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과학수사도 통하지 않는다면

[리뷰] 시즈쿠이 슈스케 <범인에게 고한다>

등록 2015.08.20 11:49수정 2015.08.2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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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에게 고한다> 겉표지 ⓒ 레드박스

잔인한 연쇄살인사건 또는 유괴사건이 발생했다 (대부분 유괴는 살인으로 연결된다). 이런 연쇄사건을 수사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좋을까.

기본적으로는 일반적인 탐문수사와 과학수사를 병행하게 될 것이다. 목격자를 찾아다니고 현장에 남겨진 증거물들을 분석한다. 이럴 경우 자세한 수사내용이나 진행상황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이렇게 수사를 하면서도 큰 진전이 없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다. 그중 하나는 공개수사로 전환하는 것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수사상황을 적절한 수준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각종 제보를 수집한다. 사건현장 주변에서 특별히 수상한 사람이나 차량을 목격하지는 않았는지 등.

도심에서 벌어지는 유아 연쇄살인

반면에 좀더 대담한 공개수사방법도 있겠다. 범인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당신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런 범죄를 행하는지, 도대체 무엇이 불만인지 공개적으로 묻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중파 방송을 이용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범인이 반응을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누군가에게 말을 붙였는데 대답이 없으면 짜증 나듯이, 수사관도 범인이 들려주는 나름대로의 대답을 기대하고 하고 공개적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공중파 방송을 이용해서 공개수사를 했다가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 그것도 담당 형사에게는 망신이다. 그러니 아무나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시즈쿠이 슈스케의 2004년 작품 <범인에게 고한다>에서는 이런 방식의 사건 수사가 펼쳐진다.

작품에서 벌어지는 것은 일련의 유괴사건이다. 범인은 10살 미만의 남자아이들을 유괴해서 살해한다. 정황으로 보았을때 아이의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아이들을 살해하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전형적인 '쾌락살인'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중년의 수사관 마키시마. 수사팀은 살해 당한 남자아이들이 4명이 되도록 사건의 실마리를 잡지 못한다. 그러자 현역 수사관을 TV 프로그램에 내보내는 초강수를 둔다. 그 역할을 떠맡은 사람이 바로 마키시마.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범인과 어떤 형태로든 소통을 하며 그를 추적하려고 하는 것이다.

형사와 범인 사이의 치열한 심리전

<범인에게 고한다>에서는 이런 식의 수사방식을 가리켜서 '극장형 수사'라고 표현한다. 수사관이 기자회견 등의 카메라 앞에서 범인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어둠 속에 숨은 범인을 극장으로 유인한다. 수사하는 쪽이 무대로 올라가면 세간에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물론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말로 장난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범인이 편지 등의 방법으로 이 대화(?)에 응하게 되면 흔히 말하는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 어떤 연쇄살인범들에게는 남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만한 일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동시에 이런 반응은 범인의 마음 한쪽에 숨어있는, 경찰에 검거되고자 하는 본성의 표현일 수도 있다. 끝내 잡히지 않았던, 실존했던 미국의 연쇄살인범 조디악(Zodiac)은 공개편지를 통해서 '제발 절 도와주세요. 제 자신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이런 식의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범인과 수사관과의 일종의 유대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 유대감이 범인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극장형 수사'를 현실에서 보기는 어렵겠지만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어떤 극장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무대가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범인에게 고한다>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 이연승 옮김. 레드박스 펴냄.

범인에게 고한다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이연승 옮김,
레드박스, 2015


#시즈쿠이슈스케 #범인에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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