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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물에 어울리지 않는 진지함, 독이 되다

[권오윤의 더 리뷰 35] 원작에 충실했지만 재미는 부족한 <레전드 오브 타잔>

16.07.06 13:43최종업데이트16.07.0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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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쾌감 때문입니다. 모두 2시간 내외의 시간을 흥미진진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극장에 갑니다. 어떤 영화에 대한 평가가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초의 기대치가 전부 다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이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을 보러 간 이유는 시각 효과와 액션 연출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주연을 맡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마고 로비 두 사람의 미모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의 포스터.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주)워너브러더스코리아


프롤로그만 해도 괜찮았지요. 악역 롬(크리스토프 발츠)이 이끄는 벨기에 병사들이 콩고 부족에게 몰살당하는 시퀀스는 시각 효과나 액션 연출이 매우 뛰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인물을 규정하고 이야기 전체의 시발점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그러나 존 클레이튼 경, 즉 타잔(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시점으로 넘어오면 급격하게 분위기는 늘어집니다. 액션 영화라면 그에 걸맞게 주인공을 액션의 장으로 밀어넣는 외부 사건들이 잘 짜여져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뇌하는 타잔의 모습과 배경 이야기가 담겨 있는 회상 신들로 내면의 풍경을 소개하느라 시간을 소비하고 맙니다. 타잔이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리도록 외부 조건들을 통해 옭아 넣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 주는 식인 거죠.

이 때부터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가 나올 때까지, 액션의 소용돌이와 인물의 감정이 빚는 드라마 사이에서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중심을 못 잡습니다.

중심 못 잡는 액션 영화, 액션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쾌한 타잔의 줄타기를 보고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포로이자 미끼가 된 제인(마고 로비)과 롬의 합이 안 맞는 기싸움을 봐야 하고, 그러다 보면 다시 타잔이 형제처럼 자란 고릴라와 대결을 펼치는 액션 장면이 나오는 식이죠. 게다가 원작에 기초해서 타잔과 제인의 과거사를 수시로 요약해 주는 것 역시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흐트러뜨립니다.

그나마 시각 효과는 나쁘지 않습니다. 동물 CG는 기대만큼 생생한 편입니다. 특히 고릴라들에 대한 묘사가 실감나는데, 그들이 다투거나 한꺼번에 몰려들 때는 진짜 오싹합니다. 정글을 날아다니다시피 하는 타잔의 줄타기도 괜찮은 볼거리를 선사하지요. 정글의 동물들이 군대 주둔지를 쑥밭으로 만드는 엔딩 시퀀스도 그럭저럭 볼 만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 효과가 주는 재미만으로 2시간을 버틸 수는 없는 일이지요.

타잔 역할을 맡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미드 <트루 블러드>에서 섹시한 북유럽계 뱀파이어 에릭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오른 바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특유의 매력이 잘 안 드러나는 편입니다. 웃는 장면이 거의 없고 계속 심각하기만 한데, 그런 장면들에서는 또 되게 나이 들어 보이거든요. 그래도 엄청난 기럭지와 멋진 몸매는 확실히 돋보입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단숨에 주목받는 배우가 된 마고 로비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인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질 못하고, 차기작 <수어사이드 스쿼드> 예고편에서나 볼 수 있는 할리퀸의 표정으로 일관합니다. 아직 연기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시나리오나 감독의 디렉션도 인물의 감정을 정확하게 짚어주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배우의 팬이라면 차라리 다른 영화를 보는 게...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마고 로비는 타잔과 제인 역할을 맡았지만, 본인들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 (주)워너브러더스코리아


따라서, 두 배우의 팬이라면 이 영화보다는 다른 영화를 찾아 보길 권합니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라면 재작년에 개봉했던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을, 마고 로비라면 올해 개봉될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기다리는 것을 선택해야 겠지요.

'타잔'은 원래 1914년에 처음 나온 미국의 장르 작가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의 모험 소설 시리즈물입니다. 이 영화는 원작의 설정들을 꽤 충실하게 따라가려 노력한 편인데, 100년전 소설이다 보니 그게 오히려 독이 되고 있습니다. 타잔 부부가 맺고 있는 원주민들과의 친분, 그리고 부부 사이의 교감을 자세히 다루면 다룰 수록 원작의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요소가 두드러지니까요. 원작과의 연계보다는 시대에 맞게 새로운 설정을 추가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지금보다 좀 더 제인을 일찍 잡혀가게 만든 다음, 그녀를 구출하는 액션 어드벤처의 과정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풀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보다 이야기는 단순해지지만 훨씬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지금 시대의 관객이 타잔이란 영웅 캐릭터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치도 결국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다른 영화평]
'정치적으로 올바른' 타잔? 구멍이 좀 많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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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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