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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태 "이태준 검사 '너무 쓰레기라' 고민했다"

[인터뷰] <굿와이프>로 '쓰랑꾼'된 유지태... "외롭지 않았어요"

16.08.30 17:36최종업데이트16.09.0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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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은 스캔들로 시작되는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혜경(전도연 분)이나 가족에게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태준이 입체적으로 보일 거라 생각했죠. 태준이 가진 야망의 폭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29일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배우 유지태(40)를 만났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까지, 사실 조금 무서웠다. 욕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빛과 분위기로 상대를 압도하는 검사 이태준. 물론 그는 그저 이태준을 연기한 것뿐이지만, 워낙 실감 나게 표현한 탓에 배우 유지태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태준 검사님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유지태, 무섭진 않았다

배우 유지태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태준 검사님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직접 만난 그는 이태준 보다 잘 웃는, 부드러운 남자였다. ⓒ CJ E&M


그에게 "만나러 오면서 실제로도 무서운 분이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말하자 웃음을 터트렸다. 유지태는 지난 26일 부산코미디페스티벌(아래 부코페) 개막식에도 참석했다. 배우인 그가 희극인들의 축제에 참석한 이유는 부코페 조직위원장인 김준호와의 의리 때문이다. 유지태와 김준호는 단국대 영화학과 동기. 그는 "의리가 대단하다"는 취재진의 말에 "하루인데요 뭐"라며 별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준호 형의 부코페를 응원해요. 부산영화제를 보면서 되게 부러웠다더라고요. 자기 동료들에게도 그런 행복감을 선물로 주고 싶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인상 깊었죠.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고 싶어요." 

부코페 개막식 때 취재진의 관심사는 '유지태가 과연 웃을까'였다. 어쩐지 웃음도 없고, 마냥 진지하게 무겁기만 할 것 같은 이미지 때문이다. "공연 내내 빵빵 터지더라"라고 말하자 "하하하, 저 원래 잘 웃어요"라며 밝게 웃었다.

"배우로서 진지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원래는 무용수였고, 연예 활동을 모델로 시작했잖아요. '모델 출신 배우'라는 딱지가 늘 붙어있었어요. 지금이야 모델 출신 배우들도 많고,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그때는 편견이 있어서 어려움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딱지를 떼려고 부단히 노력했죠. 진지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배우 생명력이 길어진다고 믿기도 했고요. 그래서 좋은 영화에 출연하려고 노력했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데뷔 19년차... "융통성이 생겼다"

유지태는 스스로도 "전보다 유연해지고 융통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인 탓도 있지만, 그를 가장 변화시킨 요인은 가족이다. ⓒ 나무엑터스


데뷔 19년 차. 언제나 진지한 배우이고 싶은 바람은 변함이 없을까? 그는 "사람들을 밝고 행복하게 만드는 작품, 편안한 이야기가 있는 배우이고 싶다"고 말했다. 코미디 영화에 출연해 한껏 망가지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 <스플릿>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이 인용되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를 "아주 지질하게" 리바이벌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지키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근데 '인용하면 어때?' 싶더라고요. 전보다 (생각이) 유연해지고 융통성이 생긴 거죠."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인 탓도 있지만, 최근 유지태를 가장 변화시킨 요인은 가족이다. 아빠가 된 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신이 남다르게 느껴지기 시작됐다고. 그는 작가가 써준 대사를 바꾸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굿와이프>에서는 감독에게 건의해 바꾼 대사가 있다. 태준에게 또 다른 불륜 상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아들 지훈(성유빈 분)에게 "네가 좀 더 크고 나서 다시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대사다. 원래는 "나중에 얘기하자"였다고. 대사가 바뀌면서 아이들에게만큼은 좋은 아빠이고 싶은 태준의 진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배우 유지태가 아닌, 인간 유지태는 어떤 남편, 어떤 아빠일까?

"바쁜 아빠죠. 서운해요 사실은. 아내는 아들에게 뺏기고, 아들은 아내에게 뺏기고.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고, 추억도 나누고 싶은데 아쉽죠. 결혼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는 엄마만 따라다녀요. 아이와 친해지는 건 함께하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데, 너무 바빠 얼굴도 못 보니…."

남편, 아빠, 그리고 배우 유지태

배우 유지태가 아닌, 아빠 유지태는 어떤 모습일까? 아내만 따르는 아이에게 서운해하기도 하고, 아내를 걱정해 출연을 망설일만큼, 그도 평범한 남편이고 아빠였다. ⓒ CJ E&M


울상을 지으며 아이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는 아이가 생기고 나서 집에 TV도 없앴다면서 "<굿와이프> 모니터도 핸드폰으로 했다"며 웃었다. 지금까지 접해온 배우 유지태가 아니라 아빠 유지태를 만나는 기분? 그렇다면 남편 유지태는 어떤 모습일까? <굿와이프>에서 태준과 혜경은 모두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법조인이 됐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간 태준과 달리 혜경은 가정을 지키며 '굿와이프'가 됐다. 모두 훌륭한 배우지만, 결혼 후 가정을 지키고 있는 아내 김효진이 떠오르진 않았을까?

"활동하지 않는 게 효진이의 희생이냐고 물으시는 거라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삶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효진이한테도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하라고 늘 독려해요. 하지만 본인이 아이가 3살이 될 때까지는 아이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저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요. 대신 제가 두 배로 일하면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주는 거죠."  

유지태는 지난 7월 <굿와이프> 기자간담회에서 "'쓰랑꾼(쓰레기+사랑꾼)' 이미지 때문에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데뷔 때부터 연기 욕심이 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까지 했다던 그의 말과 언뜻 매치되지 않는 듯했다.

"걱정됐죠. 섹스스캔들의 주인공이잖아요. 영화에서도 노출신은 있었지만, TV를 통해 노출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어요. 사실 제 부담감이라기보다, 아내에 대한 부담감이었죠. 함께 사는 사람인데, 이런 쪽으로 이슈가 되면 사는 게 힘들지 않을까 했어요. 아이가 자라면 아빠 작품도 보게 될 텐데, 악역을 맡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유지태는 대본을 받자마자 김효진에게 보여줬다고 했다. 출연을 고민하고 있을 때, 김효진은 '연기로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다, 사람들도 연기로 바라볼 테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답해줬고, 김효진의 격려로 이태준을 연기할 수 있었다. '사랑꾼'인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모를 일이죠"라며 빙긋이 웃었다. 자신이 사랑꾼인지 아닌지는 아내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솔직한 편이에요. 그녀에게 거짓이 없으려고 노력하죠. 마음은 계속 변해요. 저도 효진이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우리도 솔직히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면서 살아온 거 아니냐고. 사람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제게는 가정이 제일 소중해요. 그녀를 위해 굿허즈번드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이태준처럼) 쓰레기가 되고 싶진 않아요. (웃음)"

'쓰랑꾼'... "외롭지 않았다"

이태준 역할을 선택하며, 쏟아질 시청자들의 비난이 두려웠다던 유지태는 배우 유지태를 향한 응원과 사랑에 "덜 외로웠다"고 말했다. ⓒ 나무엑터스


"너무 쓰레기라" 유지태가 고민했다던 이태준은 시청자를 열광시켰다. '쓰랑꾼'이라는 별명에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이태준을 향한 드라마 팬들의 애정이 담겨있다. 시청자들의 비난이 두려웠다던 유지태는 배우 유지태를 향한 응원과 사랑에 "덜 외로웠다"고 말했다.

"이태준의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5kg 근육을 찌웠고, 공감되지 않는 그의 야망을 표현하느라 마음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런 자리가 아니고서는 제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도 대중들이 제 노력을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칭찬받으니 하늘은 보고 계시는구나 느꼈죠. (웃음) 감사해요."

그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너무 많다,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면서 "그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기죽이는 이야기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어조를 높였다. 그가 지금까지, 여전히,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이유다.

"제 한계를 깨고 싶어요. 언젠가 아이가 자랐을 때, 세계적인 배우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요. 외국어도 10년째 공부하고 있어요. <올드보이>나 <봄날은 간다> 같은 작품은 개인적으로도 자부심이 큰 작품이거든요. 흥행이 됐든, 안 됐든, 작품을 까다롭게 골라왔고 앞으로도 제 눈높이를 낮추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지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

곧 촬영이 시작되는 차기작 <꾼>에서 유지태는 다시 한 번 검사 역할을 맡았다. 언제나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그답게, "차별성을 두기 위해 연구 중"이라고. ⓒ CJ E&M


배우 유지태는 이태준만큼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이 바라는 지점, 연기관이 명확한 만큼 생활도 생각도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윤계상이 인터뷰에서 "연기랑 가족밖에 없는 사람, 선비"라고 표현한 그대로였다. <굿와이프>는 배우 유지태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아낌없이 선보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굿와이프>는 "최선을 다한 모든 작품 중 하나"라고. 하지만 "대중적인 기대가 높아진 만큼, 다음 작품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부담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9월부터 영화 <꾼>의 촬영이 시작돼요. 지금도 머릿속엔 <굿와이프> MT를 다녀와서 빨리 <꾼>에 몰입해야겠다, 좋은 연기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꾼>에서 유지태는 다시 한 번 검사를 맡았다. 언제나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그답게, "차별성을 두기 위해 연구 중"이라고.

"배우의 열정, 지치지 않는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연기가 좋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환경이 바뀌고 여유가 생겼다고 변하고 싶진 않거든요." 

유지태 굿와이프 이태준 쓰랑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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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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