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오던 날, 일본 '혐오발언' 관련 모임에 가다

[현장] 22일 일본 가와사키시에서 '헤이트스피치를 용서하지 않는 모임' 열리다

등록 2016.08.23 22:31수정 2016.08.23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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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9호 등 세 개의 강력한 태풍이 일본열도로 상륙한 날, 도쿄 역시 태풍의 영향권 아래 일부 지하철 운행의 차질이 생기는 등 어수선했다. 가운데 지난 22일 가와사키 시(川崎市)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 '헤이트스피치(차별선동 표현, 특히 혐한시위)를 용서하지 않는 모임' 행사 취재를 위해 도쿄 오오츠카 숙소를 나섰다.

가와사키 시는 도쿄의 위성도시로 인구 140여만 명의 제법 큰 도시인데 숙소인 오츠카에서는 전철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다. 도쿄에 상륙한 강한 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몸을 가눌 수 없는 궂은 날씨에도 가와사키시노연회관(川崎市勞連會館) 5층 강당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모임의 정식 이름은 '시민입법으로 가와사키 시 인종차별해소 조례를! 학습·의견 교환회(市民立法で、川崎市人種差別解消條例を! 學習·意見交換會)라는 다소 긴 이름의 모임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사례와 이에 대한 문제점 등을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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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 강한 태풍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수많은 청중들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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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강의하고 있는 김상균 교수 ⓒ 이윤옥


이날 가와사키 시민네트워크가 초청한 강사는 교토 시에서 인종차별철폐조례를 위해 뛰고 있는 김상균 교수(류코쿠대학 법학대학원)였다.

"가와사키 시민네트워크 여러분들이 모여 있는 강당에 들어서니 공기부터 신선한 느낌이다. 헤이트스피치(차별선동표현)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런 안온한 분위기다."

이와 같은 표현으로 말문을 연 김상균 교수는 법학자다운 명쾌한 논리로 시노연회관(市勞連會館)에 모인 100여 명 시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한 강연은 휴식시간 없이 질의시간까지 합쳐 거의 밤 9시가 되어서야 막을 내렸다.

이날 김상균 교수의 강연은 가와사키시민 네크워크가 지향하는 "헤이트스피치 근절을 포함한 가와사키 시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인종차별 없이 지낼 수 있는 조례를 만들기 위한 법률에 바탕한 조언과 김 교수가 활동하고 있는 교토시의 예를 들려주고 협조해주기 위한 내용" 위주로 진행되었다.


김 교수는 이해를 돕기 위해 교토 시에서 2014년 10월부터 추진해온 시민활동 내용을 7쪽에 걸친 <기조보고서>로 만들어 참석한 시민들에게 나눠주었으며, 별도의 자료로 <교토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조례집>을 제공했다.

이 인종차별 철폐 조례집의 목적 제1조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인종차별은 피차별자의 심신 및 일상생활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뿐 아니라 자유, 평등, 평화로운 민주주의 사회의 실현과 제국(諸國)간의 우호적, 평화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장해가 되지 않도록 인종차별철폐조약, 시민의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및 일본국 헌법 13조, 14조를 구체화하여 인종차별 방지 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인간의 존엄과 법의 평등 아래 침해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구축을 위함을 목적으로 한다.(후략)"

특히 김 교수는 일본국 헌법 14조를 중시하여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사회'에 대한 일본인들의 각성을 주문했다. 이는 나치하의 독일인들이 '유대인 출신'이라는 까닭으로 500만 명이나 대학살을 자행한 점, 미국에서 단지 '흑인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고 있는 예를 들면서 일본 내에서 헤이트스피치들을 포함한 사회전체가 단지 '조선인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자행하고 있는 각종 취직차별, 학교차별, 결혼차별 행위 등을 아예 법률로 금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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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시위자 한국이 적국이라면서 시위를 벌이는 혐한시위자들의 동영상 ⓒ 이윤옥


강연 도중 김 교수는 가와사키 시와 교토 시에서 벌어진 헤이트스피치(주로 혐한시위자들)들의 활동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일장기를 앞세우고 확성기로 '조선인은 꺼져라'를 외치며 '한국은 적국(敵國)'이라고 적힌 팻말을 흔들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김상균 교수는 말했다.

"'조선인을 죽이겠다'는 말보다 '조선인을 죽여라'라고 선동하는 말이 더 무서운 것이다. 이러한 선동주의자들의 화법(話法)을 오래 듣다보면 마치 자기 자신도 그에 가담해야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은 물론 그렇게 되다 보면 자신이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선동자들의 행동을 묵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재 일본 내에서 인종차별금지법이 조례로 제정된 곳은 오사카 시가 유일하며 교토 시와 가와사키 시는 현재 법률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가와사키 시의 경우 지난 5월 30일 헤이트스피치 집회를 위해 신청한 한 남성의 공원집회 신청을 허가하지 않는 등 '시민의 안전과 인간존엄을 가지키려는 노력'을 시 차원에서 협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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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강연 뒤 질의응답시간에 질문을 하고 있는 한 시민 ⓒ 이윤옥


청중들은 가와사키 시민들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법률 제정과 헤이트스피치들의 '조선인 멸시 선동'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면서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일본을 선진국으로 한걸음 내딛게 하는 밑거름일 것이라고들 말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용서할 수 없는 것처럼 성숙한 사회는 '출신'이나 '인종'이 다름을 들어 차별하고 멸시하는 행위는 멈춰야 한다고 말이다. 가와사키 시민들의 활동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면서 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도쿄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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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다카오 가와사키 시민네크워크의 야마다 다카오 씨 ⓒ 이윤옥

- 언제부터 이 운동(헤이트스피치를 포함한 인권운동)에 관여하고 있는가?  
"1970년 히다치제작소(日立製作所)의 재일코리언에 대한 취직 차별사건을 보고 재일코리언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헤이트스피치(특히 혐한시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는 단순히 헤이트스피치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종 차별 등을 금지하는 법률이 일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 따라서 '차별 금지'에 대한 법률제정이 우선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 가와사키시(川崎市)의 반헤이트스피치 운동의 계기는 무엇인가? 
"2015년 11월 8일 재일코리언의 집단거주지역(集住地域)에서 헤이트스피치자들의 집단 데모가 일어난 것을 보고 이를 막아야한다는 것이 계기가 되었다." 

- '헤이트스피치를 용서하지 않는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가와사키시민 네트워크의 구체적인 활동을 소개해 달라.  
"시민네트워크에 찬성하는 단체는 약 162개 단체이며 집회 시에는 200여 명 정도가 참가하고 있다. 특히 반헤이트스피치 집회 때는 1000여 명이 모일 정도로 큰 관심을 갖고 있다." 

- 순수한 시민활동이 혹시 지자체로부터 방해받고 있지는 않는지?  
"가와사키시(川崎市)는 재일코리언의 권리획득 운동에 대해 타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그러나 보수정권(아베정권)이 들어선 이후 약간 소극적이 되고 있으나 시민활동을 방해하는 일은 없다." 

- 야마다 씨는 재일코리언에 대한 이해를 위해 책을 출판한 것으로 아는데 책을 간단히 소개하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알려달라.  
"내가 집필한 책은 <신재일한국인·조선인독본(新在日韓国・朝鮮人読本)>이라는 책으로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유래에 관한 내용을 질의응답 식으로 풀이하여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도 재일코리언의 권리 증진에 협력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헤이트스피치 #혐한시위 #인종차별철폐 #김상균 #가와사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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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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