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몇 명이나 쓰러질까, 아이들도 내가 측은하대

[공부중독사회②]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은 포기해버린 학교

등록 2016.01.12 07:33수정 2016.01.1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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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은 '공부중독사회'다. 공부는 유일한 신분 상승 또는 유지의 길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높은 학벌이 좋은 직장을 보장해주는 시대는 지나갔고, 젊은이들은 재수, 편입, 대학원, 취업준비 등 더 나은 스펙을 쌓기 위해 공부한다는 이유로 사회 진출을 계속 유예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부하기 위해' 막대한 돈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쟁이 심화할 때 우리 사회가 알고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은 공부다. 또다시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2016년에는 이러한 공부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편집자말]
늘 그렇듯 칠판에 학습 목표를 적고 함께 읽으면서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 전 학습 목표를 공지하는 것은 한 시간 동안 공부해야 할 최소한의 내용과 분량을 알려주는 절차다. 대개 '파악할 수 있다'거나 '설명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표현이 워낙 두루뭉술한 탓에 아이들은 결국 교과서 내용을 두루 다 알아야 한다는 말 아니냐며 푸념하기 일쑤다.

오늘도 배울 단원의 학습 목표를 적고 또 그렇게 읽는다. 아이들이 앵무새처럼 따라 읽긴 하지만, 그걸 알고 싶다거나 알아야겠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들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 역시 입으로는 학습 목표를 읽고 있지만, 머릿속은 온통 이 시간엔 과연 몇 명이나 책상에 '쓰러지게' 될까 근심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의 무기력함은 교사에게 그대로 전염된다.

한 시간 분량은 교과서로는 네다섯 쪽에 불과하지만, 본문과 탐구활동 등 다뤄야 할 내용은 수업시간만으론 턱도 없다. 교사에게 교사용 지도서는 '법'이어서, 진도를 무시할 수도 없다. 게다가 수능 필수 과목(한국사)이라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단어 하나 도표 하나 설명이 빠질세라 쉴 새 없이 떠들어대지만, 아이들이 그대로 흡수하는 것 같진 않다. 퀭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외려 그 모든 것들을 내게로 다시 튕겨내는 느낌마저 든다.

하긴 교사인 나부터 이걸 굳이 아이들이 다 알아야 하나 싶을 정도니, 그 '영혼 없는' 강의를 아이들이 마뜩잖게 여기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도 시험에 나온다고 하니 당장은 머리가 아닌 손으로라도 강의를 담으려 애쓴다. '계륵' 같은 교과서 내용을 이것저것 다 풀어 놓다 보면 요약 정리한 노트가 교과서 분량 못지않게 많다. 교사로서 굳이 이래야 하나 싶다.

자는 아이 깨우는 게 선생님의 일, 학생들도 측은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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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방학보충수업을 받던 중 쉬는 시간을 이용해 휴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업이 진행될수록 교실은 시나브로 '적막강산'으로 변한다. 이내 졸린 눈 비벼가며 고군분투하는 몇몇 아이들이 잠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친구들에게 에워싸이는 형국이 된다. 고개 떨군 아이들을 깨우는 일은 마치 오락실의 두더지 잡기 게임과도 같다. 여기서 깨우면 저기가 자고, 저기를 깨우면 다시 여기가 쓰러진다. 언제부턴가 가르치는 일은 곧 '깨우는' 일이 됐다.


한 아이는 자는 아이들 깨우려 수업시간 내내 교실을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측은했던 모양이다.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내가 수업 중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옆 친구 깨워라"였단다. 한 엉뚱한 아이는 직접 세어봤다면서, 얼마 전 1교시 수업 땐 스무 번 넘게 반복했단다. 하도 자주 듣는 말이어서, 아마도 조는 아이들에게 그 말이 자장가로 들릴 거라면서 웃어 보였다.

"선생님, 그래 봐야 소용없어요. 학교 와서 내내 자는 아이들이에요. 그냥 우리끼리 수업해요."

이렇게 말한 아이는 이미 '글렀다'고 했다. 아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의 생활이 어떠할지가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시험 방식과 학습량, 수준 등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적응한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와서도 어떻게든 버텨내지만, 그 시기 단 한 번 발을 삐끗하면 그걸로 공부와는 담을 쌓게 된다는 거다. 이를 두고 친구들끼리 '국영수의 늪'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학교든 학원이든 늦어도 중2 때부터는 대학입시를 염두에 두고 고등학교 과정을 준비하게 되는데, 정규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죄다 국영수만 공부하게 된단다. 그 역시 잠시라도 한눈팔면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학 공식조차 영어 단어처럼 무작정 암기하고 보는 세간의 공부법은 누가 가르쳐서 된 게 아니란다.

그의 말을 듣노라니, 자유롭게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준다며 시작한 중학교의 자유학기제가 실상 반쪽짜리로 운영되는 것도 그래서이지 싶다. 자유학기제가 운영되는 학기일수록 학원은 되레 문전성시라고 하지 않나. 시험이 없다고 방심한 채 자칫 국영수를 소홀히 했다간 큰코다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가 즐거울 리 있을까.

그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가 일찍 끝난다는 이유로 시험 기간을 더 좋아하며 과목에 상관없이 '찍고 자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수가 조금 더 늘었을 수는 있지만, 고등학교 교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수학 과목에 한정시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확산' 운운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다른 과목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교실 분위기를 전했다.

"수업 내용 못 알아들어서 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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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체험에 나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2014년 10월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금옥여고를 찾아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시늉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 아이는 우선 선생님들의 진단이 틀렸다고 했다. 흔히들 밤에 인터넷 게임을 하느라 잠이 부족하다 보니 수업시간 꾸벅꾸벅 조는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놓고 자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수업 내용을 당최 알아듣질 못하니 수업시간이 힘겹기만 하고 그 시간을 빨리 보내자면 잠만 한 게 없다고 여긴단다.

태어날 때부터 공부를 싫어한 아이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런데도 학교는 공부가 힘들어 잠자는 아이들을 일찌감치 포기해버렸다고 꼬집었다. 학교는 죄가 없고, 모두 공부를 게을리 한 아이들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거다. 그가 지금껏 겪어온 학교는 따라오는 아이들만 끌고 가고,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며, 다행히도 자신은 그 정글에서 살아남았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다른 한 아이는 그 모든 원인을 공부의 '양'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기말시험 끝나고 자기 방과 책상을 정리하면서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배운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 등을 그러모아 쌓아보았더니 얼추 어깨에 닿더란다. 3년 동안 배울 양으로 대충 환산하면 자기 키의 세 배에 이를 것이라는 생각에 지레 겁부터 나더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많은 내용을 머릿속에 어떻게 다 집어넣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 그것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녕 필요하기는 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단다. 자신도 역시나 '수포자'라는 그는 쌓아놓은 책 더미 중에 놀랍게도 수학 참고서와 문제집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수업 교재라고 해서 사긴 했지만 생각할수록 후회막급이란다.

그가 내린 '삐딱한' 결론은 이랬다. 그 엄청난 양의 똑같은 지식을 동시에 전국 모든 고등학생들의 머릿속에 주입시키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삶의 지혜이자 도구로써 필요해서가 아니라, 단지 등급과 서열을 매기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어른들이 말하는 공부란 게 오로지 1등을 가리기 위해 나머지 아이들을 털어내고 잘라내는 과정 아니냐며 반문하면서.

그의 말마따나, 100점을 맞아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직 1등이 중요한 현실에서, 동점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무조건 시험이 변별력을 가져야 하고, 그러자면 내용이 어렵고도 학습량 또한 많아야 '편할' 것이다. 시험에 모든 게 종속돼버린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성적과 상관없이 그 누구도 공부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는 그의 지적이 매섭다.

아이들 '패자부활전' 가능한 곳으로 학교 만들어야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 있다면... ⓒ Sean MacEntee


아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을 하지만, 그것이 대학입시 때까지만 쓰고 버리는 '1회용' 지식을 욱여넣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단지 배움이 사라진 학교라지만, 침몰하고 있는 그곳에서 뛰쳐나오기가 두렵다고 했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낙오자'나 '문제아'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완고한 편견 때문이다. 한 아이의 천연덕스러운 이 말에 교사이기에 앞서 기성세대로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우리 아빠가 입버릇처럼 내게 들려주는 말씀이 있어.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면서, 학교 안도 지옥이지만, 학교 밖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거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도 학교에서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강조하셔."

수업 종이 울리니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얼굴에 베고 잔 소매 자국이 그려져 몰골이 말이 아니지만 표정만은 싱글벙글하다. 한 시간 그렇게 보낸 게 내심 뿌듯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 '적막강산'이 돼버린 교실을 깨우기 위한 대안은 없을까. '멀쩡한'(잠을 자지 않은)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그들이 첫손에 꼽는 대안은 학교가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방심하면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이 숨 막히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여관이 된 교실 풍경이 달라지지 않을 거란다.

그러면서 '정답'도 나와 있고 마음만 먹으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도 않은데,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아이들은 되레 내게 되물었다. 그저 힘없이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관련 기사]

① '공부가 답'이라는 486 판타지, 안 되는 걸 알면서
#수포자 #과도한 학습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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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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