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의 미러링이 '필요 없는' 사회를 원한다

[주장] '메갈'을 바라보는 관점과 '티셔츠 사태'에 대하여

등록 2016.08.01 10:36수정 2016.08.0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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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메갈리아>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표방하는 <오마이뉴스>는 이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주장성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한 반론이나 기타 의견을 보내주신다면 가감없이 싣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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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었던 그 티셔츠. ⓒ 김자연


성우 김자연씨가 'Girls Do Not Need A Prince(소녀는 왕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넥슨과 계약 해지를 하게된 사태로 '메갈', '메갈리안'은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나는 성우 김자연씨와 같이 그 티셔츠를 구매했으며 해당 후원 사이트에 4만 원가량 후원을 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 질문을 들었다.

"너 메갈하니?"

해당 사건에 대해 김자연 성우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웹툰 작가 중 '해츨링'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가 있다. 나는 이 작가의 <동네변호사 조들호>라는 웹툰을 무척 좋아한다. 작가의 지지 표명 이후, 댓글 창은 온통 '메갈'에 대한 비판으로, 더 정확히는 '메갈'이라는 '정신 나간 사이트'의 사상에 감히 동조하는 작가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찼다. 티셔츠를 판매하는 주체가 '메갈리아4'라는, '메갈'에서 파생되어 나온 사이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섣불리 비난할 수 없다, 세 가지 이유로

이 일에 대해서 나는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로, "그 후원, '메갈'에서 했던 혐오 발언으로 고소당한 사람들 변호 비용으로 쓴대"라는 말에 대해. 이번 후원에 대해서 퍼진 악의적인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둘째로, "어쨌든 '메갈'이라는, 극단적 혐오발언을 남발하는 사이트가 주체로 한 후원이잖아?"라는 말에 대해서. '메갈리아4'는 '메갈'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 분명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정신 나간' '메갈'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

또한 '주체'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아직 모금액에 대한 사용 보고가 나오지도 않은 현 상황에서 무척이나 비논리적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마 '메갈' 같은 정신 나간 사이트를 옹호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말에 대해서, '메갈'은 결코 '여자 일베'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혐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메갈'일지언정, 나는 그들을 섣불리 비난할 수 없다는 것.


첫째, 나도 그 티셔츠를 산 후원자 중 한 명이기에, 내 후원액이 이상한 곳에 쓰이는 것은 당연히 방지하고 싶다. 그래서 당연히 후원 사이트와 '메갈리아4'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공지 글들을 모두 읽어보았다. 내가 얻은 답은 다음과 같다.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이 후원의 1차 목적은 페이스북 코리아 민사 소송 패소금 대비입니다. 저희는 지난 1년 간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페이스북 코리아를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꾸준히 밝혀왔습니다. 페이스북 코리아 소송은 갑자기 대두된 문제가 아닙니다."

"…'메갈리아4'는 후원을 받는 입장이기에 설령 비용이 생각보다 적게 들어 돈이 후원금이 더 모인다 할지라도 관리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하지만 티셔츠를 제작할 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최소한 추후 포장을 도와주실 분들께 모자라더라도 저희가 드릴 수 있는 한 어떻게든 대가를 지급해드릴 예정입니다.

이 부분은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다른 후원자님들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결정되었습니다. 디자이너님, 포토그래퍼님 및 모델님들의 인건비는 당초 자원봉사로 시작되어 지금 당장 액수를 산정하기 힘들기에, 추후 제작 완료 후 내부에서 상의하여 결정할 예정입니다."('메갈리아4' 공식 페이지 공지)

동시에 문제가 되었던 '혐오발언으로 고소 당한 사람들의 변호사 비용'으로 쓰인다는 주장도 사실은 이렇다. '메갈리아4'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법률지원을 요청할 경우 작성해야 하는 신청서를 올려놓았다. 신청서가 접수되면, 수행 변호사와 함께 검토 후 법률지원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페미니즘적 사고에 입각하여 이루어졌던 합리적 문제제기에 대한 억울한 소송의 경우에만) 법률지원을 하겠다고도 덧붙였으며, 후원금은 어디까지나 처음 의도인 페이스북 코리아에 대한 소송 절차에 중점적으로 사용하겠다고도 밝혔다.

둘째, '어쨌든 '메갈'이지 않느냐'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메갈'은 결코 '여자 일베'가 아니지만) '어쨌든 '일베'이지 않느냐'라는 문장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아주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일베'라는 사이트, 혹은 커뮤니티 자체에 낙인을 찍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베'에서 빈곤층 아동을 후원했던 사례를 들고 왔던 글을 본 경험을 떠올렸다.

나는 '메갈'의 어떤 파생 사이트에서 '똥X충'이라며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했을 때 그들을 결코 옹호하지 않았고, 지금도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게이 남성도 결국 남성이기에, 한국 사회에서 살아왔다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젠더 특권과 가부장제의 수혜, 여성혐오적 사고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해야 하는 것은 그 지점이지 그들의 성적정체성이나 소수성이 아니다. 이러한 게이 혐오는 '메갈'에서 분리되어 나온 '워마드'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고, 나는 여전히 그러한 풍조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메갈리아4'는 그러한 소수자 혐오 성향을 띠고 있지 않다. '메갈리아4'는 '메갈'에서 파생되어 나온 사이트일 뿐이지 '메갈'과 분명 다르다.

물론 그들이 비도덕적이거나 믿을만하지 못한 기준으로 후원금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것이,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질타와 멸시의 대상이 되는지, 또 그에 관련한 법적 공방이 얼마나 많은지를 안다. 그러한 다툼에서 얼마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부당하게 시달리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때문에 '메갈리아4'에서 적법한 조치를 취해 법률지원을 한다면 나는 그 활동만으로 후원 사이트를 다시 연다 하더라도 기꺼이 후원을 할 의향이 있다. 동시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살펴보면서, 나는 '메갈리아4'가 페미니즘의 이름을 대충 빌려왔을 뿐인 이상한 단체라는 느낌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메갈리아4'가 후원금을 횡령하거나 남용했던 사례도 없는 현 상황에서, 그들을 의심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만약 실제로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 때 가서 잘잘못을 따지고 그들을 비판해도 좋을 일이다.

셋째, '메갈'은 '여자 일베'가 아니다. '메갈'이 '여자 일베'라는 주장은 '메갈'을 다루는 모든 상황에서 '메갈'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얻는 주장 중 하나이며, '메갈'에 대한 공격의 근거로 무척이나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먼저, '메갈'은 '일베'의 반대 개념으로 나온 사이트가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컨텐츠는 '일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한국 사회 전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여성 혐오(Misogyny)' 자체에 대한 반발과 미러링이다. '메갈'은 '여자 일베'라며 그들을 '일베'에 대한 반작용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축소하고 은폐하는 말이다. (칼럼 전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중권 교수는 최근 썼던 칼럼 '나도 메갈리안이다'에서 이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메갈을 공격하는 남자들의 논리는 한마디로 '메갈은 여자 일베'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회적으로 배척해야 할 두 집단이 있다. 하나는 여성을 혐오하는 일베요, 다른 하나는 그것을 남성 혐오로 '미러링'하는 메갈리안이다. 이들은 이 두 극단만 사라지면 자기들처럼 양식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건전한 사회가 실현된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다.

이들이 모르는 것은, 메갈의 '미러링'이 그저 일베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일베는 큰 문제가 아니다. 메갈리안들이 설마 사회에서 아예 내놓은 애들 때문에 저러겠는가?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일베와 다르다고 굳게 믿는 남자들이 일상에서 밥 먹듯 저지르는 성차별적 언행이다. 나를 포함해 남자들은 종종 자기가 성차별 언행을 했다는 사실 자체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게 메갈에서 하는 '미러링'의 진짜 표적이다.

일베가 별나라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인가? 그들은 '한남충'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성차별적 언행의, 익명적이기에 더 노골적인 버전일 뿐이다. 일베는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자신은 일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야무지게 착각하는 빙산의 거대한 밑동이다."

메갈에 쏟아지는 공격과 일베에 쏟아지는 공격은 같지 않다

또한, '메갈'에 대해 이루어지는 공격은 결코 '일베'에 쏟아지는 것과 같지 않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서, '나, 일베 한다'라고 밝히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내 주변의 어린아이도 자기 반에 '일베'를 하는 남자아이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나 또한 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별로 어렵지 않게 자신이 '일베'를 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학생 이용자들을 볼 수 있었다.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바로 진중권 교수와 '일베' 이용자의 토론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물론 '일베'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밝히면, '일베'는 '또X이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타인에 의해서 '미친놈' 취급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메갈'은? 트위터에서 내 지인 중 한 명이 '메갈'에 올라왔던 글을 알티했던 적이 있다. 몇 시간 되지 않아서, 자신에 대한 어떤 정보도 드러내 놓지 않은 익명 계정이 그녀에게 개인 쪽지를 보냈다. 내용은 '메갈하냐?'로 시작해서 '칼빵을 때리겠다', '여러 명과 강간을 하겠다'는 등의 협박과 폭언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 쪽지들을 전부 캡처해 공개적으로 올리고, 고소 절차를 밟았다. 이런 일이 그녀에게만 일어나는 특수한 사례일까? 아니, 내가 트위터를 하면서 목격했던 일상적이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중요한 것은 '메갈'이 '일베'를 공격하는 것과 '일베'가 '메갈'을 공격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아니다. 아주 일반적인 생활에서 느껴지는, 실제로 이 사회가 '메갈'과 '일베'를 다루는 시선의 차이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메갈'과 '일베'의 주체, 즉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 사이에서 발생하는 아주 근본적인 힘의 차이에서 온다.

이 사회가 보기에 '메갈'이, 즉 '나'라는 자아를 분명히 가지고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며 존중과 평등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너무 낯설고 이상한 것이다. 세상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여성혐오적 사상과 규율, '상식'에 따르면 여성은 '그런 적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여성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없는,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객체여야만 하는 이 세계의 가부장적 구조에서 시작된다. 이 정도의 힘의 차이를 갖는, 권위의 차이를 갖는 두 집단을 과연 같다고 볼 수 있는가?

이 시점에서 나는 내가 '메갈'의 혐오발언이나 폭력적 언어를 사용한 미러링에 딱히 크게 놀라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나 평생을 극심한 수준의 여성혐오에 둘러싸여 자라났다. '보전깨(보x에 전구 넣고 깨버리기)', '엠창', '보슬아치' 같은 비속어를 포함해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라는 말이나, 비속어로 취급되지도 않았던 일상적 혐오 표현인 '된장녀', '김치녀' 같은 말에 나는 너무도 쉽게 노출되어 있었다.

저런 언어는 상당히 어린 나이부터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의 대화에서 전혀 어렵지 않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삶은 보통 한국 여성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언어에 둘러싸여 살아온 내가, '한국 남자 성기 작다' 따위의 조롱으로 시작된 '메갈'의 미러링에 어떻게 크게 놀랄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한국 여성은 폭력과 혐오에 이미 익숙하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멸시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마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여성혐오 풍조가 남성으로 간주되는 자들에게만 수여한 특권이나 다를 바 없다.

앞서 인용했던 진중권 교수의 칼럼을 다시 인용하면 이렇다.

'…메갈에서 미러링으로 던지는 남성 혐오에 발끈하는 남자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대한민국 여성들은 그들을 그토록 발끈하게 만든 그런 류의 발언들, 아니 그 이상의 험악한 발언들을 지금까지 늘 들어왔으며,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듣고 있으며, 앞으로도 평생 듣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발언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평생 듣고 살았던 것이자, 나아가 그들의 딸들이 평생 듣고 살아야 할 것이기도 하다.'

실제 현실에서 젠더 사이 힘의 불균형이 이렇게 심각한데, 그 주체의 젠더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두 커뮤니티를 같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자 일베'의 얘기를 하기도 하던데, 가부장제나 여성혐오에 적응하고 스스로를 폭력의 구조 속으로 밀어넣은 여성의 경우 결코 여성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더불어 그 사회적 지위 또한 페미니스트와 다르다. '개념녀'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서 밝혔듯이 나는 '메갈'을 하지 않는다. 그 커뮤니티 안에서의 게이 혐오와 관련해서 굉장히 큰 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메갈리아4'의 경우도 아직 잘은 모르지만, 일단 현재 상황에서 그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글의 맨 첫머리에, 나는 '#나는메갈이다' 라고 적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메갈'에서 나왔던 소수자 혐오뿐이다. 그들이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하는 '미러링' 활동 등에 대해서, 나는 직접 미러링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또 한 명의 페미니스트로서 그들에게 진 빚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미러링을 욕할 수 없다. 욕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나는 거의 항상,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내 견해를 당연히 지지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내 지인들, 그 중에서도 진보적 성향을 띤다고 말하는 남성 지인들 대부분이 '그건 말도 안 된다' 며 나를 '혼내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제로 티셔츠를 사고, '메갈'의 행보를 여러 번 검색해 보았던 나보다 자신들이 '메갈'을 더 잘 안다는 듯 나에게 설명을 시작하곤 했다.

내가 소위 '진보 마초'라고 일컫는 그런 남성들뿐만 아니라, 이런 나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수없이 많은 '진보'들, 혹은 '페미니즘에는 동의하지만 '메갈'에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수없이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혁명, 60~90년대 한국의 민중운동 진영에서 벌였던 혁명과 '메갈'에서 하고 있는 미러링을 같은 선상에 놓아 보라고.

이들의 싸움에 있어서, 그 동기나 큰 틀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해방'을 요구하고, '차별'과 '억압'에 분노했으며, 그들은 모두 칼('메갈'의 경우 폭언을 사용한 미러링)을 들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프랑스 혁명의 경우, 분노한 민중은 왕족과 귀족들을 학살했다. 한국의 민중운동에서(특히 80년 광주에서 벌어진 민중항쟁에서) 폭력 시위가 전혀 없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메갈'은? 그들이 여성이 겪고 있는 실질적 공포와 피해(한국은 2011년 통계청 자료 기준 강력범죄의 피해자 83.8%가 여성인 나라다)를 직접 미러링한다면 그것은 이미 옹호가 논의되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남성을 남자라는 이유로 살해하고, 임금을 차별하고, 취업 시 불이익도 주고, 일상적으로 성희롱해야 하니까.

그러나 '메갈'이 한 일은 고작 인터넷에서 여성에게 쏟아지는 혐오 발언, 폭언을 똑같이 그 대상만 바꿔 뱉은 것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프랑스 혁명과 민중운동에게 취하는 관대한 태도가 '메갈'에게만 허락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에서 말했던 여성의 힘과 관련된 차별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그 의도가 옳다고 해서 모든 일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메갈'의 미러링은 이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하는 사항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여성과 똑같은 수준의 '남혐'을 체감하는 피해자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 대다수의 일상생활에 '메갈'이 끼친 가시적 영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갈'에 쏟아지는 비난과 반발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이렇듯 '메갈'이 하고 있는 미러링이 사회적으로 잘 수용되고 있는 타 혁명 활동과는 달리 이중적이고 차별적인 기준으로 잣대질당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뭔가. 근본적으로 우리가 '메갈'을 운동권으로, '페미니즘'을 진지한 운동으로 보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지금 여성들은 악을 써야만 한다

우리는 '김치녀'라는 말에는 문제의식을 잘 느끼지 못하면서, '한남충'에는 몹시 격하게 그것은 혐오 표현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메갈'의 미러링에 극심한 반발과 비판이 쏟아지는 현재 상황은 결국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자체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즉 프랑스 대혁명과 민중항쟁 같은 '큰일'에 비할 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만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 유시민이 지난 2002년 대선 때 개혁당 내에서 일어났던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요구하는 여성 당원들에게 "해일이 일고 있는데 겨우 조개나 줍고 있느냐"고 말했다. 그 때의 태도가 아직까지도 이 사회가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민중운동 얘기를 다시 잠깐 꺼내 보자. '운동권'이 저지른 악행들은 분명 존재한다. 거칠고 격한 언행, '프락치' 폭행 사건,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입혔던 불법 폭력 시위… 그러나 그들, 한국의 진보 세력이 만들어지는 밑바탕이 되었던 그들은 더 이상 그러한 비난으로 인해 '메갈' 만큼 시달리지 않는다.

나 또한 당시 민중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그러한 악행들을 가지고 '당신들 투쟁의 숭고한 목적은 다 끝장났다'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그들 투쟁의 목표는 페미니즘보다 숭고했다'라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성차별적 주장을 할 게 아니라면, 우리는 그 이유를 그들과 '메갈'의 차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앞에서 계속 언급했던 '메갈'이 여성이라는, 그래서 아직도 가부장적 관념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조용하고 온건하고 부드럽게 말하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는 차별적 배경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 문제의 연장선으로, 그들에게는 있고 '메갈'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정당'의 존재. 즉 실질적인 오프라인 세계에서의 힘의 유무다.

나는 궁극적으로, '메갈'의 미러링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필요 없는' 사회를 원한다. 여성의 목소리에 충분한 힘이 실리고, 우리가 합리적이고 정당한 권위와 자유를 쟁취해낸 사회. 성 평등이 이루어진, 젠더에 있어서 그 발언권이 동등한 가치를 갖는 사회에서 여성은 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금 여성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야 한다.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여성이 강자였다면 굳이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다. 사회는 강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니까. 이것은 단순한 젠더 문제뿐만 아니라 차별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진실이다. 약자의 이런 '소리지르기'를 막는 방법은 두 개뿐이다. 그들의 입을 더 강한 족쇄로 틀어막고 깔아뭉개던지, 아니면 그들의 입을 열어 주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던지.

위에서 말한 공평한 토론과 대화의 장이 '온건한', '예의를 지키는' 논쟁의 전제조건이다. 그런 환경이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인간과 인간 사이의 합리적인 논쟁이 가능해진다. 그런 환경이 만드는 것이 결국 정치적 권력, 즉 '오프라인 세계에서의 힘'이다.

나는 '메갈'의 미러링을 섣불리 비난하지 못한다. 실질적 권리가 없는 약자의 입장에서, 사회 구조가 입을 틀어막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려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흑인들, 노동자들, 성 소수자들 모두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나는 여성으로서, 또한 내가 소속된 사회의 어떤 구성원이 젠더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를 원하는 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당연한 권리와 자유를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그들을 옹호한다. 나는 그들의 분노가, 역사적으로 증명된 다른 많은 사례들과 같이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리라고 믿으며, 그들과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너 메갈이니'라는 질문에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메갈'이다.
#메갈 #메갈리아 #김자연 #약자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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