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이여, 비판해야 할 대상은 다른 데 있다

등록 2016.09.05 15:10수정 2016.09.0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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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층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바로 메갈리아/워마드와 관련되어 촉발된 소위 '여혐/남혐' 논쟁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그 어떤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커다란 저항을 하지 않았던 남성들이 유독 이 상황에 있어서는 매우 강한 저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메갈리아 등의 운동을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표명한 한 정당 내 모 위원회와 한 진보적 주간지, 그리고 일부 지식인들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인 공격이 이어지고 있는데, 각각 대규모 탈당과 절독자들이 급증하는 등 그 어떤 사안에서조차 쉽게 행동하는 것을 주저했던 남성들이 대거 행동으로 나선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은 한 마디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의 역겨운 모습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며, 한국 사회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 어디인지를 보여 주는 사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여성 혐오 현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억눌리고 희생되어 왔던 여성들이 조금씩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기득권을 누려 왔던 많은 남성들이 강하게 반발해 온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양성 간 불평등을 부추기는 법과 제도, 관습과 문화들이 많지만, 특히 군가산점제나 여성 징병제 등 남성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군대와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는 그 어떤 합리적 논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반발이 거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온라인 문화가 발달하면서부터는 사실상 남성/여성을 근거로 비판할 사안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댓글 문화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은 각종 여성비하적 여성혐오적 용어를 만들어 내며 여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같은 사안에서도 남성에게는 별다른 비난이 가해지지 않고 혐오와 비하의 용어도 붙여지지 않는 반면, 여성에게는 엄청난 비난이 가해지고 신상이 털리거나 오랜 기간 동안 집요한 공격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그 어떤 사회적 불만의 표현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로 반발을 보여 왔다. 심지어 일부 사안들의 경우 직접적 협박도 서슴지 않는 등 매우 폭력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한국 고유의 극단적 경쟁 사회가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영향 하에서 한층 더 불안정해지면서 특히 하층 계급 남성들의 불만은 지배 권력, 자본 권력으로 향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향하게 되었는데, 남성기득권을 제약하는 가장 큰 집단인 여성을 향한 적대감은 한층 더 강하게 나타났다. 특히 전반적인 여권의 상승으로 인해 이러한 불만은 하층계급 남성만이 아니라 충분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상층과 중간계급 남성들에게서도 나타났는데, 바로 이들이 이데올로그가 되어 이러한 불만을 조직화하고 여론화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강남역 살인 사건과 같은 극단적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제 여성혐오 문제는 이주자들에 대한 적대와 혐오에서 보이는 파시즘적 양상과 유사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고,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극우적인 자들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이들의 이러한 격렬한 반발은 메갈리아 등으로 상징되는 일부 페미니스트 집단들의 글쓰기나 운동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까지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논자들이 이야기하듯,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치밀한 분석 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이들을 '여자 일베'라고 칭하는 데에는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베로 상징되는 남성우월주의적/여성혐오적 발언과 행동이 난무해도 아무런 제재도 반발도 없는 끔찍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정면으로 저항하는 집단이 생겨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당한 모습이다.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단체가 아니다 보니 회원들의 정제되고 절제되지 않은 표현들이 나오는 현상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과거 독재정권의 폭압 정치 속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이데올로기들을 저항 이데올로기로 삼아 저항하던 조직들이 있었고, 심지어 이들이 한때 한국사회의 저항 운동의 주류를 이루기도 했었다. 그들 중 주류는 저항 민족주의라는 이름하에 우파 민족주의적 주장과 구별되지 않는 주장들을 하다못해 일부는 북한이라는 타국 지배 집단, 그것도 뒤틀어진 가짜 좌파 지배 집단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저항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화염병 시위로 상징되는 그 저항 수단 역시 지금의 눈으로 볼 때, 아무리 대항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더라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외국의 경우에도 대안 부재 속에서 심지어 극단적 이슬람과 같은 종교가 저항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하고, 체제전환 국가들에서는 자유주의나 민족주의가 저항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기도 한다.


분명 현재 메갈리아 등의 투쟁 방식에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내용적으로도 빈곤계층이나 하층계급 남성들에 대한 비하 역시 맥락상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위에서 비유한 것처럼 강한 억압적 지배와 폭력적 탄압에 맞서면서 과격해질 수밖에 없는 운동의 초기 모습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하나하나의 과격하거나 다듬어지지 않은 언사들에 초점을 맞추어 과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최소한 진보적인 관점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 사태에서 무엇이 핵심이고 본질인지에 대해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책무이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답답하다. 언제나 지역과 학벌과 학력 등등으로 가르고 배제하고 물어뜯던 이러저러한 남성 집단들이 똘똘 뭉쳐 반발하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진보적 입장을 갖는다는 이들조차 일베와 같은 편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남성 중심적 사회인지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해 주고 있다. 마치 인종주의자들이 이주민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이를 범죄의 문제가 아니라 이주민의 문제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과 유사하게 여성에게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 차별적이고 여성억압적 모습이 이제야 수면 위로 적나라하게 나타나게 된 것은 어쩌면 메갈리아와 같은 집단의 존재로 시작된 것이기에 우리는 이들의 긍정적 기능이 확대되도록 지지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일부 남성들의 찌질한 대응들에는 가장 핵심적인 토대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국의 남성들은 진보와 보수, 좌우를 막론하고 현실의 삶 속에서는 성산업과 성매매에 대해 관대할 뿐 아니라 심지어 다양한 수준의 성매매 업소 출입을 정당화하는 이들이 많다. 정치나 다른 분야에 있어서는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관점을 보이는 이들 중 상당수가 오히려 성매매 산업을 옹호하고 이에 반대하는 운동에 대해 반발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여성들 중 가장 심각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에 대해서조차 남성성욕중심적 사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소위 '일반' 여성들의 상황이나 권리, 주장들에 대해서 과연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할까?  

따라서 최소한의 양심을 갖고 있는 진보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라면 현재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말 하나하나에 흥분하고 분노하는 등으로 엉뚱한 힘을 낭비하지 말고, 실 공간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불평등과 혐오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많은 여성 문제들의 핵심에는 바로 성매매 산업을 둘러싼 추악한 권력과 자본과 폭력집단, 그리고 압도적 다수 남성들의 침묵을 포함하는 공동의 범죄 행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과 억압 뿐 아니라, 여성을 쉽게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발생하는 것은 별도의 현상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현상이다. 폭행이나 살인 뿐 아니라 성산업으로의 유입 등 다양한 총체적 위협 속에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작은 반란에 남성들도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분노의 화살은 소수자나 약자가 아닌 여성들을 포함한 사회의 약자들을 착취하는 집단들에게로 향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정재원씨는 현재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남성들이여 동참하라 #메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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