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티 고개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현장] '2015 우금티 예술제', 통한의 고개에서 본 '희망의 씨앗'

등록 2015.11.14 15:54수정 2015.11.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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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티 예술제 지게 상여가 나가고 있다. ⓒ 곽동운


지난 8일 오후 2시. 전국에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가을 가뭄을 꺾어줄 단비였지요. 저는 그날 우산을 받쳐 들고 충남 공주시 우금티 고개에 서있었습니다. '2015 우금티 예술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금티 전투. 벌써 12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60갑자로 치면, 두 갑자에다 또 한 해가 더해진 것입니다. 121년 전 그날, 그곳 우금티 고개에서는 통한의 피눈물들이 뿌려졌습니다. 빗발치는 일본군과 관군의 공세에 막혀 우금티를 넘지 못하고, 그곳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2만여 명의 농민군들의 피눈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농민군들이 내세웠던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그 피눈물을 따라 흩뿌려지게 됩니다.

'2015 우금티 예술제'는 사단법인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가 주관이 되어 진행됐습니다. 우금티를 넘지 못했던, 인내천 사상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던 수많은 농민군들의 통한을 달래주기 위해서 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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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상여 우금티예술제에 등장한 지게상여. ⓒ 곽동운


예술제는 추모제례와 역사축제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추모제례는 농민군들의 한을 달래기 위한 의식이 진행됐는데 특이하게도 지게상여가 등장했더군요. 지게 두 개를 이어붙인 지게상여는 상여를 살 수 없었던 망자를 운구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그 옛날, 가난 때문에 상여조차 구할 수 없었던 이들이 이승과 하직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타고 갔던 것이 지게상여였습니다. 평생 동안 등짝에 걸쳐 메고 곡식과 땔감을 날랐던 그 지게에 자신을 실어 보냈던 것입니다. 

121년 전, 우금티에서 전사한 동학농민군들은 그런 초라한 지게 상여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신은 버려졌고 내팽개쳐졌습니다. 살아난 자들에게는 '반역도'라는 낙인이 찍혀졌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장례는 꿈도 못 꾸었던 것입니다.

21세기 우금티 고개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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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판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설문조사판이 설치되었다. ⓒ 곽동운


추모제례가 영령들의 한을 달래주는 자리였다면, 역사축제는 미래 세대들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예술제에 모인 중·고등학생들은 농민군들의 뜻을 기억하면서도 '놀 건' 놀았습니다. 짚으로 만든 달걀꾸러미 체험, 벼훑이를 이용한 탈곡체험 등등...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자신의 소원을 적은 만장과 사발통문이었습니다.


'좋은 대학 가게해주세요!'
'이번에는 오빠들 콘서트 꼭 가고 말테야!'

위처럼 또래끼리 통용되는 생각들이 많이 적혀있더군요. 하지만 뜨거운 이슈를 담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한국사 국정교과서 OUT'

'헬조선'이라는 우울한 말이 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베 같은 사이트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희망의 씨앗도 그들 아닙니까?

121년 전, 갑오년의 우금티가 통한의 피눈물이 터져 나온 곳이라면 현재의 우금티는 새로운 희망이 싹 터 오르는 옥토와 같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인내천을 꿈꾸던 농민군들의 희생이 헛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런 의미로 우리 아이들이 우금티에서 많은 역사체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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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티 우금티에 세워진 조형물이 쓰러져 있다. 우금티에서 쓰러져 갔을 농민군들의 모습이 겹쳐져서 마음이 애잔해진다. 봄의 새싹처럼 힘껏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으면 좋겠다. ⓒ 곽동운


추신: 저는 2년 전에도 우금티 추모제례에 대해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때 기사를 다시 살펴보니, 당시는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해서 언급을 했더군요. 당시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얼마나 뜨거운 이슈였습니까?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반대를 했었죠.

2년이 지난 현재. 이제 교학사 교과서를 넘어 한국사가 국정 교과서가 되려고 합니다. 역사가 퇴보한다는 걸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내년 우금티 예술제 기사에서는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기사 말미에 적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의 씨앗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우금티 예술제에서 자원봉사를 한 후, 그것에 대한 소감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우금티예술제 #우금티전투 #동학농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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