자리보다, 교사로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연수가 훨씬 더 유용하다고 말할 정도다.

지금 같으면 '겁이 없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지만, 초임 시절엔 누구보다 당찬 교사였다. 길을 가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을 볼라치면 부러 찾아가 혼쭐을 낼 정도였다. 솔직히 지금은 그럴 배짱이 없다. 남자인 나 역시 자칫 그들에게 봉변을 당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럴 경우엔 눈 감고 귀 막는 게 상수라고 주위에 스스럼없이 말하는 '찌질이'가 됐다.

"신경끄고 수업이나 하세요... 귀찮게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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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는 없다. 영화 <친구> 중 한 장면. ⓒ 씨네라인 II


얼마 전, 하마터면 한 아이에게 손찌검을 할 뻔했다. 점심시간 직후인 5교시 수업 때 벌어진 일이다. 시작종이 울리고 출석을 불렀지만, 그는 대답은커녕 책상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자리 옆에 서서 수업하며 부러 흔들어 깨웠지만,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깨워 얼러도 보고 달래도 봤지만, 흡사 기면증 같은 그의 잠 앞에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초임 시절, 그때라면 분명 '사달'이 났을 것이다.

"선생님, 저한텐 신경 끄시고, 그냥 하던 수업이나 하세요. 제발 저를 귀찮게 좀 하지 마세요."

흔들어 깨우는 걸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들어 짜증 섞인 말투로 이렇게 쏘아붙였다. 교실 뒤에서 서서 수업을 들으라거나 졸음이 오면 잠시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오라는 지시도, 당최 수업 내용을 모르겠거든 소설책이나 하다못해 만화책이라도 읽으라는 권유도 들은 척조차 하지 않고, 다시 엎드려버렸다. 그의 말에 순간 부아가 치밀었지만, 달리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와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아이들도 외려 깨우려는 나를 탓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하는 거라곤 엎드려 자는 것밖에 없다며, 그가 깨어있을 때는 점심시간뿐이라고 귀띔해줬다. 반 아이들은 어차피 가능하지도 않을 일에 힘을 쏟을 필요가 뭐 있느냐며, 괜한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의 말대로 우리끼리 수업하는 게 상책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체벌만으론 그의 그릇된 행동을 결코 바꿔낼 순 없다지만, 순간 손발이 다 묶여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그의 부모가 내는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주문을 외지만, 매 시간 엎드려있는 그를 보면서 그 다짐은 무색해져만 간다. 그의 무기력이 고스란히 교사인 내게도 전염되는 것만 같다.

만약 화를 못 참고 손찌검을 했다면 누군가에 의해 촬영되어 폭력 교사로 낙인찍혀 처벌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든 말든 내버려두는 건 교사이길 포기하는 일이다. 졸거나 자는 아이들이 있다는 건 교사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일 테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뿐더러, 아이들을 방치한다는 차원에서 엄밀히 말해 학습권 침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핀잔'이나 듣는 주제에 아내 앞에선 교사의 사명 운운했으니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초임 시절 적었던 글귀... 만용처럼 느껴기도 하네

아내도 나도 잘 알고 있다. 무릇 참교사라면 '막장'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소통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얻어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수업 개선을 통해 아이들이 쉽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 또한 기본이다. 그들과의 불통을 아이들 탓으로 돌리고 그저 세대차이 탓이려니 자위하는 건, 교사로서의 무능을 숨기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짓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 고해성사하듯 정훈이가 당장 내일 다른 학교로 전학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내 앞에서, 앞으로 더 이상 '교육은 성직'이라는 등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줄 순 없을 것 같다. 아내와 함께 교직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때, 교무실 책상 위에 좌우명처럼 적어뒀던 이 글귀들이 만용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문제아'란 없다. '문제 어른'이 있을 뿐. 아이들을 탓하는 '찌질한' 교사는 되지 말자."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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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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