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 넘게 빵만 먹는 '인천공항판 올드보이'

[공항에 갇힌 사람들① - 세네갈 출신 A씨]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송환대기실

등록 2015.09.10 08:26수정 2015.09.1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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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일,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절차의 엄격함과 난민들의 열악한 처우는 '아시아 최초'에 걸맞지 않은 모습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특히 공항에서 이뤄지는 절차에 주목했습니다. '첫 단추'가 제대로 꿰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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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자료사진).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아프리카 대륙 서쪽 끝자락에 있는 세네갈의 태양은 지독히도 뜨겁다. 그 빛을 견디기 위해 A씨의 조상들은 검고 단단한 피부를 지니게 됐다. 하지만 지금, A씨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다. 그의 검은 피부는 태양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 태양은 A씨의 발끝조차 비추지 않는다. 그는 몇 달 동안 태양을 본 적이 없다. 9월 10일로 208일째다.

지난 2월 15일, A씨는 사촌형과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고향을 떠난 지 1년 4개월 만이었다. 두 사람은 이슬람교에서도 극소수파인 '파이다 티쟈니아' 그룹이었다. 다른 교도들은 그들이 종교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매번 시비를 걸었다. 나중에는 A씨와 사촌형을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두 사람은 2013년 10월 30일 중국으로 출국했고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인천공항에서 그들은 난민신청 의사를 밝혔다. 곧 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자를 만났고, 난민인정심사 회부 여부를 정하기 위한 면접이 이뤄졌다. 법무부 장관은 공항 등에서 난민 신청자가 생기면, 7일 이내에 그를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할지 결정해야 한다. 정식 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따져보겠다는 절차다. 그동안 A씨와 사촌형은 공항 한편에 마련된 난민인정심사대기실에서 머물렀다.

난민 되길 원했지만... 공항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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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머물고 있는 입국거부자들. 이들은 딱딱한 나무침상 위에 군용담요 같은 모포를 덮고 잠을 청한다. 특히 난민인정심사에 회부되지 못해 장기간 체류하는 난민신청자들은 세면도구도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고, 음식 제공도 부실한 송환대기실에서 버텨야만 한다. ⓒ 난민인권센터


8일 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별다른 설명 없이 두 사람에게 '난민 신청을 할 수 없으니 한국을 떠나라'고만 했다. '불회부' 결정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송환대기실로 옮겨졌다. A씨와 사촌형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어렵게 연락이 닿은 난민인권센터와 함께 불회부결정 취소소송을 진행했다. 송환대기실 밖으로 나갈 수야 있지만, 다시 들어올 수 없으므로 계속 송환대기실에 머물러야 했다. 영화 <올드보이> 주인공 같은 A씨의 감금생활은 장기전에 들어갔다.

공항마다 세워진 송환대기실은 입국을 거부당한 외국인들이 출국할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다. 9일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제출받은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에는 현재 40명이 머물고 있다. 이 가운데 A씨처럼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한국에서 지내고 싶다며 난민이 되길 원하는 사람은 모두 6명이다. 자연스레 이들은 장기체류자가 된다.


그런데 송환대기실은 말 그대로 '대기'용 공간이라 '생활'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A씨가 지내는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의 경우 크게 남녀공간이 나뉜다. 하지만 둘을 구분하는 것은 투명한 벽뿐이다. 화장실과 샤워공간은 있지만 문이 없고, 비누와 샴푸는커녕 치약조차 없다. 빨래를 하기도 힘들다. 사람들은 딱딱한 나무 침상 위에서 군용 담요처럼 생긴 모포를 덮고 잠을 청한다. 그러나 수시로 누군가는 들어오고, 누군가는 떠나는 탓에 늘 시끌벅적하다.

식사 역시 부실하다. 몇 달 동안 메뉴는 오직 하나, 햄버거와 탄산음료였다. 그조차도 최근 공항 내 패스트푸드점이 달라지면서 제과점 빵으로 변했다. 점심에 밥과 고기가 나올 때도 있지만 208일째, 624끼의 대부분을 A씨는 빵만 먹으며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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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대기실의 열악한 처우는 음식에서도 드러난다. 대기자들은 한동안 삼시세끼 햄버거와 콜라만 먹었으나 요즘에는 대부분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 난민인정심사 불회부결정 취소소송을 제기, 7개월째 송환대기실에서 지내고 있는 A씨는 자신의 사촌형이 부실한 음식 탓에 심장 발작까지 왔다고 말했다. ⓒ 난민인권센터


그는 지난 8일 <오마이뉴스> 앞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심장 발작을 일으켜 병원으로 실려 간 사촌형에게 의사가 영양 결핍을 원인으로 꼽았다고도 했다. A씨는 "식사가 정말 최악인데, 계속 그대로"라며 "관계자들은 누군가 죽기 전까지 신경 안 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책임은 누가 질까? 송환대기실은 무법 시설이다. 난민법은 난민인정심사대기실 등을 설립할 근거를 정했지만 불회부 결정이 난 사람들이 머물 장소는 따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비슷한 규정은 입국허가를 받지 못한 이들을 최대 48시간까지 '일시 보호'하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56조다. 하지만 일시보호장소인 외국인보호시설은 공항과 떨어져있다. '송환지시서'가 등장한 배경이다.

송환지시서에는 '귀하는 출입국관리법 제76조의 규정에 의하여 아래 사람을 귀하의 부담으로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하여야 함을 지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지시를 받으면, 항공사는 적당한 항공편이 나올 때까지 송환대상자들을 일정 공간에 수용해야 한다. 또 그들에게 최소한의 식사와 수면 등을 보장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비용은 항공사 몫이다.

법무부-항공사는 팔짱만 끼고...

돈도 돈이지만 결국 '책임'이 문제다. 법적으로 누가 송환대기실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보니 항공사와 법무부 모두 팔짱만 끼고 있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변호사는 "환자가 발생해도 제대로 처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항공사는 보안문제로 외부진료가 어렵다고, 법무부는 항공사가 원하면 가능하다고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가입한 국제민간항공협약은 비자 등 서류를 갖췄는데도 입국이 거부된 경우, 해당 결정을 한 정부가 송환 전까지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며 "송환과 관리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일표 의원도 "송환대기실 내 난민신청자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7일 인천공항 난민 관련 시설을 둘러보니 아직 난민정책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며 "우리도 억압과 전쟁을 피해 세계 여러 나라로 피난 갔던 만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난민보호에도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난민 #송환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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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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