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극적인 하룻밤>의 배우 한예리. 첫 로맨틱 코미디를 소화하는 모습이 신선해 보였다. 뻔하게 보일 수 있는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한예리의 주특기가 이번 영화에서 제대로 나왔다. ⓒ 이정민
'진지하고 조용하다', '생각이 깊고 차분하다'. 대중이 한예리에게 갖고 있을 법한 선입견이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저 아이돌 가수 좋아하고요, 만화도 좋아해요!" 지난 2일 오후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가 웃으며 말한다. <에반게리온> <나루토> 등 유명 만화를 나열하며 "너무 덕후같이 보이나요?"라고 웃는 모습에서 얼핏 그가 출연한 이번 작품에 맞닿아 있는 감정이 보였다.
3일 개봉한 영화 <극적인 하룻밤>으로 한예리는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다. 말랑말랑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이쯤에서 예상할 수 있는 한예리에 대한 미션! <기린 아프리카> <봄에 피어나다> 같은 단편과 여러 독립영화를 거치며 입혀진 그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더불어 주연으로서 윤계상과 함께 작품의 축으로 자리잡기.
결과적으로 두 미션 모두 성공한 듯싶다. 그가 맡은 정시후라는 인물은 애인에게 차였으면서도 제대로 항변조차 못하는 소극적 인물이다.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됐지만 계속 애인이길 요구하는 전 남자친구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기까지 한다. 그러다 기간제 체육교사 정훈(윤계상 분)을 만나며 사랑에 대한 자세가 바뀐다.
한예리를 만난 시후, 생동감을 찾다
▲ 영화 <극적인 하룻밤>의 한 장면. 시후(한예리 분)와 정훈(윤계상 분)의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씁쓸하다. 얼핏 동시대 청춘들이 왜 힘든 사랑을 하기 싫어하는지, 혹은 사랑을 왜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을 풀어놓기도 한다. ⓒ cgv아트하우스
자칫 평면적이거나 소모적일 수 있는 인물을 한예리는 깊이 연구했다. 붕 떠보이는 게 아닌 현실에 붙어 있는 캐릭터로 남아야 했다. 한예리는 여러 아이디어를 감독에게 제안했다. 시후와 정훈의 전 남자친구와 여자 친구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한다는 다소 극적인 설정이 있었지만, 한예리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물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저 역시 인물과 이야기가 평면적으로만 보일까봐 걱정이 있긴 했어요. 시후의 감정 상태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없어서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라든지, 시후가 혼자 있는 공간에서 정서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걸 넣으면 어떨지 감독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거든요. 그런 걸 받아주셨죠.
장르적 개성도 중요했고 많은 관객이 공감해야 했기에 캐릭터성과 자연스러움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제 실제 모습은 차분함에 가깝긴 해요(웃음). 제 모습 안에서 독특한 성격의 시후를 잘 전달하는 게 중점이었죠."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베드신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현장서 많은 분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부담 없이 임할 수 있었다"고 그가 겸손하게 말했지만, 공감대 확보라는 더 큰 목표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던 덕이 아닐까. 평소 <8월의 크리스마스> <이터널 선샤인> 같은 멜로 영화를 좋아한다는 한예리는 <극적인 하룻밤>을 통해 관객들이 사랑하는 자의 설렘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훈과 시후의 모습을 통해 많은 분들이 연애하고 싶다 생각하면 성공이죠. 사랑을 기다리지 마시고 쟁취하세요! 근데 정작 제가 그러지 못했네요(웃음). 이제부터라도 즐겁게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연애에 있어서 철저한 을이었던 시후가 정훈을 만나면서 큰 변화를 겪잖아요. 그게 영화가 말하려는 주요한 메시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먼저, 솔직해지기
▲ 기본적으로 예의있는 사람에게 호감이 간다고 한다. 말은 곱게, 태도는 배려심 있게 하는 사람말이다. "친절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타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해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그가 설명했다. 현실 속에서 한예리가 주요하게 보는 이성친구의 기준이다. ⓒ 이정민
커피 쿠폰의 빈칸을 하나씩 채운다는 핑계로 섹스를 나누는 시후와 정훈의 연애 방식은 분명 일반적이진 않다. 영화는 이러한 연애도 있음을 보이면서 넌지시 두 사람이 처한 구조적 문제, 즉 정규직 혹은 제도권에 들어가지 못한 채 불안한 생계 수단을 유지하고 있는 청춘의 모습을 묘사한다. 한국사회 대부분의 청년이 안고 가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애는 힘들기만 한 것일까. 이 질문에 한예리는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요즘 특히 남자 분들이 (사랑하는 것에) 부담을 더 느끼는 거 같다, 그래서 결혼보단 가벼운 만남을 하려는 거 같다"며 일부 인정은 했다. 다만 그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그 자체에 있어서 (구조적 문제가) 아주 큰 장벽이 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인) 박소담씨가 나온 <처음이라서>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지금 가진 돈이 1500원밖에 없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서 만날 시간도 많지 않지만...'이라고 남자가 고백하는데, 그래도 이걸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연애가 될 수 있잖아요. (어려운 환경을 보기 전에) 일단 서로에게 먼저 솔직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짜 좋아한다면, 마음의 확신이 있다면 여자가 먼저 고백해도 되는 거고요.
요즘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젊은 분들이 연애를 하잖아요. 물론 저도 젊지만(웃음). TV 예능 프로 하나를 봐도 체감할 수 있어요. 생각보다 20대들이 자유롭고 솔직하더라고요. 동성 간 연애도 이제 당당히 나오고요.
그런 모습 중 하나가 이 영화에 담긴 거 같아요. 아시다시피 동명 연극이 원작이잖아요. 저도 그 공연을 봤어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더라고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충실하자', '방관만 하지 말고 치열하게 열심히 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참, 이 영화가 제작되면서 연극의 엔딩도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바뀐 결말이 지금 계절과 잘 맞는 거 같아요."
그가 말하는 좋은 배우
최근 한예리는 김종관 감독의 신작 <최악의 여자> 촬영을 끝냈다. 이 역시 멜로 감성이 짙게 묻어나는 작품. 연달아 사랑이 주제인 영화라니, 혹시 스스로 꽂혀있는 건 아닐까? "머리가 길어서 그런가?"라며 한바탕 그가 크게 웃는다.
"이런 역할을 기다렸던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주인공의 타이틀을 잡아야 할 수 있는 장르잖아요. 또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고요. (한예리는 2007년 <기린과 아프리카>로 데뷔했다- 기자 주) 주어지는 것에 충실히 하고 싶어요. 좋은 시나리오라면 비중이 적은 역할도 하고 싶고요. 데뷔 때부터 좋은 배우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쭉 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좋은'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항상 궁금하고 들여다보고 싶은 배우예요."
이 기준대로라면 한예리는 충분히 부합한다. 좋은 배우이자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예민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미 당신은 친절한 사람이라고 하니 "지금 안성기 선배님과 촬영 중인데 그 분의 여유와 이해심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며 미소를 보였다.
지금껏 잘해온 만큼 성실히 뛰었다. 그 덕에 내년에도 한예리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 <최악의 여자>와 더불어 현재 촬영 중인 이우철 감독의 <사냥>이 개봉예정이다. 참고로 이건 액션영화다. 멜로와 액션을 넘나들며 한예리는 한 뼘 더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 차기작인 <최악의 여자>와 더불어 현재 촬영 중인 <사냥>을 통해 관객들은 분명 한예리의 또 다른 장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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