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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영화 같은 치밀함, 시스템의 문제를 폭로하다

[권오윤의 더 리뷰 8] 시스템 내부에 있으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16.02.29 15:53최종업데이트16.02.2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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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주요 출연진. 이들의 놀라운 연기 호흡이 영화의 사실성을 높여 주었다. ⓒ (주)더쿱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지난 2002년, 보스턴의 신부 성추행 사건을 극적으로 보도했던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의 취재 과정을 재구성합니다.

장르상 범죄를 파헤치고 감춰진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범죄 스릴러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점은 주인공이 형사나 변호사가 아닌 기자들이라는 것뿐이죠. 플롯의 초점은 누가 진짜 범인이냐 대신, 과연 이 사람들이 진실을 밝혀내고 보도에 성공할 수 있을까에 놓여 있습니다.

이야기 구성이 마치 거대 기업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건 변호사가 나오는 법정 영화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런 영화들에서 법적 논리와 절차에 따라 확보된 증거들이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것처럼, 특종 보도를 하는 데에도 합당한 절차와 물적 증거가 필요하니까요. 모든 과정이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무시하고 일단 터뜨리고 보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 언론 현실과 정말 비교되는 지점이지요.

그들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그저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디테일하게 잘 그린 영화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자들 각각의 내면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문제들을 건드리면서요. 이렇게 해서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열혈 민완기자 마이크는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깊이 공감합니다. 그 역시 보스턴 출신으로 가톨릭 전통에서 자랐으니까요. 어쩌면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 감정이 그의 정력적인 취재의 동력이 됩니다. 또한 그는 보스턴에 얼마 없는 포르투갈계이기도 해서, 역시 보스턴에서는 희귀한 아르메니아인 변호사 개러비디언과 교감을 나누기도 하죠.

팀의 홍일점인 사샤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그들에게 깊이 공감하게 되면서, 주말마다 할머니와 가던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기사가 나갔을 때 일주일에 세 번이나 성당에 가는 할머니가 받을 충격을 걱정하지요. 또 다른 팀원인, 두 아이의 아버지 맷은 자기 동네에 성추행 신부의 쉼터가 있음을 확인하고 경악하지만, 취재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공개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전전긍긍합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마이클 키튼이 열연한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는, 보스턴 사회의 주류 집단에 속하는 인물로서 영화의 주제가 되는 딜레마를 몸소 겪게 된다. ⓒ (주)더쿱


그중에서도 특히, 보스턴 사회의 주류에 속하면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가 겪는 사회적 압력과 깨달음은 이 영화의 주제와 곧바로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취재를 진행하면서 자기가 평소에 알던 보스턴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접촉합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취재를 말리지요. 어디나 썩은 사과가 있기 마련이라면서요. 처음에는 이것을 여느 취재 과정에서 일어나는 저항으로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이런 반응이 어쩌면 아주 일반화된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를 바로잡는 '진짜' 방법

그러고 보니 <보스턴 글로브>조차도 이전까지는 신부들의 성추행을 단신 기사로만 다뤄왔을 뿐이었습니다. 로비 자신도 수년 전 성추행 신부들에 대한 제보를 받고도 무시해 버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외지 출신으로 보스턴 글로브 최초의 유대인 편집국장으로 부임한 마티의 제안이 없었다면 탐사 보도 기획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지지하는 집단의 문제는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특이한 케이스라고 규정해 버리거나 그것을 저지른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버리게 되죠. 전체 시스템의 문제에는 애써 눈을 감고 맙니다. 그렇게 넘어가는 동안 피해자는 점점 쌓이게 되겠지요. 개별 사실들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려는 노력, 그리고 주류가 아닌 사람들의 비판을 무시하지 않는 것만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톰 맥카시는 이미 <스테이션 에이전트(The Station Agent)>(2003)나 <윈 윈(Win Win)>(2011) 같은 영화에서 상반된 인물들 사이의 교감을 통한 내적 성장을 다루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탐사 보도라는 메인 플롯에 인물들 각각 삶의 단편을 매끄럽게 섞어 짜 넣은 실력이 아주 돋보이지요. 이미 전미작가조합상(WGA Award)을 받았고, 곧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각본상 후보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다들 좋은데 그중에서도 레이첼 맥아담스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마이클 키튼이나 마크 러팔로는 이미 검증된 배우이지만, 그녀는 그간 외모에 집중된 평가 때문에 오히려 연기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상대에게 깊게 공감하는 리액션과 명민한 눈빛으로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런 노력은 생애 첫 아카데미 후보(여우조연상)에 오르는 것으로 보답을 받았습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포스터
ⓒ (주)더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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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포트라이트 영화 톰 맥카시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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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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