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희귀술 모인 학'술'회, 기자도 기억을 잃었다?

[현장] 여행 PD 탁재형의 '스피릿 학술회 2015', 애주가들의 환호성 가득

등록 2015.05.04 09:37수정 2015.05.0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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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 홍대앞 쫄깃센타에서 열린 '스피릿 학술회 2015'. ⓒ 안홍기


역시, 술맛을 글로 표현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모양이다.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마신 술 이야기를 글로 쓴 여행 PD가 직접 그 술맛을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이 자리에 참석한 행운아들은 한 병 한 병 술 마개가 따질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스피릿 로드'(Spirit Road). 구도나 고행의 순례길이 아니라 '술의 길'이다. 영어 '스피릿'은 증류주의 총칭이다. 여행 PD로 온 세상을 돌아다니다 겪은 수많은 술 중에서 26개를 골라 소개한 탁재형 PD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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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열린 '스피릿 학술회 2015'에서 술 관련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 탁재형 PD. ⓒ 안홍기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앞 쫄깃센터에 모인 20여 명은 행운아다. 비록 공짜도 아니고 맘껏 마시지도 못했지만, 세계 곳곳의 술 20여 가지, 그것도 탁 PD가 엄선한 각양각색의 술을 서울 한복판에 앉아 맛보는 행운을 누렸다. 이 행사 이름은 '스피릿 학술회 2015'다.

술 먹는 자리라고 하니 '학술회'라는 명칭이 아무래도 진지하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학술회는 그럴듯했다.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화학반응식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술이 체내에 들어가서 만들어지는 아세트알데히드의 독성과 GABA(신경안정물질)의 작용까지 훑고는 알코올성 치매를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까지 탁 PD는 잊지 않았다.

이탈리아 아페롤로 시작, 원주민 최음제 꽃 넣은 아가베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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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페롤 ⓒ 안홍기

본격적인 시음이 시작됐다. 이탈리아에서 아페리티보(식전)로 즐겨 마시는 11도짜리 리큐르 아페롤이 나왔다. 쓴맛이 식욕을 돋우고 위장에 시동을 걸기에 좋다고 한다.

한 모금 마신 참가자들의 입에서 "감기약 같다"는 감상평이 나왔다. 소다수와 오렌지 주스를 섞어 칵테일로 마시기도 좋다.


다음은 달콤한 술이 나왔다. 그런데 35.5도로 알코올 함량은 꽤 높다. 미국 와일드터키사에서 여성들을 겨냥해 버번에 북미산 꿀을 섞어 만든 '아메리칸 허니'다.

얼음을 넣어 '온 더 록(On the Rock)'으로, 콜라나 커피와 섞어 마셔도 좋다. 탁 PD의 '꿀 팁'은 "카스에 타면 꿀맥주가 된다"는 것이었다.

맛만 보는 시음회가 아니라 학술회이다 보니 술에 대한 설명이 뒤따랐다. 옥수수로 위스키를 만들어 미국 고유의 술이 된 버번의 탄생과정, 버번통의 독특한 제작과정 등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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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베로 ⓒ 안홍기

멕시코에서는 32도짜리 아가베로가 나왔다. 테킬라의 원료인 용설란이 원료다.

용설란 중에서도 최상급 블루 아가베가 쓰이고, 중미 지역 원주민들이 최음제로 믿어 온 다미아나 꽃도 들어 있다니 왠지 신비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캐러멜 맛이 난다.

다시 이탈리아 술이 나왔다. 일리큐어는 마치 에스프레소 한 잔에 황색 각설탕 두 개를 녹인 맛과 흡사하다.

아페롤이 식전주라면 일리큐어는 식후주라고 한다. 리큐르로 유명한 회사 그루포 캄파리와 커피회사 일리가 손잡고 만든 술이다. 그냥 합성착향료로 커피 향을 내지 않았다. 커피 특유의 신맛까지도 느껴지는 진짜 커피 술이다.

와인 냄새나는 10.5도 맥주... "무색무취가 보드카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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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덴 드락 9000. ⓒ 안홍기

조금씩이지만 독한 술을 연거푸 마신 탓인지 얌전하던 참가자들이 어느새 활기차게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뜬금없이 맥주가 나왔다.

벨기에의 굴덴 드락 9000. 그런데 알코올 도수가 10.5도다. 일반 맥주는 평균 5도 정도다.

맥주를 만들 때 일반 맥주의 두 배의 재료가 들어가면 7도 정도의 듀벨(Duvel), 세 배면 9도의 트리펠(Tripel)이고, 네 배면 쿼드루펠(Quardrupel)이라 부르고 10도 이상이라고 한다. 굴덴 드락 9000이 바로 이 쿼드루펠에 속한다.

분명히 맥주인데 포도주 비슷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보리 와인'(Barley Win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시 테킬라가 나왔다. 이름도 생소한 1800 아녜호. 100% 블루 아가베로 만들어 3년을 숙성, '테킬라의 코냑'이라고 불리는 술이다. 탁 PD는 "테킬라에도 계층이 있다"며 이 1800 아녜호는 레몬에 소금을 곁들이는 미국식 방법으로 마시지 말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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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즈카. ⓒ 안홍기


냉동실에서 알루미늄 술병이 나왔다. 허옇게 성에가 끼어 손이 쩍쩍 들러붙을 만큼 언 병에서 나온 건 젤 상태의 무색 보드카였다. 덴마크의 40도짜리 보드카 단즈카다. 알루미늄 병에 넣은 건 이같이 온도가 중요한 술이기 때문이다. 탁 PD는 "가장 순수한 에탄올의 맛, 무색무취가 보드카의 미덕"이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어느새 시끌벅적해져서 탁 PD의 음성도 높아졌다.

세계의 술을 연구하는 데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빠질 수 없다. 이번엔 싱글몰트(Single Malt)인 하이랜드 파크가 나왔다. 보리만을 증류한 몰트 위스키 중에서도 여러 증류소의 술을 섞는 블렌드(Blended)와 달리 한 증류소에서 생산된 게 싱글몰트다. 

유명한 싱글몰트 회사인 글렌피딕에 납품하다가 독자 브랜드를 구축한 게 하이랜드 파크라고 한다. 후추맛이 났다.

이외에도 이날 탁 PD와 참가자들은 더 많은 종류의 술을 마셨다. 하지만 술의 작용 탓인지 기자도 일일이 기억하고 글로 풀어내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 병 한 병 술 마개를 딸 때마다 참가자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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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형의 '스피릿 학술회 2015'에 나온 술들. ⓒ 안홍기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탁재형 #스피릿로드 #학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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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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