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회의 하는데 다들 차 끌고 와요, 웃기죠?

[전환을 향해서③] 냉장고 없이 사는 파리지엔느 집에 가다

등록 2016.01.03 11:25수정 2016.01.0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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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그 로지에 ⓒ 정운례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C 이하로 하는데 195개국이 만장일치로 합의를 본 COP21 파리회의가 막을 내렸다. 파리회의가 시작되기 바로 전 토요일인 11월 28일, 환경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려고 겨울에 난방을 안 하고 샤워를 안 한다는 파리지엔느가 있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브리그를 만난 건 알테르나티바(Alternatiba)라는 환경행사 중에 섰던 300여 개의 부스 중에 라실렁스(La Silence, ' 침묵'이라는 뜻)라는 환경전문 신문 부스에서였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파리 11구,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오베르캄프 역과 바스티유 광장 사이에 있으니 파리 중심가에 있는 셈이다.

집에 들어서니 전체가 아늑하게 나무색이다. 외투를 벗을까 말까 망설이는데 주인장이 눈치를 챘는지 난방을 안 했으니 외투를 입고 있는 게 좋을 거라면서 추우면 스웨터를 하나 빌려주겠다고 한다.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만 있었는데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낮에는 소파 대용으로 쓰는 침대 자리를 내주며 내게 앉으라고 했지만 차마 초면에 감히 이불 위에 앉을 수가 없기에 침대는 그에게 내주고 나는 오래되어 만질만질한 나무 의자를 가져다 마주 앉았다. 의자에 방석이 깔려있어 차갑지 않았다.

'나는 유명인사도 아닌데 무엇을 인터뷰하고 싶으냐'고 그가 묻는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생활,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답했다. 감을 잡았는지 그가 말문을 텄다. 

적게 소비하고, 다른 방식으로 소비를 한다

브리그 로지에씨가 사는 파리 11구의 거리 ⓒ 정운례


"내가 난방이랑 냉장고 없이 사는 건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정치적인 의식 때문이지요. 지구 온도를 2°C 이하로 의무적으로 낮춰야 한다면 일상생활이 그걸 따라가 줘야 해요.소비할 때 첫째는 적게 소비해야 하고, 둘째는 소비를 하되 다른 방식으로 소비를 해야해요. 우리가 현재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아예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 예컨대 어떻게 소비를 해야 할까요?
"저도 소비를 많이 줄이려고 하고는 있지만, 도시에 살고 있으므로 아주 기본적으로 지출하는 항목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인터넷 같은. 그리고 전기료로 한 달에 2유로를 내요."

- 인터넷은 시골에 살아도 지출 필요항목일 것 같아요. 근데 전기료로 한 달에 2유로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참고로 필자는 4인 가구 한 달 전기료로 평균 70유로를 내는데 이건 매우 적은 편에 속한다. 로지에씨가 혼자 살고 있다고는 해도 한 달에 2유로란 정말 상상할 수 없이 적은 금액이다)
"세탁기, 냉장고, 온수, 난방 등은 공용으로 하고, 집은 지붕 밑에 들어와 자는 곳이면 충분해요. 제가 난방을 안 트는데, 공기를 데우기보다 몸을 데우는 거에요. 스웨터도, 이불보도 다 제가 직접 떴어요. 정 추우면 벽난로를 때요. 겨우내 한번 땔까말까 해요. 혹자는 전쟁통 밑에서처럼 가난하게 산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다른 방식으로 살 뿐이에요. 냉장고도 사실 필요 없어요. 저는 유제품을 더는 먹지 않고, 버터와 고기도 먹지 않아요. 게다가 요리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으니까 냉장고가 필요가 없어요. 장을 볼 때 먹을 만큼만 사면 되고요. 요즘같이 추울 때는 창밖에다 냄비를 내놓으면 자연 냉장고가 되죠."

- 샤워를 안 하신다고 하셨는데 설마 일 년 열두 달 안 씻는다는 얘기는 아니겠죠?
"하하. 파리 시립 목욕탕에서 씻어요. 시립이라 무료에요.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료시설이 많이 마련돼야 해요.스웨덴의 경우 모든 집합주택 지상층에 세탁기가 마련되어 있어요. 거주민들이 모두 공동으로 사용할 수가 있죠. 이미 30년 전부터 그랬습니다.'이건 내 것, 이건 내 것, 이건 내 것'하고 각자 물건을 따로따로 살 필요가 없어요. 필요한 물건이 줄어든다는 건 그걸 사는데 들어가는 돈이 줄어드는 거죠. 학교가 무료인 것처럼 병원이나 집도 공공 서비스화 되어야 해요."

- 옷은 어떻게 사세요 ?
"지금 입은 이 바지는 딸이 시장에서 싸게 주고 산 건데 작아졌다고 저를 줬어요. 이 스웨터는 자투리 뜨개실을 모아서 제가 직접 뜬 거고요. 가끔 필요한 게 있으면 중고시장에서 사기도 해요. 하여튼 저의 사계절 옷은 모두(높이 1m의) 장에 다 들어있어요. 사람들은 많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소유해야만 한다고 여겨요. 하지만 그럴수록 자원은 고갈되고, 갖고 싶은 것을 못 얻으면 괴로워하죠. 그걸 조절할 줄 알아야 해요."

사고할 줄 아는 권력, 나눌 줄 아는 권력

브리그 로지에씨가 협회 활동을 하면서 읽고 나눠주는 하는 책들. '기계를 부수자' '자발적인 단순함의 가치' '탈경제' 노동자에게' '무엇을 할까? 기근' '자발적으로 단순하게 산다' '기계가 멈추다' '현대 노예' '오직 삶이 진정한 부' ⓒ 정운례


- 맞아요. 이미 가진 이들이 더 많은 걸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매 정부들이 늘 자기 임기만 생각해요. 길게 보고 정책을 세워야 하는데, 자기 임기 안에 눈에 띄는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게 문제에요. 라디오에서 '구매력이 준다, 구매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는데, 구매하는데 권력을 줘야하는게 아니라 사고하고 나누는데 권력이 가야해요.

사람들이 뭔가를 끊임없이 사거나 단 거, 술, 담배를 계속 찾는 건 애정결핍, 아니 그보다는 만족결핍 때문이에요. 만족할 줄 모르니까 사도 사도 행복하지 못하고 또 사는 거에요.
이 속도로 소비를 계속하게 되면 어느 순간 자원이 고갈되고 오염은 더 심각해지고 경제가 추락하게 될 거에요.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예전만큼 소비할 수 없게 돼서 우울해지겠죠. 하지만 저는 안 그래요. 이미 적게 소비하는데 익숙해 있고, 소비가 행복의 근원이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65살이 되어야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평생을 일해요. 저는 돈을 버는 것보다 내 시간을 갖고, 내 자유를 찾으려고 했어요. 내 시간과 서비스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걸 선호했어요. 70년대 들어서 세탁기, 전기청소기 등 여성의 가사를 줄여주는 기계들이 등장했죠. 왜 그랬을까요?"

-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서 남자들처럼 평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맞아요. 그랬죠. 하지만 평등해지기 위해서 남자들이 하는 일을 여자들이 똑같이 해야 하는건 아니에요. 남자들처럼 사회생활을 해야만 여성의 자유가 생기고, 여성이 남성만큼 평등해지는 게 아니에요. 그건 돈의 평등이죠. 여성의 자유와 평등은 바로 나, 여성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거에요. 저는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도 여성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느낍니다.

많은 엄마들이 애를 남한테 맡겨놓고 나가서 일하고, 일해서 벌어온 돈을 애 돌보는 데 쓰고는 애 얼굴은 주말에만 봅니다. 보모한테 지급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니까 또 일해요. 왜 그렇게 살아요? 저는 나가서 돈 벌지 않고, 제 자식 네 명을 제가 키웠어요. 그래서 제 시간과 제가 믿는 가치를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줄 수 있었어요. 제 자식들 다 지방에 내려가서 살고 있는데, 그중에 아들놈은 저보다 더한 환경주의자가 돼서 살고 있어요.»

- 전업주부가 가능했던 이유는 적어도 부모 중 하나가 밖에서 돈을 벌어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거야 그렇지요. 하지만 한 쪽 부모가 밖에서 돈을 벌어온다고 해서  남녀가 불평등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가사노동이 사회에서 가치폄하를 받고 있어요. 하지만 엄마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나요?  24시간 밤낮으로 신경 쓰는 게 엄마의 일이잖아요. 다만 지금 이 사회에서는 엄마의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아요. 일이란 게 꼭 돈을 벌어야만 일인 것은 아니잖아요."

그의 집에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색은 나무색이다. 건넌방 책장에 박물관 전시물처럼 진열된 로지에씨의 예술창작품들. ⓒ 정운례


- 맞아요. 엄마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면 돈을 지급해야 하니까 엄마의 가사노동이 경제적 가치가 없는 건 절대 아니죠. 반면에, 제 경우는 큰애를 임신하고 키우면서 바깥 활동을 한순간에 중단해야 했고, 동요만 줄곧 듣고, 동화만 읽어주면서 미칠듯이 답답했어요. 아이를 보고 있으면 행복했지만 제가 원하는 지적 갈등을 채울 수가 없어서 몹시 우울했어요.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이유는 꼭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바깥일을 하든 집안일을 하든 선택의 문제여야 하고, 바깥일을 해야만 남성과 평등해지는 건 아니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금은 혼자 사시는데 생활을 위해서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지 않나요?
"제가 한 달에 받는 연금이 400유로에요. 아파트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으니 다달이 나가는 월세가 없고, 전기와 물세만 내요. 차가 없고,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녀요.
환경 문제나 반성장주의에 관련된 회의를 하면요, 웃기는 게 사람들이 다들 차를 끌고 와요. 자전거 타고 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CO2 많이 배출하는 비행기? 안 탑니다. 승강기? 그게 전기를 얼마나 많이 잡아먹는데요. 승강기 안 타요. 계단으로 다녀요. 운동도 되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이웃과 마주치며 대화도 하고 얼마나 좋아요? 제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뒤로 공용 부문의 전기세가 줄었대요. 다 제 덕분이에요. 하하."

- 비행기도 안 타시면 여행은 어떻게 하시나요?
"파리에 있으면 온 세상에서 온 사람들을 다 만나요. 일본인, 중국인, 보스니아인, 루마니아인, 러시아인 등등 세상 사람들이 다 파리에 와있어요. 참, 한국 사람도 있어요. 한국까지 갈 필요가 없어요. 하하."

- 지구 저편에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사나 궁금하지 않으세요?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아요. 세상 어디나 엄마가 아이 키우는 게 똑같은 것처럼요.사람들이 여행 다니는 거, 그저 사진 찍으러나 다니는 거지요."

- 환경을 위해서 실생활 속에서 철두철미하게 실천을 하시는데, 동기가 궁금해요.
"어려서부터 사회적 계층 간의 불평등에 굉장히 민감했어요. 그래서 자율적, 독립적으로 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같은 이유로 커피와 차를 마시지 않아요. 인도에서 찻잎을 따기 위해서 여자아이들과 여성들이 얼마나 노예처럼 일하는 줄 아세요? 저는 오로지 우리 서양인을 위해서 먹거리를 재배하는 나라가 있다는 걸 참을 수가 없어요."

(필자 주 - 커피와 초콜릿의 생산지는 남반구, 주 소비자는 북반구로 싼값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비싼 값에 팔리지만, 그 이윤은 생산자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공정무역이 탄생했다. 특히 네슬레 초콜릿이 아프리카 어린이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른 채 먹는다는 건 참 슬프다.)

- 그럼 초콜릿도 안 드시겠네요?
"(어린아이처럼 가득 웃음을 띠며) 아! 초콜릿은 좋아해요. 그런데 누가 있을 때는 안 찾고,꼭 혼자 있을 때만 먹어요. 외로울 때 찾게 되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술이나 담배에서 위로를 얻는 거랑 똑같아요. 술, 담배, 그게 꼭 필요한 게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거죠."

- 평소에 장은 어디서 보세요?
"시장에서 봐요. 시장에 가면 지역생산자들이 오거든요. 생산자한테서 직접 삽니다. 슈퍼마켓, 하이퍼마켓은 절대로 안 가요! 거기는 로비를 많이 하고, 멀리서 온 먹거리들 천지고, 계산대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로비스트들이 많은 돈을 받아요. 중국산 옷을 예로 들어 보죠. 멀리서 오니까 석유 소모하죠, CO2 배출하죠, 품질이 안 좋으니 쉽게 닳죠, 그리고 그걸 만드는 현지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한 노동환경에서 착취당하며 일하는데요."

- 말씀을 가만 들어보니까 여러 사회운동에 참여하실 것 같아요.
"네. 환경신문 '라씰렁스' 부스에서 자원봉사할 때 우리가 만났잖아요. 그 외에도 셰일 가스 반대 운동, 난민 돕기 협회, 범대서양 자유무역협정 (TAFTA) 반대 운동,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을 돕는 모임 등 여러 협회에 제 시간과 서비스를 할애합니다."

- 이제 슬슬 인터뷰를 마감할까 합니다. 마지막 질문이요. 현재 환경 문제, 실업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일(一) 이 되는 거에요. 변화하는 백만 명 중에 한 명, 백만 보 중에 한 걸음을 내디디면 돼요. 개인적인 문제로 보지 말고 연대를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소비사회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연대감을 키워야 해요. 예를 들어, 친구랑 같이 산다고 생각해봐요. 각자가 따로 사야할 게 많이 없어요. 옷도, 음식도 많이 필요 없고, 초콜릿도 필요없고요(웃음). 모든 서비스를 돈으로 보상하기보다 시간과 서비스의 교환 가능성을 더 많이 열어야 해요. 현재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원과 집, 다시 말해서 무상진료, 무상숙소 등 공공서비스를 점점 더 확대해 나가야 해요."

브리그씨는 다양한 협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느라 바쁠 텐데 틈만 나면 창작활동을 한다며 자신을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버려진 책을 구해다 조각품으로 탄생시킨다. 종이를 칼로 자른 건가 싶은데, 자른 게 아니라 일일이 접었다고 한다. 사전만큼 두꺼운 책을 펼치면 마치 시간과 오랜 기억들이 들고 일어난 듯 보인다. 시간과 손때가 묻어나오는 작품이 건넌방에 가득했다.

신발을 신고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데 환한 웃음을 띠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의 자유로운 정신과 풍요로운 마음이 가슴을 통해 전해지는 듯했다.

다음 글에서는 돈 거래 없이 서비스가 교환되는 네트워크, 돈거래가 없는 상점, 포장없는 물건을 파는 상점을 차례차례 찾아갑니다.
#전환 #탈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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