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돈 오직 7만원, 하지만 수술대에 올랐다

'긴급복지지원 제도'를 이용하다... 사회적 안전망 중요성은 느꼈지만 '맹점'도 존재

등록 2016.06.07 07:24수정 2016.06.07 07:24
4
원고료로 응원
나는 서울 관악구 대학동 윗동네에 사는 청년이다. 이곳은 방값이 싸서 직장인·취업준비생·고시생·학생 등 젊은층이 많이 산다. 나는 대학 졸업 무렵의 학생인데 사회조사·데이터 분석 관련 자격증, 어학 공부를 하고 있고 <오마이뉴스>에서 약 1년 째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생계비는 '알바비+원고료(세후 기준)'로 딱 생존할 만큼은 번다.

나도 꿈이 있다. 대학원에 진학해 인문학 연구원으로 투신하고 싶었고, 성적장학금을 유지하려고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야간에는 고시원 총무로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닌 시기가 있었다(관련 기사: 고시원 총무는 시체 썩는 냄새를 안다). 그런데 그 꿈을 '보류'했다. 인문학계 상황이 암울하고 가난한 학생이 연구자로 뛰어드는 건 더 암울해서만은 아니다.

나도 어머니가 있다. 점점 노동력을 상실하고 계신 어머니의 여생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으면 좋겠다. 조금만 있으면 다달이 용돈을 챙겨 드릴 수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다. 그러려면 준비할 게 많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대학동은 지대가 높아 가파른 계단이 있는 건물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나는 그 계단에서 미끄러져 추락해 발목을 다쳤다. ⓒ 하지율


그런데 지난 5월 16일 오후 8시께 문제가 생겼다. 기사 하나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없어 저녁을 못 먹었다. 초코파이가 먹고 싶었다. 슈퍼를 다녀와야 했는데 밖에 비가 오고 있어 우산을 챙겨 방을 나섰고 익숙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였다.

"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경사가 가파르고, 폭이 좁고, 물기가 흥건한 약 3m 높이의 계단에서 미끄러져 거의 수직으로 추락했다. 헛디딘 오른발이 땅에 닿는 순간 발이 터질듯한 충격을 느꼈고, 안쪽 발목과 발등이 마구 부어올랐다. 그리고 곧 고통이 몰려왔다.

땅바닥에 쓰러져 다친 부위를 부여잡고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정신줄을 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휴대전화도 안 가져나와 기어서 다시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몇 번씩 발목에 자극이 와 비명이 터져나왔다. 고통을 견디느라 땀이 줄줄 흘렀고 비까지 내려 등이 흥건해졌다. 부정할 수 없었다. 'X됐다'는 걸.


하지만... 처음에는 병원 갈 엄두가 안 났다

이 상황에서도 돈 걱정부터 됐다. 계좌에 7만 원밖에 없었고 들어와야 할 돈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이 들어와도 곧 월세와 은행 이자를 내야 한다. 다만 'X레이 촬영과 깁스 비용 정도면 어떻게 감당 가능할지도…'라는 생각에 검사라도 받기로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이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줬고, 검사를 끝낸 의사가 꺼낸 말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복숭아 뼈가 뚝 부러졌고 이 경우 인대도 파열됐다고 봐야 하므로 '입원하고 수술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당황해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병원비를 마련할 방도를 고심했다. 짧지만 암담한 시간이었다.

어두운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보였다. 예전에 '고시원 고립사'에 관한 취재를 하면서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 조사한 경험이 있고 그때 알게 된 '긴급복지지원' 제도가 떠올랐다(관련 자료: 긴급복지지원).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신속히 지원해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할 목적으로(긴급복지제원법 제1조), 국가와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제도다.

7가지 위기 사유 중 하나에 해당하는 저소득층의 소득·재산을 심사해 생계·의료·주거 지원 등을 하는데, 나는 그중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을 당한 경우(입원 혹은 수술을 요할 정도)'에 해당할 것 같고 인간답게 살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직립보행'이 가능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원을 받을 자격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입원 수속을 밟은 뒤 곧 수술을 받았다.

내가 입원했던 Y모 병원 일반 병실. 이와중에도 노트북을 챙겨와 기사를 썼다. 간호사 선생님들 말 잘 들으면 거의 문제 없이 지낸다(가끔 히스테리 부리시는 분은 다메요!). 새벽 6시마다 주사 때문에 깨워 좀 힘들긴 했지만 병원 밥이 생각보다 맛있었던 걸로 상쇄. 씻는 건 다리가 이모양이라 상당히 불편했고 머리도 수염도 못깎아 입원 기간 내내 거의 거지 꼴이었다. ⓒ 하지율


수술은 하반신 마취로 진행됐지만 잠이 들었다. 깨어날 때쯤 거의 끝난 상태에서 주치의 선생님이 수술이 잘 됐다고 설명해줬다. '관혈적 정복술 및 금속 내고정술(피부를 절개해 눈으로 골절 부위를 확인하면서 뼈를 맞추고 금속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핏덩어리가 선지처럼 많이 고여있는 걸 발견해 다 긁어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인대의 경우 MRI 촬영을 해야 하는데 뼈가 붙는 게 우선이고 깁스를 하는 동안 어느 정도 회복 될 수 있으니 경과 관찰을 해보자고 했다. 골절된 부위와 별도로 발등 붓기가 빠지지 않고 발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아 발등 인대 손상이 내심 걱정됐지만, 주치의 선생님을 믿고 약 10일간 입원했다. 수술 부위가 아팠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놓칠 수 없었고, 보건복지부 콜센터(129)로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고 긴급복지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입원한 병원이 서울 관악구에 있다고 밝혔는데, 담당 공무원은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경기도의 지자체 공무원이 배정됐다. 여기서부터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곧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이 왔고 그가 꺼낸 말은 당황스러웠다. 서류들을(진단서, 입원확인서, 병원비 중간계산서, 모든 통장 3개월 거래내역서) 떼와 퇴원 전까지 팩스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당장 서류들을 떼러 돌아다니기는 힘든 다리 부상 환자라는 걸 보건복지부로부터 전달받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팩스로 서류를 보내 위기상황을 입증하지 못하면 지원해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원래 담당 공무원이 위기상황이라 신고된 사람을 찾아와 현장 확인을 할 의무가 있고(긴급복지지원 제8조 제1항), 필요할 경우 얼마든지 다른 행정기관에 협조요청을 구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긴급복지지원 제8조 제2항).

"기자님, 그래도 다시는 이런 취재는 하지 마세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통장 거래 내역서'는 굳이 은행을 방문하지 않아도 ARS 본인 인증으로 팩스로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긴급복지지원' 대상자가 서류를 떼기 위해 덜 움직이고 더 움직이고의 '정도의 차이'일뿐, 어떤식으로든 직접 서류는 다 처리해야 한다. ⓒ 하지율


긴급복지지원은 '현장 확인 후 선 지원'이 원칙이고 사후조사나(소득·재산) 심사는 나중이다(긴급복지지원법 제8조 제3항). 일단 위기상황을 해결하라고 지원부터하고 나중에 소득이나 재산을 조사해 자격이 부적합할 경우 지원해준 돈을 '환수'받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당장 다리가 다친 환자에게 서류부터 떼오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단순히 내가 힘들어져서는 아니었다. 나는 수술 부위 통증을 꾹참고 목발을 짚고 끙끙거려서라도 병동 옆 건물과 인근 은행에서 서류를 떼와 원무과를 통해 팩스로 처리할 수 있었다. 다만 나보다 더 심각한 거동 불능 환자, 의식 불명 환자에게도 '멀다'는 이유로 서류를 떼오라고 시킬지 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의 협조를 받아야 하니 일단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곧 지원 승인이 떨어져 퇴원했지만 고마워하기에는 찝찝함이 남았다.

'애국심'에 도취되거나 '수혜'를 받았다고 여기며 넘길 문제는 더욱 아니다. 나라에 의무를 다 해왔다면 의무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을 자격이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헌법 제34조 제1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가 있다(헌법 제34조 제2항). 위기상황의 시민은 비록 처지가 비루하더라도 '당당하게' 긴급복지지원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내가 발견한 제도 운영의 맹점이 개선되길 바란다.

해당 지자체와 담당 공무원의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해당 공무원의 '개인 일탈'로 취급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상대하는 민원인이 삶에 벼랑 가까이 내몰린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주 자살해버리겠다는 협박·모욕을 당하는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그래서 빨리 서류를 처리하고, 민원인과 접촉을 줄이는 소극적 업무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경향도 있다.

그 결과는 복지의 양적·질적 저하로 고스란히 나타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복지 예산이 확충되고 사회복지 공무원 수가 많아져야 한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점은 나는 이 제도에 대해 사전 취재 경험이 있어 배경 지식이 있었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시민들이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국가와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겠지만, 언론도 꾸준히 조명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오마이뉴스>에 근무하다가 다른 매체로 이직한 K 기자가 꾸준히 안부를 물어봐줬다. 나는 위와 같이 내가 느낀 바를 말씀드렸다. K기자는 "문제점과 지적과 대안이 담긴 생생한 글이 나올 것 같다"라면서도 "그래도 다신 이런 취재는 하지 않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K기자의 말에 동의한다. 앞으로 이런 취재는 좀 사양하고 싶다. 그래도 맹점은 있지만 '긴급복지지원'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이 있으니, 아직 사회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며 보호받는다는 느낌은 들었다. 다른 동료 시민들도 불시에 닥쳐올 수 있는 위기에서 보호받도록 안전망이 더 촘촘해졌으면 좋겠다.
#7만원 #대학동 #고시촌 #긴급복지지원 #사회적 안전망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