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무휼, 운명의 첫 외침을 토하다

<육룡이 나르샤>의 상남자 무휼

등록 2015.10.22 18:27수정 2015.10.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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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가장 성공한 캐릭터와 배우는 무휼과 무휼역을 맡은 조진웅이다. ⓒ SBS


"무사 무휼! 한 치의 실수 없이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다룬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대사다. 작품의 주인공은 세종대왕 이도와 강채윤이라는 백성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종영 후 가장 크게 스타덤에 오른 이는 무휼 캐릭터를 맡은 조진웅이었다.

드라마 초반부 무휼이 사자후를 토하는 장면은 작품 속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무휼은 이방원이 자신의 아들 이도에게 호위무사로 붙여준 인물이다. 일신의 강함뿐 아닌 천성이 우직하고 변하지 않는 인물인지라 학자 스타일의 아들에게 잘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젊은 시절의 자신이 스스로 검증했다는 이유가 크다.

강성 이방원은 이도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상왕으로 군림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터인지라 누구라도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용납하지 않았다. 설사 일국의 왕이자 자신의 아들인 이도라 할지라도.

늦은 밤 산속에서 마주친 이도는 이방원과 뜻을 달리하며 왕으로서의 기개를 보인다. 이방원은 야릇한 표정과 함께 칼을 빼어들고 이도를 겁박한다. 이도는 신체적으로는 유약했지만 기개마저 약하지는 않았던지라 자신의 옆에 있던 호위무사 무휼에게 명한다. "내가 누군가에 죽는다면 무휼 넌 그 즉시 그자의 목을 쳐야 할 것이다. 사사로이는 아버지이나 무휼 넌 공의로서 대의로서 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방원의 뒤쪽으로는 심복 조말생을 필두로 수십 명의 정예병들이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무휼은 망설이지 않았다. 주군이 위험에 처하자 즉시 칼을 빼 들고 외친다. "무사 무휼! 한 치의 실수 없이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중한 이를 지키는 우직하고 뚝심 있는 상남자, 그게 바로 무휼이라는 사내였다.

무인 전국시대,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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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휼은 어린시절부터 힘이 장사였다. ⓒ SBS


SBS 창사 25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의 2대 무력왕은 '삼한제일검' 이방지(李方地)와 '조선제일검' 무휼(無恤)이다. 각각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은 자신만의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최고의 무사로 성장한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들 역시 그랬다. 이방지와 무휼은 평범한 고려 백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대다수 백성들의 소원은 단 하나였다. 끼니 걱정 없이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백성들의 공통된 삶의 이상향이었다. 하지만 부정부패에 찌든 고려 말의 현실은 백성들의 그러한 소박한 소원을 절대로 들어주지 않았다.

만약 이방지와 무휼이 끼니를 거르지 않고 부모들과 평범하게 살아갔다면 절대 무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방지는 실종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그나마 빈 구석을 채워주던 사랑하는 정인마저 힘있는 자들의 희생양이 되자 세상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며 고독한 늑대 같은 무사가 되었다. 반면 무휼은 대가족의 어린 가장으로서 형제들을 지켜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에 따라 검을 잡게 된다. 할머니의 눈으로 봤을 때 건장한 무휼이 대가족을 건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칼밖에 없었다.

이방지와 무휼의 어린 시절, 혼돈의 천하에는 다양한 색깔의 고수들이 존재했다. 영화 '쌍화점(雙花店)'을 통해서도 소개된 홍륜(洪倫)은 나이가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자를 뽑아서 만든 호위대 '자제위(子弟衛)'의 핵심 멤버였다. 하지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그는 자신이 지켜야 할 주군을 죽이고 마는 비극적 운명에 놓이게 된다. 이를 놓고 여러 가지 얘기들이 많은데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반란군으로 묘사한다.

당시 홍륜은 자타공인 '삼한제일검'이었다. 그런 홍륜을 제압하고 새로이 그 명성을 이은 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길태미(吉太味)였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스러운 이미지를 풍기며 자신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물불안가지고 달려드는 성향의 그는 일반적으로 최고 고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유의 카리스마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길태미에게 맞설 수 있는 또 하나의 절대 고수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길태미의 쌍둥이 형 길선미(吉善味)였다. 고려의 은거고수인 그는 길태미와 달리 사리사욕에 관심이 없는 공명정대한 인물로 묘사된다.

천하장사에 우직한 성품! 천상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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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조선제일검' 무휼의 사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설픈 시골 무술사범 홍대홍(洪大弘)이다. ⓒ SBS


예나 지금이나 한 방면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에게는 그 축이 되는 큰 스승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스승의 가르침 없이는 제대로 크기는 쉽지 않다. 훗날 '삼한제일검' 이방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절대무공을 쓰는 이방지의 근원이 밝혀졌다. 이방지의 스승은 다름 아닌 장삼봉(張三峰)이었다. 무림 구파일방(九波一榜)중 하나인 무당파(武當派)의 창시자이자 중국 대중 권법 태극권(太極拳)을 만든 이로 널리 알려진 그는 역사와 판타지를 오가는 유명한 인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미래의 '조선 제일검' 무휼 역시 그에 못지않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무휼은 썩 뛰어나지 않은 스승 밑에서 무예를 배운다. 어설픈 무인 홍대홍(洪大弘)은 자신의 입으로 "홍륜, 길태미, 길선미 등 당대 최고수들을 키워냈다"고 말하고 다니는 시골 무술사범이다. 아직까지 실제로 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쳤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기꾼 기질이 강하고 실력 역시 고수와는 거리가 멀다.

무휼의 할머니는 홍대홍에게 속아 집안의 식량들을 가져다 바치며 무휼을 잘 키워주기를 부탁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캐릭터대로라면 입만 살은 형편없는 실력의 무인일 뿐이고 만약 진짜로 당대 고수들을 키워낸 숨은 고수라면 대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5회까지 진행된 현재 이방지가 화려한 무공으로 날개를 단 것과 달리 무휼은 평범한 무예만 몸에 익혔을 뿐이다. 홍대홍은 자신이 가르치는 무공에 여러 가지 이름을 가져다 붙이고 있지만 영 미덥지가 않다.

그럼에도 무휼은 강하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인 그는 무골을 타고났다. 무장으로서의 피는 이방지보다 더 진하다 할 수 있다. 때문에 홍대홍에게서 기초만 배웠을 뿐인데도 약관의 나이에 고려 땅에서 악명높은 매화무사 패거리들과의 일대 다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무휼이 이방지처럼 좋은 사부만 만났다면 더 강해질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의 목소리들이 커지는 분위기다.

왜구들을 상대로 무공을 빛내고 있는 이방지와 달리 순박한 시골청년 무휼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가늠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런 무휼이 5회 중반부 스스로의 힘을 느끼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방원은 우연히 인신매매 패거리를 발견하고 그들로부터 고려인들을 구하기 위해 노예를 사려는 귀족으로 위장해 접근한다. 그 과정에서 이방원과 마주친 무휼은 울며 겨자 먹기로 행동을 함께한다. 이방원은 순박해 보이지만 덩치가 큰 무휼에게 자신의 호위무사 옷을 입혀주고 칼을 쥐여준다. 단순한 위장일 뿐이었지만 순간 무휼은 자신의 몸에 무사의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낀다.

이방원의 계책에 일당들이 속아 넘어가려던 찰나 무휼은 순간의 말실수를 범하며 정체를 발각당하게 된다. 위기일발의 순간 이방원은 기지를 발휘해 무휼을 '삼한제일검' 길태미라고 지목한다. 당황한 일당들을 향해 칼만 뽑아들면 분위기를 가져갈 수 있었으나 겁이 난 무휼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얼어붙는다. 그런 무휼을 향해 분이는 간절한 눈으로 칼을 뽑으라고 재촉한다.

만만하게 보고 일당들이 일행을 죽이려는 순간 무휼이 용기를 낸다. 그리고 외친다. "무사 무휼!" 어지간한 일류 무사 이상의 솜씨를 가지고 있던 무휼은 고함 소리와 함께 삽시간에 몇 명을 베어 넘기고 혼비백산한 무리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내빼버린다. 무사로서 각성한 무휼이 운명의 첫 외침을 토하는 순간이었다.
#무휼 #이방지 #이방원 #이도 #육룡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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