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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 청년 담은 영화, 투병기가 아닙니다"

[인터뷰] DMZ다큐영화제에서 만난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 임정하 감독

15.09.20 11:20최종업데이트15.09.2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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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의 임정하 감독. ⓒ 하성태


"제가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이라는 한국의 임정하 감독이 만든 작품입니다. 20대 중반의 청년이 암 말기 환자입니다. 뚜르라는 곳에서 자전거로, 몇 천 킬로미터가 되는 거리를 '내가 힘이 있을 때 한 번 횡단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을 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지만 그 시간동안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도전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영화제 기간에 '강력 추천'하는 영화는 어딘가 특별해도 특별한 법이다. 전 세계 81개국 849편의 출품작 중 43개국 102편을 상영하는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이 많은 영화 중 조재현 집행위원장이 한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꼭 집어 추천하는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제작사 영화사 북극곰, 프로덕션 미디어길)은 세계 최대의 사이클 대회인 '뚜르 드 프랑스'를 한국인 최초로 완주한 26살 이윤혁의 이야기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며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동경하던 청년은 어느 날 자전거, 정확히는 사이클에 빠지면서 랜스 암스트롱을 영접했다. 그리고, 영문 이름을 '아놀드 혁'에서 '랜스 혁'으로 바꾸고는 불가능한 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하다.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하다. 군대 제대 후 희귀 암에 걸린 이윤혁은 25번의 항암 치료에도 불구하고 완치 판정을 받지 못했다. 바로 그때, 이 청년은 '뚜르 드 프랑스'를 완주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꿈을 기어코 실현해 낸다.

이 이윤혁의 여정을 담은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을 완성해 낸 임정하 감독은 "윤혁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 관객들이 윤혁의 마음에 꼭 동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잊지 않는다. 16일 영화제 개막 전날, "이윤혁의 어머님이 이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 되었으면 한다"던 임정하 감독을 만났다.

26살 '말기 암' 청년의 믿지 못할 도전이 전하는 삶의 가치

영화 속 이윤혁의 모습. ⓒ 영화사북극곰


"사실 우리는 타자의 불행과 같은 그런 부분에 무심하거든요. 투병 기간만 총 3년 6개월이고, 영화 속엔 1년 정도가 담겼는데 사람들 개개인은 그걸 다 실감할 수가 없고요. 영화도 사실은 100% 그 감정을 다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 자체가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렇지만, 어느 한 순간 윤혁의 마음을 100% 공감할 수 있는 '모멘텀(동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저는 에필로그 부분이라고 봤어요. 안개 속을 달리다 어느 한 순간 빛이 비추고,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윤혁이의 모습 말이에요. 평소 냉담한 감정의 사람이라도 그런 장면들에서 윤혁의 그 마음들을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렇지 아니한가.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이 26살 청년은 "그래도 아직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3500km를 달려야하는 자전거에 직접 '희망'이란 두 글자를 아로 새긴다. 어느 특별한 '초인'의 이야기가 아니냐는 의심은 거둬도 좋다. 짓궂은 외동  아들 같다가도 어느새 듬직한 오빠나 의젓한 남자의 얼굴을 한 윤혁은 운동선수나 체육교사를 꿈꿨던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었다.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은 그 평범한 듯 매력적인 윤혁의 도전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러나, 그는 부정할 수 없는 말기 암 환자다. 트레이너와 완주 파트너, 현지 코디네이터 외에도 주치의가 항시 대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대회 일정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경주를 위해 내달리는 과정은 그래서 더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동행한 사람들은 자존심을 지키거나, 쾌적한 여행 등 사소한 것들이 중요했을 수 있어요. 반면 윤혁의 입장에선 그런 건 하나도 중요치 않았겠죠. 그래도 마지막에 그리워한 건 삶을 구성하는 사소한 것들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그렇고.

그래서 그들의 갈등도 중요했어요. 나중엔 돈독해져서 윤혁을 더 도와주는 거고. 그걸 빼고서 윤혁의 투병기와 심상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 없었죠. 4시간짜리 윤혁의 개별 인터뷰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영화적인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어느 순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공통분모가 생기면서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었죠. 그게 제일 중요했어요."

5년 전 촬영한 작품, DMZ다큐영화제에 선보이기까지 

영화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의 한 장면. ⓒ 영화사북극곰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은 소재만으로도 관객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희귀 암을 앓는 26살 청년, 그가 도전하는 '뚜르 드 프랑스'라는 꿈의 무대, 그 도전을 이뤄내기까지의 열정과 갈등. 이런 조합만으로 가능한 '감동과 역경의 스포츠 드라마'를 이 다큐멘터리는 쉬이 가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의 마음 속 풍경을 프랑스의 풍광에 빗대어 굳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하지만 팀원들 간의 갈등이 비춰지는 것처럼, 비용을 포함해 경제적인 비용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프랑스에서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을 터. 사실 그런 우여곡절은 2009년과 2010년 촬영부터 공개까지 5년이 걸린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의 잉태와 출생과정과도 닮아 있다. 처음 기획/제작으로 이름을 올렸던 임정하 감독이 결국 '감독 크레딧'을 달아야했던 이유도 다르지 않다. 

"제작자가 감독까지? 흔하지 않죠. 극영화는 몇 개월이고 심지어 다큐도 1~2년인데, 포기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정말 만만치 않았어요. 천 시간에 달하는 촬영 소스를 보는 것 자체부터가요. 그만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2년 반이 지나 있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영화에 대해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더라고요(웃음). 이렇게 영화제까지 진출하고 좋은 평가를 듣게 되니 믿기지 않아요. 개봉까지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죠."

50일간의 완주, 그 이후 수척해진 윤혁의 모습을 다시 담기까지 1년, 그렇게 담아낸 촬영 분량 1000시간. 1990년대 초중반 영화 기획으로 충무로에 입성, <음란서생>을 프로듀싱하고 <추격자>를 기획총괄한 뒤, < GP 506 >을 제작한 임정하 감독은 그렇게 시간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건 영화가 '편집의 예술'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촬영부터 영화제 공개까지 6년이란 시간을 품은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의 결이 깊고 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임정하 감독이 화면으로 접한, 이제는 떠나 버리고 없는 청년 윤혁과 그의 가족에 대한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 결국 '윤혁의 시간' 아닐까요"

영화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의 한 장면. ⓒ 영화사북극곰


"보통 암에 거린 사람의 이야기는 피골이 상접하거나 진한 투병기 같은 걸 다루잖아요. 저는 일단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어찌 보면 '언발란스'한 상황인 거죠. 겉으로는 컨디션이 아주 좋으니까요. 사실은 장기 다섯 개를 자른 상태였는데. 하지만 윤혁은 그걸 농담처럼 얘기하잖아요. 그런 모습이 좋았어요.

아버님은 2년 전에 돌아가셨고, 윤혁이 외아들이었으니 어머님 혼자 남았어요. 그 사이 마음이 가라앉고 잊은 척하고 살았는데, 영화를 통해 다시 기억이 살아나신다고 해요.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아들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어머니야말로 윤혁의 꿈을 많은 이들이 보는 것 자체가 희망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윤혁이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요."

TV 다큐멘터리로 출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 <걷는 듯 천천히>에서 '메시지가 뭔가'란 질문을 받으면 매번 난감했다고 고백한다. 이를 언급한 임정하 감독 역시 계속 "조심스럽다"는 말을 강조한다. 그래서 편집 역시 가급적이면 "담담하게"를 원칙으로 삼았다. 다만, 영화를 다 본 후 극장 문을 나서며 공감에 먹먹해진 감정을 오래 기억했으면 싶다. 윤혁이라는 인물과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그러면서 그는 기억해줬으면 하는 세 장면을 꼽아줬다. 순서대로, 일정 후 윤혁이 링거를 맞는 장면과 일정 중간, 위기가 찾아 왔을 때 윤혁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장면, 프랑스에 다녀온 뒤 병원 진료를 받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뒷모습. 모두 다, 씩씩했지만 죽음 앞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었을 '인간' 이윤혁의 심상이 보이는 장면들이다. 여기에 결국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의 주제가 담겨있으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 결국 윤혁이 누리고 싶은 시간이잖아요.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저렇게 달렸던 한 인물이 있다. 집요하게, 포기하지 않고. 그걸 봐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마지막 순간까지 달렸던 그의 길이 무의미하지 않을 테니까요. 뚜르가 윤혁에게 선물이었듯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그런 마음을 전해줬으면 좋겠어요."

뚜르 잊혀진 꿈의 기억 DMZ다큐영화제 이윤혁 임정하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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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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