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5년밖에 못산다고 했는데

산속에서 자연과 함께 ‘시한부’ 이겨낸 전남 곡성 김영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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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ds2032)등록 2016.05.04 10:36

5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이겨낸 김영철 씨. 김 씨는 지금 통명산 자락, 곡성군 석곡면 상송마을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 ⓒ 이돈삼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못 산다는데요. 약을 먹어도. 잘 해야 5년밖에."

전라남도 곡성의 깊은 산골, 석곡면 방송리 상송마을에서 사는 김영철(58) 씨의 말이다. 김 씨가 살고 있는 집은 통명산(765m)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언뜻 강원도의 어느 산골마을 같은 산중이다. 김 씨는 여기서 자연과 함께 살며 '불치병'이라는 간경화를 극복했다. 완전한 건강체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의사가 그랬어요. 지시대로 잘 따르면 5년은 산다고요. 약을 잘 먹으며 열심히 치료했는데, 차도가 없는 거예요. 병을 낫게 하는 게 아니라, 지연시킨 거였죠. 낫지도 않을 치료를 계속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죠."

김 씨가 치료를 중단하고 산중으로 들어온 이유다. 약을 먹고 치료를 해도 고칠 수 없다면, 굳이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김영철 씨가 통명산 자락에서 채취한 두릅. 봄철에 짭짤한 소득을 가져다주는 작물이다. ⓒ 이돈삼


김영철 씨가 꽃이 핀 블루베리 밭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블루베리는 김 씨가 산골에서 짓는 농사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김 씨는 천안에서 특수 컨테이너를 제조하는 회사를 운영했다. 사업도 잘 됐다. 직원을 40명 뒀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파고를 넘지 못했다. 부도를 맞았고,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빚을 졌다.

김 씨는 도망치지 않았다. 정면으로 맞섰다. 이를 악물고 빚을 갚아갔다. 긴장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숨을 돌리게 되자, 몸의 이상신호가 느껴졌다.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7년이었다.

고향에서 혼자 사는 아버지의 간병도 할 겸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떠났던 고향이었다. 1년 만에 아버지는 이승과 작별을 했다. 자신의 몸도 갈수록 힘들었다. 사업을 할 때는 늘 술을 달고 살면서 과로하기 일쑤였다. 부도를 맞은 뒤엔 빚을 청산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다. 쉰다는 건 사치였다.

김영철 씨가 자신의 삶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사업체를 경영했던 일, 병원의 투병생활, 그리고 산골에 들어와 병을 고친 일 등등. ⓒ 이돈삼


김영철 씨가 담가놓은 발효액과 담근 술들. 김 씨가 직접 재료를 채취해서 담가놓은 것이다. ⓒ 이돈삼


"못 견디겠더라고요. 대학병원에 갔죠. 제가 운전하고요. 진찰을 한 의사가 바로 입원을 하라는 거예요. 그것도 중증환자들이 모인 방에요. '내 몸 상태가 이 정도인가' 싶었죠."

김 씨는 온몸의 힘이 빠졌다. 진찰 한 번 받아볼 생각으로 찾았던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의기소침해 있는데, 얼마 뒤 옆에 있던 다른 환자가 죽어나갔다.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힘내라고. 자신의 지시를 잘 따르면 5년은 산다고요. 앞이 캄캄했죠.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시한부 삶에 대해서."

김 씨는 병원치료를 중단했다. 약을 먹을수록 몸이 더 힘들었다. 면역력을 기르면 질병도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고향마을에서 1㎞ 떨어진 산속으로 들어간 이유다.

전남 곡성의 통명산 자락에 자리한 김영철 씨의 집. 남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깊은 산골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통명산 자락에 들어선 김영철 씨의 집. 김 씨는 여기서 생활하며 건강을 되찾고,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 이돈삼


혼자서 고향마을 뒷산 중턱에 둥지를 튼 김 씨는 약초에 관심을 가졌다. 쑥, 돌미나리, 돌나물, 민들레, 어성초, 쇠비름을 뜯어서 먹었다. 안전한 먹을거리만 섭취했다. 발효액으로 담가서 먹기도 했다. 즐겨 마시던 술도 완전히 끊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냉수마찰을 했다. 그렇게 3년을 살았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완치 판정이었다. B형 간염 항체까지 생겼다. 자연이 준 새로운 생명이었다. 2년 6개월 전이었다.

"안 해요. 추워서 못하겠더라고요." '지금도 냉수마찰을 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김영철 씨의 주된 수입원이 되는 감 말랭이. 김 씨는 지난 가을 수확한 감을 곶감이나 말랭이로 가공해 팔고 있다. ⓒ 이돈삼


김영철 씨의 부인 이순례 씨가 말린 고사리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 이돈삼


건강을 되찾은 김 씨는 산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땅을 조금씩 늘려가며 농사를 지었다. 그 사이 부인(이순례·59)도 내려왔다. 지금은 감을 재배하고 산나물을 가꾸고 있다.

"자연이 준 것만 얻습니다. 인위적으로 기르지 않고요. 표고목도 나무 밑에 세워놓고 기다리죠. 방치농법이죠. 농약 한 방울, 비료 한 줌 안주고요."

김 씨는 여기서 재배한 감으로 곶감이나 감말랭이를 만들어 판다. 두릅, 고사리, 취나물 등 산나물과 구지뽕, 블루베리, 매실을 딴다. 발효즙과 술도 담근다. 벌을 치고 닭도 몇 마리 기른다. 부부의 노동력만으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이다. 수확물은 직거래장터나 전화주문을 통해 판다. 큰 욕심도 없다. 돈도 산중에서 사는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번다.

"예전의 나를 완전히 버렸어요. 욕심도 없고요. 시골생활이 그러잖아요. 욕심 부린다고 큰 수익 얻는 것도 아니고요. 산신령과 친구하면서 마음 편하게 삽니다."

김 씨는 산골의 생활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김영철 씨가 집앞에서 개와 함께 망중한을 누리고 있다. 개들은 김 씨가 산골에서 사는데 든든한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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