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문화운동가 문영태 화백 별세

11일, 김포보구곶리 민예사랑 하우스 갤러리에서 추도식

등록 2015.07.10 17:24수정 2015.07.1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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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핵심 작가 중 한 사람이었던 문영태 화백이 지난 9일 이화여대목동병원에서 별세했다. 지난 7월1일 필자와 건강한 모습으로 유쾌한 회식을 나눈 문 화백은 이튿날 갑자기 쓰러져 중환자실로 이송되는 과정에 의식불명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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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태 화백 생전 모습작고하기 1주일전 자신의 작품 '심상석' 과 함께한 모습 ⓒ 박건


병원측 소견은 뇌출혈. 회복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문 화백은 한 주 정도 침묵의 병상에서 삶을 마무리 하다 9일 오전 7시 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향연 66세, 안타깝게 짧은 생이지만 평소 성품답게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군더더기 없이 제 몫을 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문영태 화백은 필자와 함께 1983년부터 1986까지 4년간 시대정신기획위원회를 결성하여 7차례 전국순회전을 열고, 시대정신지 3권을 발간하는 등 80년대초 전국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을 보다 큰 문화의 힘으로 결집시키고 사회 운동으로 확장해 나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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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전 포스터1983년 시작된 ‘시대정신’전은 작품 전시만이 아니라 무크지 <시대정신>도 발간해 초기 민중미술운동의 담론을 주도했다. 83년 첫 기획전에 강요배·고경훈·김민숙·김용문·김윤주·김정명·김정헌·문영태·민정기·박건·박불똥·서상환·송주섭·신학철·안창홍·임옥상·전준엽·황재형 그리고 고 오윤, 사진가로는 김영수·최민식이 참여했다. 포스터 사진은 고 김영수 사진가의 작품이다 ⓒ 박건


<시대정신>은 민중미술작가들의 활동과 미학을 담고, 당시 주변부 장르에 머물렀던 판화,사진, 만화, 벽화가 지닌 대중성과 공공성에 일찍이 주목해 특집으로 엮었다. 또 참여시, 마당극, 여성 문제 등을 다루는 등  한국민족미술과 민중문화운동을 지향한 최초의 유일한 문화예술담론지 역할을 했다.

1984년 무크 '시대정신' 창간호는 '삶-그 모든 방향에서 달려와 만져 보고 꼬집어 보고 껴안아 본다'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미술평론가 김윤수는 권두언에서 "'시대정신'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이루는 정신이 실로 부패하고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처해 있다는 통찰과 인식에서 온다"면서 "그들의 시선은 미술사 속에 있지 않고 민족사를 겨냥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현상, 사고방식, 제도, 체제에 맞서 민족사를 주도하는, 깨어 있는 정신이야말로 시대정신"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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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지 1,2,3 권84년 무크 <시대정신> 1권에는 문영태의 연필화 ‘심상석’, 85년 2권엔 김용신의 판화 ‘한반도여’, 86년 3권에는 ‘우리시대 성’ 전시에 출품된 유성숙의 유화 ‘대지에서’가 표지화로 실렸다. ⓒ 박건


또한 당시 민중화가 김봉준, 이철수, 최민화, 홍성담, 홍선웅, 유연복 등과 더불어 민중미술운동이 미술판에서 갖는 한계를 넘어, 판화운동을 전개했다. 아울러 문 화백은 학교와 근로 현장에서 시민미술학교를 개최하는 등 미술이 사회운동과 삶의 한가운데로 확장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펼쳐 나갔다.

문영태 화백은 1985년 손장섭, 신학철, 김정헌, 성완경, 임옥상, 박재동 등 150여명의 작가들이 모여 민족미술협의회를 발족시키는 데 참여하고 운영위원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1986년 설립된 그림마당민이 경영난에 부딪히자 1987년 관장직을 맡아 위기의 전시공간을 다채로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특유의 운영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림마당민'에선 유홍준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강좌와 '고 장일순 선생의 한살림운동', 기금 마련을 위한 '서화전'이 가수 김민기의 주선으로 열렸다. 이로인해 수많은 정치·종교·문화계 인사들이 찾는 등 민중문화공간으로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림마당민은 1994년 재정난으로 폐관하기 전까지 통일전, 여성과 현실전, 탄압사례전, 반고문전, 정치와 미술전 등을 열었고 독립영화 상영과 문화강좌, 토론회를 열며 민중문화의 거점 역할을 했다. 또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등에 지원, 연대를 아낌없이 하면서 문화예술을 통한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진중하게 기여하였다.

문영태 화백은 1990년 무렵 사진가 이지누씨와 필자 등과 '경의선모임'을 결성하여 사진집 <분단풍경>(눈빛출판사)을 펴내기도 했다. 1993년에도 공동사진집 <두 사람>(민맥)을 선보였다. 1990년대 중후반 진보월간지 <사회평론>에 '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性)'을 연재해 미려한 문체와 독보적인 비평으로 주목을 받았다.

1995년 김포 보구곶리에 작업장을 마련하고, 2000년 이후 장재순 여사와 함께 '민예사랑'의 중심역할을 했다. 그는 이후 지역문화발전에 이바지 하여 주민의 발길을 끌고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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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태 화백 6월말 김포 보구곶리 하우스 갤러리 모습 ⓒ 인사동사람들-조문호사진


10일 아침, 부인 장재순 민예사랑 대표가 보내온 글이다.

"이른 아침... 뜻을 모아 주시어 깊은 감사 드립니다. 흐믓한 미소로 바라보시는 듯.. 고요함이.. 많은 분들께 아련함을 남긴채 홀로 편히 떠나시네요.. 사랑했어요.."

문 화백은 슬하에 아들 지함, 며느리 김윤지, 딸 지민을 두었다. 빈소는 서울 이대목동병원이며. 발인 11일 오전 7시. 추도식은 1시 김포 보구곶리 자택-'민예사랑 하우스갤러리' 마당에서 박진화(민족미술협의회 회장) 사회로 진행된다. 장지는 강화도 파라다이스 추모원. (02)2650-5121. 
덧붙이는 글 고 문영태 화백 추모식 '새처럼 훨훨 날으소서'(사)민족미술인협회
07:00 발인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
09:00 벽제 승화원
13:00 추모식 (김포시 월곳면 보구곶리 212-7)
-고인약력소개(도예가 변승훈)
-조사 추만호(철학박사, 한학자)
-추모사 홍성웅(화가)
-유족인사말
- 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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