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열풍' 조성진... 박근혜 부녀의 역설

[총선 게릴라칼럼] 이번 총선, '빵'과 '장미' 모두를 요구하자

등록 2016.03.31 23:10수정 2016.03.3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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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한국에서 기록적인 판매를 기록한 조성진의 첫 음반. ⓒ DG


놀라운 일이었다. 음반 5만 장이 일주일만에 동이 났다. 전세계 판매량도 아니고, 국내에서 팔려나간 음반 수였다. 게다가 폭발적 인기몰이가 어려운 클래식 앨범이었다. 예상치 못한 수요에 놀란 음반사는 황급히 5만장을 다시 찍었다.

지난해 10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국에 '쇼팽 열풍'을 몰고 왔다. 그의 첫 음반이 순식간에 매진되었을 때, 나는 반가우면서도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몇 년 전 바이올리니스트를 인터뷰하면서 '잘 나가는' 연주자들이 음반을 몇 장이나 파는지 물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답변은 간단했다. '많이 못 판다'는 것이다. 이어 그가 구체적 숫자를 언급할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만'도 아닌 '천' 단위였기 때문이다. '스타급' 연주자의 음반 판매량이 그 정도라는 것이다. 그는 세계 전역에 꽤 많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다른 유명 연주자들의 음반 판매량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연주자들의 수입 대부분은 공연에서 나온다. 녹음이 음악적 성취를 기록하는 작업이고, 이를 통해 지명도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이 음반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음반을 팔아 돈을 버는 클래식 연주자는 거의 없다. (인터뷰했던 바이올리니스트는 음반 출시를 '학자들이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일'에 비유했다.)

앞의 대화를 나눈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 사이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음반 구매에서 '내려받기'와 '스트리밍'으로 바뀌었으므로, 클래식 음반 시장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조성진의 경이로운 음반 판매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조성진에게 쏠린 관심의 상당부분은 국제 쇼팽 콩쿠르 우승 뒤 쏟아져 나온 언론 보도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언론의 힘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동안 국내 언론이 주목한 연주자가 조성진 한 명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론이 열광적으로 보도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항상 폭발적 구매로 화답해 온 것도 아니다.

예술은 위험한 선동


의대와 음대 취업률을 비교하는 언론 기사.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정부, 언론, 대학 널리 퍼져있다. ⓒ 아주경제


한국처럼 여론의 '쏠림'이 강한 곳에서도 클래식 음반이 수만 장씩 팔리는 것은 매우 희귀한 사례다. 일부는 '애국주의 소비'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한국 연주자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 몇 년간 피아노부문 성적만 봐도, 2005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대회 사상 최연소로 결선에 진출해 2위를 거머쥔 조이스 양이 있고, 2006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리즈 국제 콩쿠르에 우승한 김선욱이 있다. 2009년에는 이진상이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우승을, 손열음이 밴 클라이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3년에는 선우예권이 센다이 국제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둔 데 이어, 이듬해 열린 제네바 콩쿠르에서는 문지영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여기에 다른 악기들과 성악을 합치면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주의' 하나로 '조성진 현상'을 제대로 설명해낼 수는 없다. '애국주의 소비'가 제품의 질이나 개인의 기호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맹목적이고 집단적인 구매 형태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조성진의 연주는 누가 들어도 탁월했고, 그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난 쇼팽의 곡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느닷없이 찾아온 '쇼팽 바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쇼팽 음악이 지닌 보편적 감수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콩쿠르 우승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대중들이 그동안 잊고 있던 음악적 감수성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 역할을 했을 뿐이다. 쇼팽 특유의 구슬프고 서정적인 가락은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들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드는 일, 이것은 예술의 궁극적 목표다. 예술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깨우는 것은, 우리 삶이 단순히 먹고 싸는, 다시 말해 숨 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물과 달리, 사람에게는 빵과 장미 모두가 필요하다.

이 사실은 예술이 꼭 필요한 이유인 동시에, 보수 권력이 예술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데서 시작해,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억누르고 탄압해 온 이유를 설명해 준다. 우리 삶이 먹고사는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불온하며, 이런 생각을 퍼뜨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동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예술학과, 활개치는 '황당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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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정문 전경. ⓒ 하지율


한국의 보수 권력은 '잘살아보세'라는 동물학적 생존의 담론으로 이상, 배려, 연대 등의 인간적 가치를 탄압해 왔다. 그러면서도 반세기 넘게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해결은커녕,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권력이 예술을 어떻게 대우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한겨레>는 최근 김영나 중앙박물관장의 '보복경질'에 대해 보도했다. 프랑스 명품업체들이 중앙박물관 측에 상업적 전시를 유치할 것을 종용하면서 청와대와 접촉했고, 이후 대통령이 '명품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박물관장을 불러 전시를 성사시키도록 압박했으나, 관장은 전시의 상업적 성격이 공공박물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난처해했고 결국 전시가 무산되었다. 이후 박물관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현 대통령의 예술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기막힌 일들이 수년 전부터 되풀이되고 있다. 정부의 사주와 강요 속에서 대학들이 예술학과를 강제로 없애거나 통폐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조조정'에는 대학 운영을 '돈벌이'와 구분하지 못하는 재벌 재단 측의 반교육적인 사고구조도 큰 몫을 한다. 

예컨대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은 2010년 18개의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의 학과를 46개로 줄이는 대규모 통폐합을 단행한 뒤로 지금까지 '대학구조개편의 모델' 대접을 받고 있다. 물론 핵심은 '장사'가 잘 안 되는 학과나 취직과 직결되지 않는 학과들을 없애는 것이다. 안 그래도 취업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정부는 취업률을 대학평가에 반영해, '비인기학과'를 없애는 대학들에 막대한 돈을 안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장 큰 수모를 겪는 학과는 철학, 외국어 등의 인문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음악, 미술, 체육 분야다. 직원들의 밥줄 끊는 것을 '경쟁력 제고'로 자랑하는 한국 기업들이 구조조정 절차를 학생과 교수와 더불어 숙고하고 토론할 리 없다. 상명하달식 결정과 일방적 통보가 보통이고, 이렇게 속전속결로 '거사'를 처리한 대학일수록 오히려 후한 보상을 받고 있다.

대학의 정원 줄이기와 정부의 '취업률' 압박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전국 각지에 '학과 통폐합 쓰나미'를 몰고 온 것은 2014년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대학특성화사업'과 '대학구조개혁평가'였다. 정부는 학과 통폐합을 더욱 압박하기 위해 5년간 무려 1조 2000억 원을 미끼로 내걸었다. 같은 해 중앙대는 인문계열학과 9개를 4개로, 예능계열 14개 학과를 7개로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그 결과 76억 원이 넘는 지원을 받으며 정부의 재정 지원사업을 싹쓸이했다.

정부는 학과를 '창의적'으로 통폐합하는 학교에 특별히 후한 점수를 주었는데, 그 결과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프랑켄슈타인 학과'들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2015년 12월 경희대 부총장은 학생들과 면담하는 가운데 국문학과와 전자전파공학과를 통합해 웹툰창작학과를 만들 수도 있다는 학과 융합의 '예시'를 들었다. 건국대는 동물생명과학대와 생명환경과학대를 합해 가칭 '융합생명과학대'로 통합하기로 잠정 결정했고, 이화여대에서는 '뷰티 트랙'과 '탤런트 학과'를 새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뒤에 터져 나온것이 신라대의 무용학과, 음악학과, 미술학과의 폐과 통보였다.

'쇼팽 광풍', 왜 하필 지금?

예술학과를 없애서 국민들이 부유하고 행복해진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통폐합의 풍랑이 몰아친 지난 수년 동안 취업난은 더 악화되었고, 국민들의 삶은 더 비참해졌다. 오히려 대학에 '비인기학과' 대세였던 1980-90년대에 청년들은 아무 문제 없이 취직했다.

신라대가 무용학과를 신설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였다. 사람들이 단순히 '먹고사는' 것을 넘어 삶 속에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학과는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를 내세운 딸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쇼팽 바람'이 불었을까? 나는 대학가에 운동권이 살아나고 서점에 마르크스가 돌아오는 이유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유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저항의 중요성을 깨닫듯, 예술이 사라져가는 암담한 현실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애틋한 가락에 잠시 귀 기울일 여유마저 허락하지 않는 현실, 우리는 이렇게 '생존'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정부가 앞장서 벌여 온 예체능 학과 폐지는 '도둑이 매를 드는' 뻔뻔한 적반하장의 결정체다. 밥도 먹여주지 못하는 주제에, 배고픔을 잊고 꿈꾸는 청년들의 뺨을 때리는 꼴이니 말이다.

선거에 앞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지난 반세기 내내 '빵' 하나로 당신의 표를 구걸했던 권력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약속했던 빵은 주지 못하면서 시든 장미마저 짓밟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조성진 #쇼팽 #신라대 #학과통폐합 #취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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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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