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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애가 아름답다고?

[리뷰] 조성은 감독의 <우리 연애의 이력>

16.07.26 16:18최종업데이트16.07.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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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연애의 이력> 포스터 ⓒ 더블엔비컴퍼니


조성은 감독의 장편데뷔작인 <우리 연애의 이력>. 제목만 보면 사랑스러운 두 남녀의 로맨스 정도로 연상되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건 의외로 두 남녀가 헤어진 후의 이야기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사람은 헤어져 봐야 그 사람이 어떤지 안다"고 했던 예쁜 오해영(전혜빈 분)의 말처럼 사랑은 끝나봐야 그 사랑이 어떠했는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모든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지만 그 이면엔 사랑의 결핍으로 상처받은 내면을 지닌 예쁜 오해영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던 배우 전혜빈은 이 영화에서 불안정하고 감정적이며 제멋대로인 듯한 여주인공 연이로 분해 자칫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배우 신민철 역시 헤어지고도 연이의 주위를 맴돌며 상처받은 연이를 감싸안고 위로하려 애쓰는 착한 남자 선재의 캐릭터에 잘 녹아든다.

영화는 연이와 선재의 이혼 장면으로부터 시작되어 두 사람의 이별을 기정사실화한다. 하지만 뒤이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집에 들어가 공동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모습에서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대체 이 커플은 뭐지? 이혼하기 전부터 함께 하던 작업이고, 사생활과 일은 별개이므로 헤어졌어도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로 구성한 내용이 두 사람의 자전적인 연애사라는 사실에 이르러선 꽤나 당혹스럽다. 헤어진 아픔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상처를 들쑤시는 꼴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아니나 다를까 시나리오 작업으로 한껏 예민해진 연이는 선재를 향해 폭언을 퍼붓기도 하고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려는 찰나 이를 엎어버리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2년 전에 영화 엎어진 거 다 너 때문이야. 지금 우리 영화 못하고 있는 것도 그냥 다 너 때문이라고. 이게 현실이야. 니가 다 망쳤다고? 알아?"라고 했던 선재의 말처럼 연이는 자칫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민폐 여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연이의 캐릭터에 담긴 사연을 덧칠하면서 연민과 공감을 자아낸다. 내면에 자리한 아픈 상처와 인간적인 나약함을 감추고자 서슴없이 '미친 짓'을 감행했던 연이를 그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영화에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약함과 연약함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항상 사랑스러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해주고 보듬어 주는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 조성은 감독 인터뷰 中

이렇듯 감독의 인간 내면에 대한 응시와 환상이 아닌 연애의 현실적인 고찰을 통해 탄생한 이 영화는 연이라는 캐릭터에 현실성과 공감을 담아냄으로써 로코처럼 가볍지만은 않은 멜로의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호숫가에서 연이와 선재가 나누던 대화가 수영장 바닥을 보여주는 신과 조응하거나 시나리오를 매개로 두 사람이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는 장치도 인상적이었지만, 영화의 진정성이 빛을 발한 건 연이가 눈물을 닦을 휴지를 사기 위해 동네 슈퍼마켓에 들르는 장면이었다. 어린 시절 무대 뒤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연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는 누군가의 말은 상처 입은 연이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직접 눈물을 닦아주지 않더라도 눈물을 닦아줄 티슈를 건넨 그 따뜻함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았을 연이가 어두운 골목길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오열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아프고 진한 여운을 남겼다.

모든 사랑이, 모든 연애가 아름답지만은 않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소설 <행복만을 보았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서로 만나려면 상처받은 사람 둘이 필요한 걸세. (중략) 너희 두 사람은 서로를 구원해 줄 거야."

이처럼 상처받은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과 연애가 아닐까? 극중에서 연이와 선재가 주고받은 말 "나한테 간호 받을래요?"는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욱 설레고 우리를 심쿵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진주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chongah7)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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