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포 세대의 고통, 아산에게 물었다면...

<아! 아산>의 저자 이응석 옹이 말하는 고 정주영 회장의 최대 유업

등록 2015.11.13 10:58수정 2015.11.1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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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신희섭작 / 38 45 / 순지에 먹, 아크릴 채색 /2006 회색의 콘크리트 도시 안에서 20~30대 직장인들이 짧은 점심시간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휘날리는 검정 비닐봉지는 자유롭거나, 불안하다. 어쩌면 여기에도 끼지 못한 청년들의 삶처럼. ⓒ 신희섭


청년들을 가리켜 삼포(연애·결혼·출산 포기)세대라 하더니, 곧 오포(직장과 내집 마련)로, 칠포(인간관계와 미래희망)로 절망의 리스트가 늘었다. 젊은이들의 고통을 공감한다, 그 삶을 이해한다 말하고 싶지만, 살아보니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알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나 역시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나 이제 두 아이의 아비로서, 이미 돌아간 내 아버지의 삶을 알고 있으니, 내 아버지의 삶은 내 삶보다 훨씬 힘겨웠더라. 그럼에도 삶을 포기 않고, 지워진 짐을 기꺼이 졌던 것이더라. 그렇게 알고 있다. 많은 부분을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하기도 했고.


그리하여 청년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나는 이응석의 책 <아! 아산>(혼돈과 난관의 시대, 아산에게 길을 묻는다)을 골랐다. 다음 글은 위 질문에 대한 저자 이응석 옹의 답이다. 그 말을 옮겨 싣는다.

이봐, 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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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석 저. 2011. 아산 정주영(1915~2001)에게서 혼돈과 난관의 시대를 헤쳐갈 길을 찾았다. ⓒ 이응석

내년 3월 21일이면 아산이 떠난 지 15주년이며, 오는 11월 25일은 아산의 탄신 100주년이다. 걸출한 인물의 등장은 한 시대를 어마어마하게 변화시킨다는 걸 역사는 증명한다. 서거 15주기, 탄신 100주기를 맞아 아산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면서 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계기로 삼아 보고자 한다.

지난 10월 23일자 한 일간지에서는 '기업인 최고의 한 마디'를 뽑은 설문조사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이봐, 해봤어?"가 1위로 뽑혔다는 기사를 실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기업인들의 경영철학과 인생관이 녹아 있는 어록은 짧지만 강한 메시지와 생명력을 가진다.

이 이야기는 1983년 충남 서산간척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했던 말이다. 당시 시공업체인 현대건설은 거센 물살이 방조제용 바윗덩어리들을 공깃돌처럼 쓸어가는 바람에 공사에 진척이 없이 애를 먹고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해체를 앞둔 길이 322미터, 높이 27미터인 23만 톤급 유조선을 가라 앉혀 물길을 잡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담당자가 망설이자 정 명예회장은 "해보지도 않고 고민하느라 시간, 돈 낭비하지 말고 한 번 해봐!"라고 호통을 쳤다. 결국 아이디어는 성공을 거뒀다. 공사기간은 무려 3년이나 단축되었고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서도 '정주영 공법'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이로 인해 지금의 드넓은 옥토 4700만 평과 간월A호와 간월B호의 아름다운 호수가 만들어졌다. 이렇듯 인간의 창의성, 도전정신, 발상의 전환은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청개구리, 생쥐, 빈대 철학

인구에 회자되는 아산의 3대 철학을 다시 한 번 조명한다. 첫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이다. 청개구리도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30번의 점프를 하여 뜻을 이루더라는 소위 청개구리 철학이다. 둘째는 함께의 힘을 강조한 쥐 철학이다. 쥐가 달걀을 옮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발랑 누워 네 다리로 달걀을 끌어안으면 다른 쥐가 달걀 안은 쥐의 꼬리를 물고 끌고 가는 데 성공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협동의 힘을 배운 것이다.

셋째는 빈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인천부두 막노동 하던 시절, 물을 싫어하는 빈대의 습성을 알고 책상다리마다 물을 채운 세숫대야를 받쳐 놓고 책상 위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다음날 빈대는 머리를 썼다. 직접 공격이 어려워지자 벽을 타고 우회하여 천장에서 정확하게 아산의 배로 떨어졌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빈대의 지혜'에 대해 전율한다. 

아산 정신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할 수 있다'는 '캔두(can do)정신'이며, 이것이 아산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업이다.

"나는 인간이 스스로 한계라고 규정짓는 일에 도전, 그것을 이루어 내는 기쁨을 보람으로 오늘까지 기업을 해왔고, 오늘도 여일하게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이 무한한 인간의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열심히 활용해서 가능성을 가능으로 이루었던 것이지 결코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단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모두 다 배워 내 것으로 만든다는 적극적인 생각, 진취적인 자세로 작은 경험을 확대해 큰 현실로 만들어 내는 것에 평생 주저해 본 일이 없을 뿐이다. 목표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고, 이에 상응한 노력만 쏟아 부으면 누구라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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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신희섭작 / 75-54 / 순지에 먹, 안료 채색 / 2008 높이 더 높이, 욕망하는 도시의 팽창 안에서 부유하는 검정 비닐봉지가 있다. 봉지는 비행의 궤적을 남긴다. ⓒ 신희섭


일근천하무난사, 아버지의 유산을 새겨 행하다

"과거의 실적이 아무리 대단하고 축적한 기술이 아무리 많고 제반 여건이 아무리 좋다 해도 현재의 우리한테 불굴의 개척정신, 창의적인 노력, 진취적인 기상이 없다면 오늘의 영광이 옛일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진취적인 정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의 열쇠다." -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중에서

"젊은이들이여, 세계를 가슴에 품기를 바란다. 가슴에 포클레인 한 대씩을 품어라. 인화성 강한 성냥통 하나씩을 품어라. 그게 젊음이다. 저질러라, 지금 당장, 멈칫하는 순간 당신의 인생은 따분하고 한심스런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거친 풍랑을 헤쳐 나가려면 단단한 각오, 강인한 체력과 정신은 기본이다. '질풍경초'는 센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이 드러난다는 뜻. 고정관념과 구각에서 과감히 틀을 깨고 치고나가라.

어차피 인간의 삶은 한 번의 삶이다. 모든 순간은 단 한번의 기회만 제공한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하라. 괴짜라고 놀림 받아도 좋다. 역사는 도전하는 사람이 쓴다. 아산의 DNA를 이어 받자. 불요불굴의 정신과 열정으로 다시 한 번 웅비의 나래를 활짝 펴자. 아산정신이 그 답이다. 오직 도전과 불굴의 정신만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먹여 살리는 21세기의 생명이며 에너지다. 아산이 그리운 것도 바로 그래서다." - <아! 아산>의 프롤로그 중에서

아산은 "현대를 이룩한 것은 아버지의 유산 덕분이다"이라 늘 말한다. 첫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고 둘째는 부지런함이며 셋째는 검약정신이다. 아버지는 가난하여 돈 한 푼 물려 줄 수 없었지만 나에게 이 세 개의 정신을 물려주셨다고 늘 힘주어 얘기했다.

아산이 가장 좋아하는 글귀도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무난사)'다. '부지런 하면 천하에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너무 편의 위주의 삶, 안주의 삶은 아니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아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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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신희섭 작 / 75-54 / 순지에 먹, 채색 / 2008 외로이 사람처럼 서있는 아래의 물체는 검정 비닐봉지다. 가로등이 켜져 있지만 땅은 어둡다. 길을 걸어가야겠지만, 단절되어 있는 땅이다. '어떻게' 해야하는가? ⓒ 이응석


덧붙이는 글 작가 조정래는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의 위인전을 썼다. 그가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서다. <아! 아산>의 저자 이응석은 아산 정주영에게서 불굴의 정신과 창조성을 찾았다. 절망과 난관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신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신희섭 화가는 이응석의 이웃이다. 그 자신 젊은 화가로서 도시의 검정비닐봉지를 보고 느낀 충격과 사고를 화폭에 옮겼다. 시대와 공감하고 우리를 위로하려 글과 함께 싣는다.

아! 아산 - 영웅는 다시 올 것인가? - 타계 10주기를 맞아

이응석 지음,
에세이퍼블리싱, 2011


#삼포세대 #정주영 #이응석 #캔두정신 #신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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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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