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하명' 대독했던 당 대표
부총리 돼선 국정화 지침 받들다

[인물탐구] 역사교과서 국정화 총대 멘 '어당팔' 황우여

등록 2015.10.15 13:58수정 2015.10.1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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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2월 30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와 귓속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으로 불리던 2011년 5월의 일이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였고 안상수 대표 사퇴로 '대표 권한대행'까지 겸하고 있었다. 당내 권력이 막강했을 것 같지만, 그는 '수첩 대표'라는 오명을 얻었다. 당시 평의원이었던 박근혜 전 대표와 밀실에서 회동하고 온 뒤였다. 

박 전 대표를 비공개로 만나고 온 황우여 대표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수첩에 적어와 '대독'했다. 당내에서는 "당 대표가 박근혜 대변인 역할이나 하느냐"라는 비판이 퍼졌다. 황 대표가 적어온 내용도 당권·대권 분리' 등 대선과 관련해 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논의 중이던 민감한 사안들이어서 당 대표가 대선 주자에게 불려가 하명을 받고 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MB정부에서는 '어당팔'이었는데... '수첩 대표'라 불린 황우여

'수첩 대표' 논란은 지금 와서 보면 박 대통령 집권 후 종속적 당·청 관계를 암시하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당시의 당내 역학 관계는 황 부총리가 정식으로 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청와대의 의견을 충실하게 여당에 반영하는 '관리형 대표'라는 평가 속에 2년 임기를 꼬박 채웠다. 황 대표로서는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당 대표보다는 친박 핵심인 최경환 원내대표에게 더 힘이 쏠린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허약한 리더십을 보인 탓에 황 부총리가 '어당팔'이 맞느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어당팔은 '어수룩해 보여도 당수(唐手·가라테)가 8단'이라는 뜻의 황 부총리 별명이다.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정치력이 만만치 않은 고수라는 의미의 별명이 무색하게도 황 부총리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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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9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의원총회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와 귓속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


하지만 황 부총리가 어당팔의 면모를 과시한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었다. 2011년 그는 6월 임시국회 개원협상에서 이명박 정부에 부담될 수밖에 없는 저축은행 국정조사와 대학등록금 부담완화 입법화에 합의했다. 대신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었던 북한인권법의 법사위 상정 합의를 야당으로부터 끌어냈다.그는 또 보수 세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당 대표로서는 처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직접 참배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들을 두고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가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역시 어당팔 다운 정치력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당시 원내부대표로 황 부총리와 호흡을 맞췄던 새누리당의 재선 의원은 "대학 등록금 문제를 놓고 기재부와 당정 협의에 나섰는데 기재부가 예산이 없다고 버티자, 책상을 '쾅' 치면서 안된다고만 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보라고 다그치는 모습을 보고 뚝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 '하명' 대로 국정화 총대 멘 황우여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황 부총리는 박 대통령 앞에만 서면 작아졌다. 이번에도 황 부총리는 박 대통령의 지침대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총대를 멨다.

사실 정치인으로서, 또 교육 정책의 책임자로서 내놓은 황 부총리의 발언을 살펴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그의 소신처럼 보인다. 그동안 황 부총리는 여러 차례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3년 10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역사교과서 책임은 정권이 아닌 국가가 직접 떠맡아 올바른 내용으로 제공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우편향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외면을 받자, 2014년 1월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의 합동신년회에 참석해 "교과서를 하나 만들었는데 1%의 채택도 어려운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정치하는 한 사람으로서 현실을 아주 비통하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장관에 취임하고 나서도 "교실에서 역사는 한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라며 국정화의 군불을 땠다.

그런데도 그는 연막작전을 폈다. 국정화를 두고 이랬다저랬다 오락가락했다. "역사는 한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라며 국정화 필요성을 주장했다가 논란이 커지면 후퇴해, 반대 여론 수습에 나서는 행태를 반복한 것이다.

심지어 황 부총리는 지난 11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논의한 당·정협의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나서도 국정화 여부에 확답하지 않았다. 황 부총리는 국정감사에서도 "국정화와 검인정제 강화 모두 일리가 있다", "(국정화 여부는) 아직 검토 중"이라는 말을 되풀이해 야당 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교육부 내에서는 진보 진영은 물론 역사학계 반발이 큰 상황에서 신중하게 여론을 수렴한 것이라며 방어한다. 하지만 신중했다라기보다는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정치적 이해득실에 민감한 모습을 보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논란이 거셀 수밖에 없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치적 행보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신의 향후 정치 행보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게 '신중론'으로 포장을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 '조기 사표' 선물 줄까... 당 복기 앞두고 체면 구긴 황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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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실에서 '올바른 교과서'라고 명칭을 한 한국사 국정교과서 행정예고 발표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 이희훈


황 부총리는 국회의원 5선을 한 정치인이다. 국회의장직에 욕심이 있다. 새누리당 대표 퇴임 후 도전했다가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6선 고지에 오르면 국회의장에도 재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황 부총리는 지난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미 내년 총선 출마 뜻을 밝혔다. 그는 "어디 가더라도 교과서 문제와 저는 떨어질 수 없구나, 어떤 직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좋은 교과서를 만드는 데 한 축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미션'을 수행한 황 부총리의 눈이 이제 내년 총선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내년 1월까지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하므로 박 대통령이 국정화 임무를 수행한 선물로 조기에 사표를 받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제대로 황 부총리의 '안티' 역할을 하고 있다. 황 부총리는 지난 12일 교육부가 현재 역사교과서를 검정해 통과시켜놓고 정부·여당이 이념 편향적이라고 공격하는 게 자가당착 아니냐는 비판에 "2년 전의 검인정은 교육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사과했다.

황 부총리가 고개를 숙였음에도 새누리당은 한술 더 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론전을 위해 서울 시내 곳곳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건 것이다. 

새누리당의 주장대로라면 황 부총리는 주체사상이 들어있는 '이적표현물'이 버젓이 교육현장에서 활용되게 한 최고 책임자다.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야당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검토하겠다며 공세에 나섰다.

당 복귀를 앞둔 황 부총리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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