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붙이고 사는데 여행이 최고죠”

한전KDN 여행동아리 ‘트래블 메이커’ 이끄는 안귀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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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ds2032)등록 2015.07.15 17:03

한전KDN의 여행동아리 '트래블 메이커' 회원들이 완도 보길도의 갯돌 해변에 섰다. 지난 6월이었다. ⓒ 안귀성


"계절이 다르더라구요. 서울에서의 봄은 회사 앞 벚꽃이 피고 지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거든요. 남도의 봄은 그렇지 않았어요. 올해 처음 경험했는데, 하루하루 달라지는 게 보이더라구요. 봄이 가장 먼저 시작돼서 늦게까지, 그것도 날마다 다르게 펼쳐졌어요. 여름도 그렇게 펼쳐지고 있구요."

안귀성 씨의 말이다. 안 씨는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빛가람 혁신도시로 옮겨온 한전KDN의 과장이다. 빛가람 혁신도시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공동으로 나주에 조성한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의 이름이다.

"11월 7일에 내려왔으니, 초겨울인가요? 늦가을이 맞겠네요. 근데 날씨 무지 추웠어요. 바람도 매서웠고요. 심리적인 추위까지 더해졌으니, 오죽했겠습니까. 혁신도시라지만, 회사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었어요. 문화시설이라곤 하나도 없었고요. 얼마나 삭막했는지 몰라요. 정말이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싶었으니까요. 적응하고 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안 씨의 회고담이다. 다른 직원들도 매한가지였다.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온 직원들은 우울증에 빠질까 걱정할 정도였다. 틈만 나면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걱정하는 게 다반사였다. 직원들은 금요일 퇴근시간만 되면 부리나케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 게 일상이었다.

한전KDN의 여행동아리 '트래블 메이커'의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안귀성 과장. 동아리 회원들의 남도여행을 기획하고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다. ⓒ 이돈삼


지난 3월 여수의 금오도 비렁길을 찾은 한전KDN의 트래블 메이커 회원들. 금오도는 동아리 결성 이후 첫 여행지였다. ⓒ 안귀성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만 없었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직원들끼리 의기투합이 이뤄졌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남도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달래보자구요. 서로의 헛헛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서 위안을 삼기로 한 거죠."

한전KDN에 남도여행 동아리 '트래블 메이커'가 만들어진 계기다. 지난 2월이었다. 회원들끼리 모여 조촐한 발대식을 가졌다. 직책도 서로 나눴다. 직책이라고 하지만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책임진 것이다. 안 씨는 정보를 모아서 여행 일정을 짜는 일에 앞장섰다. 다른 회원들도 홍보실장, 놀이대장, 숙박대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지난 3월 첫 여행지로 여수 금오도에 갔다. 비렁길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지만, 회원들 모두 첫 방문이었다. 난생 처음 배를 탄 회원도 있었다. 해안 벼랑을 따라 이어지는 금오도 비렁길은 회원들에게 큰 만족감을 안겨줬다.

전라남도가 주관한 '빛가람 혁신도시 이전기관 임직원 남도탐방'에도 단체로 참여했다. 갈대밭으로 유명한 순천만과 낙안읍성 민속마을, 보성 차밭 등을 둘러봤다. 부드러운 곡선미를 뽐내는 갯벌의 물길과 차밭 이랑이 황홀경을 선사했다.

전라남도가 주관한 ‘빛가람 혁신도시 이전기관 임직원 남도탐방’에 참여한 트래블 메이커 회원들이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에서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3월이었다. ⓒ 이돈삼


지난 4월 완도 청산도를 찾은 트래블 메이커 회원들이 바닷가 도로변에서 포즈를 취했다. ⓒ 안귀성


4월에는 '슬로시티' 청산도를 찾았다. 바쁘게 사는 게 몸에 밴 탓에 회원들은 '슬로우'라는 단어 자체를 낯설어 했다. 한편으로는 과연 '느림이라는 게 뭘까'하는 기대도 품었다. 뱃길 여행도 낭만적이었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유채꽃 너머로 펼쳐지는 옥빛 바다를 보면서 회원들과 함께 천천히 걷는데요. 바람소리 정겹고, 산새소리도 청량하구요. 이름 모를 들꽃도 예쁘고요. 광고나 책자로만 봤던 청산도보다도 훨씬 더 좋았어요. 다시 찾고 싶은 섬이었어요. 아니 금명간 다시 찾아가려고요."

안 씨는 지금도 청산도의 풍광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이야기만 전해들은 청산도가 그렇게 좋을 줄 몰랐단다. 그날 이후 청산도 예찬론자가 됐다. 지인들에게도 청산도 여행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5월엔 화순적벽 투어를 다녀왔다. 화순적벽은 광주시민의 상수원 구역에 들어있어 30년 동안 감춰졌던 비경이다. 적벽으로 오가는 길에 산벚꽃의 반영이 아름다운 세량지와 무등산 편백 자연휴양림,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도 만났다.

완도 보길도 갯돌밭에 선 트래블 메이커 회원들. 시간이 갈수록 시나브로 남도의 매력에 젖어들었다. ⓒ 안귀성


지난 10일 퇴근 이후 함평 돌머리 해변을 찾은 한전KDN의 트래블 메이커 회원들. 석양을 배경으로 서서 만세를 부르며 뛰어오르고 있다. ⓒ 안귀성


6월엔 고산 윤선도의 체취가 남아있는 완도 보길도에 다녀왔다. 풍경 하나하나가 비경이었다. 갯돌해변도 몽환적이었다. 7월엔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 일대를 돌아볼 예정이다. 여름 휴가철과 겹치기도 하지만, 다산이 18년 동안 유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18일에 다녀오기로 했다.

"중간중간에 번개도 여러 번 했어요. 퇴근 이후 시간을 활용해서 가까운 데를 한 번씩 다녀왔어요. 함평 돌머리 해변에 몇 번 갔고요. 바깥바람을 쐬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오죠. 평소에 인터넷 밴드를 통해서 소통하며 여행과 맛집 정보도 공유하구요. 요즘엔 우리 회원들 모두 남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어요."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한전KDN 현관에서 열린 트래블 메이커의 사진전시회. 지난 6개월 동안의 여행사진을 선보였다. ⓒ 이돈삼


한전KDN의 여행동아리 '트래블 메이커'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안귀성(오른쪽) 씨와 박소희(왼쪽) 씨. 동호회 일에 적극 참여하며 앞장서고 있다. ⓒ 이돈삼


안 씨는 여행길에 회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부지런히 담는다. 여행을 기획하는 것 외에 회원들의 추억을 담아내는 일도 그의 몫이다. 지난 7월 6일부터 10일까지 회사 현관에서 동호회 사진전을 연 것도 그의 공력이 컸다. 올 연말에는 참여도가 높았던 회원에게 사진앨범을 만들어 선물도 할 생각이다.

"트래블 메이커가 우리 한전KDN 가족들에게 활력소가 되면 좋겠어요. 우리 직원들도 주말에 남도여행을 즐기면 좋겠구요. 남도에 정 붙이고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리 동호회가 그런 일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안 씨의 바람이다. 빠른 시일 안에 빛가람 혁신도시에 문화생활을 누릴 공간이 만들어지고, 임직원 자녀들이 맘껏 뛰놀며 공부할 수 있는 학교와 도서관이 들어서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에 둥지를 튼 한전KDN 전경. 서울 삼성동에서 지난해 11월 전남 나주로 이전해 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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