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에 햄버거 배달하라... '추석특식 수송작전'

[보도 그 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후배들을 위한 펀딩, 이렇게 집행했습니다

등록 2016.09.16 10:08수정 2016.09.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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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오마이뉴스> 메인에 올라왔던 기사를 기억하시나요?


[관련 기사]  '땡볕에서 유해 찾는 군인들, 도와주세요'

이 기사에서 6.25 전쟁 발발 66주년을 맞아 다소 특별한 펀딩 소식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바로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주도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아래 국유단) 발굴병들에게 위문품을 보내기 위한 펀딩이었습니다.

당시 펀딩을 주도했던 저는, 국유단 발굴병 출신 예비역으로 후임들에게 늘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높은 산을 오르며 땡볕 아래 고생하는 발굴병들이지만, 그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특별한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이 바로 얼마 전까지 발굴병으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이죠. 고생하는 발굴병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에 제안하게 된 펀딩은 <오마이뉴스> 등을 통해 널리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6월, 인제 명당산에서 노출된 유해를 수습하고 있는 국유단 발굴병의 모습. 매년 6월 각종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는 호국영령의 감동적인 이야기 뒤에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 ⓒ 김경준


십시일반으로 모인 성금 48만원


그렇게 200만 원을 목표액으로 정하고 힘차게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모금은 난항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병들의 복지가 중요하긴 하지만, 누리꾼 대상의 펀딩보다는 군 차원에서 도와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일리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임들을 돕기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펀딩이었기에, 그와 같은 반응에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뜻 있는 누리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한 성금이 모여 총 48만원이라는 소중한 후원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모금을 완료하고 나니, 이 성금을 어떻게 집행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처음 펀딩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땡볕에서 고생하는 발굴병들에게 지급할 아이스 패드를 사고, 차액으로 어렵게 살고 계시는 6.25 참전용사 분들을 후원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모금된 금액이 목표액에 비해 턱 없이 모자랐기에, 부득이하게 집행 용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셜펀딩 결과, 목표액의 24% 밖에 못 미치는 48만원을 모금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십시일반 성의를 보태준 네티즌들 덕분에 특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 김경준


모금을 대리했던 <나도펀딩> 측에서는 "48만 원 전액을 참전용사 후원에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레 의견을 전달해왔습니다. 그 역시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저는 펀딩의 취지를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고생하는 발굴병들을 후원하기 위해 시작한 펀딩이었으므로, 이 돈은 마땅히 발굴병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기꺼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성금을 기부한 누리꾼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48만 원 전액을 발굴병을 위문하는 데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학기 단장(육군 대령)으로부터 격려품을 받는 필자. 군 생활 중 직속상관이었던 이학기 단장은 "후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다"며 특별히 필자를 격려했다. ⓒ 김경준


늘 배고픈 군인들에게는 '먹을 것'이 최고였다

이제는 48만 원의 성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할 차례였습니다. 48만 원 어치 책을 구입해 병영도서관에 기증할까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역시 후원을 받는 당사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물품을 후원하는 게 맞겠다 싶었습니다.

국유단 출신 선임, 동기들과 아직 군 복무 중인 후임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남는 건 먹을 거다'라고 외치더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 역시 군 생활 중에는 늘 배가 고팠던 것 같습니다.

개인정비시간이면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걸그룹 아니면 먹방을 즐겨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회에서는 언제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그런 자유조차 주어지질 않으니, TV 속 호화로운 만찬들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군 생활 하면서 지켜본 결과, 많은 병사들이 휴가 나갈 때만 되면 '나가서 먹을 음식' 리스트부터 작성하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병사들에게 '추석 특식'을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추석 특식 수송 작전'

그렇게 '추석 특식 수송 작전'이 개시됐습니다. 추석 연휴를 쇠기 위해 발굴병들이 자대인 현충원으로 잠시 복귀한 9월 13일을 디데이(D-Day)로 정했습니다. 출타자를 제외한 잔류 인원을 파악하고, 모금액 한도 내에서 인원들에게 골고루 특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메뉴를 선정하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종 결정된 특식 메뉴는 '햄버거+치킨' 세트와 '너겟' 세트. 메뉴를 결정하고 보니 저도 군 생활하면서 먹어보지 못한 호화로운 만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셜펀딩을 통해 모금된 금액으로 준비한 '추석 특식' ⓒ 김경준


그런데 또 한 번의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혼자서 짊어지고 이동하기엔 수량이 너무 많았던 탓입니다. 어떻게든 작전은 성공적으로 완수해야겠기에, 군 복무 중 직속상관으로 모셨던 중대장님에게 S.O.S를 요청했습니다. 결국 중대장님의 자가운전으로 햄버거 세트를 무사히 수송해올 수 있었습니다. 오가는 내내 "너 때문에 살다 살다 별 짓 다 해본다"라고 투덜거리셨지만, 그 핀잔 속에 기특해하는 감정이 묻어나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특식에 놀란 병사들

햄버거가 든 박스들을 막사로 무사히 옮겨온 뒤, 방송을 통해 병사들을 집결시켰습니다. '이제 좀 쉬려는데 정신교육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어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투덜거리며 들어오던 후임들이, 제 얼굴을 보더니 놀랍니다. 그리고 뒤에 쌓인 햄버거 박스들을 보고 또 놀라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추석 특식을 수령해가는 발굴병들의 모습 ⓒ 김경준


모두들 예상치 못한 특식에 신나서 환호성을 내지르더군요. 체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햄버거를 입 안에 욱여넣는 병사들을 보면서 '역시 특식으로 준비하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안쓰럽다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먹느라 정신 없었겠지만, 병사들에게도 이번 특식의 의미를 전달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번 특식은 내 돈으로 산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발굴현장에서 고생하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누리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으로 산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고생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군 생활이 답답하고 힘들더라도, 좀만 참고 힘냅시다. 성금을 낸 누리꾼들과, 펀딩을 주도한 <나도펀딩> 그리고 펀딩 소식을 홍보해 준 <오마이뉴스>에도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먹읍시다."

취지를 들은 병사들 역시 모두 고마워하는 내색이 강했습니다. 특별히 감사인사를 전해달라고 당부하는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모금에 동참해주신 누리꾼 여러분과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신 <오마이뉴스> 독자 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대신 전달합니다.

특식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발굴병들의 모습 ⓒ 김경준


상병 A는 "특식도 특식이지만 이렇게 누리꾼들이 관심 가져준 것에 대해 감격스럽다"고 밝혔고, 이제 곧 전역을 앞둔 병장 B는 "1년 9개월 군 생활의 보람을 오늘 이 순간 느꼈다"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허기져 있는 군인들에게는 부족한 양이었겠지만, 그래도 힘든 군 생활에 다소 간의 격려와 위안이 됐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호국영령을 모시는 뜻 깊은 보직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전역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긍심과 보람을 가지고 몸 건강하게 군 생활 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예상치 못한 특식에 즐거워하는 발굴병의 모습. ⓒ 김경준


병사들은 체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허겁지겁 햄버거를 욱여넣는 모습을 연출해 웃음을 유발했다. ⓒ 김경준


추석 연휴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장병들을 위로하며

본격적인 추석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족, 친척을 만날 생각에 부푼 마음으로 고향에 달려가는 이 시간에도, 전후방 곳곳에서 나라를 지키는 데 여념이 없는 국군 장병들이 있습니다. 그들이라고 왜 집에 가고 싶지 않을까요. 이런 명절일수록 집 생각, 가족 생각이 더욱 간절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펀딩 집행 소식을 전달하며,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의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그리운 마음을 달래고 있을 국군 장병들에게 잠시나마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자는 겁니다. 혹시 주위에 군인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고생한다는 덕담 한 마디 던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고향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고생하고 있을 국군 장병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5개월 전에 전역한 예비역 육군 병장입니다. 전역병 출신으로서, 더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을 후임 발굴병들을 위해 펀딩을 제안하고, 그 소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6.25 특집 메인 기사로 올린 바 있습니다. 7월 31일부로 펀딩이 종료되었는데, 18명의 누리꾼들이 동참하여 총 48만원의 성금이 모였습니다. 십시일반으로 모인 성금으로 '추석 특식 세트'를 준비해 9월 13일, 국유단 발굴병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집행을 완료했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국방부 #유해발굴 #6.25 #발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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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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