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욕구 불만? 정권 책임이다

[총선 게릴라칼럼] 4.13 총선, '국민행복시대' 평가하는 기말고사

등록 2016.04.03 21:45수정 2016.04.0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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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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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2월 6일,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행복하십니까?"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는가? 선뜻 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못 된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고, 모두가 알듯 심적 상태는 외부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 바뀐다. 따라서 '대체로 행복하십니까?'나 '무엇을 할 때 행복하십니까?'처럼 조건을 달아 물어야 제대로 된 질문이 될 듯하다.

한국 지도자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만큼 '행복'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 사람도 없다. 그는 대선 후보시절 선거본부 이름을 아예 "국민행복캠프'라고 지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첫 인사말로 "국민행복시대를 열어나가겠다"는 말을 했다. 임기 1년을 지닌 뒤 신년인사에서도 "국민 행복을 위한 일 외에는 다 번뇌"라는 비장한 표현으로 '행복 공약'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그 뒤로 대통령의 말에서 '행복'이라는 어휘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국민행복시대'를 이미 완성했다고 믿기에 더 말할 필요가 없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나, 나는 대통령의 임기 3년을 넘긴 시점에서 '행복시대' 주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 3년, 대체로 행복하셨습니까?"

'섹스하고 공연 볼 때' 가장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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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의 가장 행복한 순간 3가지"를 보도한 <뉴요커> 사진. ⓒ New Yorker


대통령 눈에는 무엇이 '행복'으로 보일까? '국민 행복시대'를  외치던 그는 국민들이 어떨 때 행복해 하는지 알고 있었을까?

몇 년 전 재미있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았다. 2011년 런던정경대학(LSE)이 4만 5천 명의 아이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물었다. 1위가 '섹스할 때'였고, 같은 비율로 공동 2위에 오른 것은 '운동할 때'와 '공연을 감상할 때'였다.

'망측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국인이 특별히 '섹스광'은 아니다. 표현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때'로 바꿔보면 오히려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하는 순간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뒤의 '운동'과 '공연 감상'은 우리의 보편적 정서와 동떨어진 '사치'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동떨어진 것으로 말하면 '섹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연애할 시간도, 돈도,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화이자는 2009년에 아시아 국가들의 성만족도를 조사했을 때, 한국은 13개국 중 12위였다.

이 보고서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성만족도가 가정, 건강, 금전적 여유, 직업 만족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2011년 유사한 조사에서도 한국인의 성만족도는 최하위 수준이었다. 우리의 삶이 훨씬 더 각박해졌다는 점에서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가 제시한 '욕구단계설'을 봐도, '애정, 소속 욕구'는 의식주라는 '생리욕구'와 신체적 위협을 피하는 '안전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야 나타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 안 된 나라에서는 '애정'은 커녕 '안전'조차 사치로 전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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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의 욕구단계설. 한국은 반세기 동안 '하위단계'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점차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의 최저생계(생리 욕구) 보장을 '포퓰리즘'으로 거부하고, '안보 위협'을 과장하거나 부추겨 권력을 유지하려 할 때 왜 출산율(애정 욕구)이 추락하고 예술(자기실현 욕구)이 몰락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 강인규


보수 노인 단체들은 자주 '전쟁불사'를 외치곤 하는데, 이는 그들의 기본적 생리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같은 이유에서,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이 '전쟁불사'를 외치는 것은 진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리 해외 재산이 많고 재빨리 외국으로 피신할 수단이 있다 하더라도, 국내 주식이 휴지가 되고 부동산이 잿더미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적 욕구 불만? 정권 책임이다!

보수정치세력은 '안보 위협'을 핑계로 국민들의 임금인상이나 복지에 대한 요구를 짓밟곤 한다. 이는 그들이 국가를 존속시키는 데 관심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초생계가 보장이 안 되는 나라,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나라에서는 아기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안보 위협을 과장할 때,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권력 유지다.

앞의 영국 여론 조사에서 '공연'과 공동 2위를 차지한 '운동'은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리에게는 건강이나 즐거움을 위한 활동보다는 '몸 만들기'라는 또 다른 경쟁행위일 뿐이다. 공연? 우리는 세계 최장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고용불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악이다. 이러니 공연을 감상할 여건도, 여유도, 기력도 없지만, 무엇보다 '취업률'을 이유로 예술대를 폐쇄하는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공연'으로 대표되는 예술 또는 창작활동은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의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잠재력을 확인하려 하고 그것을 최대한 확장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비로소 꿈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이티비씨(jtbc)는 올해 2월 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1위는 '공무원'(22.6%)이었고, 2위는 '건물주와 임대업자'(16.1%)였다. 그 이유로 학생들은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중고등학생 10명 중 3명은 아예 '꿈이 없다'고 답했다. 앞의 설문조사는 '공무원'과 '건물주'를 말한 학생을 '꿈이 있는' 것으로 통계처리했지만, 사실은 모두가 꿈이 없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내세웠지만, '창조'는 기본적인 '생리욕구'와 '안전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생존에 목 맨 사람들은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선택만 하려들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건물주'로 가득찬 나라를 생각해 보라.

'투표 잘 해서 섹스하자'라는 구호

연애에 실패하고 계신가? 꼭 개인 탓만은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 생계를 책임지면 학벌, 재산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매력과 인품만으로 상대를 고를 수 있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합할 이유도 없어진다.

국민의 최저 생계가 보장되면 연애 가능한 상대가 대폭 늘어나고, 쌍방이 동등한 조건에서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조건' 대신 '애정'으로 결합한 사람들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된 정부를 세우면 연애 성공률뿐 아니라 연애의 질까지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표 잘 해서 섹스하자'라는 구호가 그다지 '과격한' 구호만은 아닐 것이다. 그뿐인가. 투표 잘 하면 우리도 운동을 즐길 수 있게 되고, 좋아하는 공연도 마음껏 볼 수 있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포기 해 온 '꿈꾸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행복시대'는 대통령이 아닌 당신 손에 달려 있다.
#박근혜 #행복 #국민행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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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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