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암 선고...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암~ 난 행복하지!⑤] 청천벽력

등록 2015.04.23 20:33수정 2015.04.2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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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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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대기실 검사결과를 듣기전 대기시간은 항상 길고도 지루하다. ⓒ 강상오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담담하게 내가 '암'이라고 말하는 의사.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니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고 내가 암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조직검사를 하고 암 진단이 나왔음에도 내 마음은 무언가 다른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잠시동안 머릿속엔 수만 가지 생각들이 났지만 시간은 애석하게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고 의사는 나에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수술을 하셔야겠네요. 어떻게? 수술을 여기서 하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가실래요?"

암수술이다보니 의사는 나에게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을 건지 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장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못했고 치료를 받기 위해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생각을 좀 해본다고 하고 병원을 나왔다.

내가 암이라니. 대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머니께는 뭐라고 말씀드릴까? 그리고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치료받으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 어쩌나…. 머릿속은 자꾸 복잡해져만 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동료들이 다가와 결과가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실감은 나질 않지만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역시나 다들 놀랐고 나에게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눈치였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팀장이 내게 말했다. 큰 병원에서 더 자세히 검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직검사를 받은 김해O병원에서 잘못 안 걸 꺼라고. 큰 병원에서 다시 검사하면 양성결절로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건 정말 무의미한 기대였다.


갑상샘 치료를 잘하는 병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료 한 명이 '갑상샘암 수술 많이 하는 병원 TOP 10' 리스트를, 어떻게 찾았는지 내게 보내주었다. 대부분이 서울과 경기도에 집중돼 있었고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 세 곳이 열 개 병원 안에 포함돼 있었다.

세 개 병원 중에 순위가 가장 높은 병원은 몇 년 전 큰외삼촌이 폐암 투병을 하시다가 마지막을 보내신 곳이라 차마 갈 수 없었다. 그 다음 순위에 있는 병원이 그나마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기가 가까운 곳이라 그 병원을 선택했다. 그 병원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했다.

"수술을 여기서 하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가실래요?"

처음 갑상샘 결절을 발견하고 내가 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70대가 훌쩍 넘은 노모가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 계속 들락날락 할 것이 뻔한데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왔다 갔다 하기 좋은 거리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동료들은 그래도 암수술 하는 건데 큰 병원에서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검사를 하고 암 진단을 내린 김해O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면 어머니가 왔다 갔다 하기 편하실 테니까 그냥 거기서 수술받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동료들의 말을 듣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그 병원 의사가 자신 있게 '여기서 수술하자'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병원에서 수술할 건지 물은 게 괜히 더 불안했다.

이런저런 사유들로 부산에 있는 내 고향 병원인 O대학병원 내분비내과에 진료예약을 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소규모 병원에서 발부받은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한다. 검진센터에서 CD와 함께 발부받은 진료의뢰서를 김해O병원에 내버렸기 때문에 나는 김해O병원에서 다시 진료의뢰서를 발부받았다.

부산 O대학병원 내분비내과에서 갑상샘을 잘 보는 의사라고 유명한 O 교수에게 진료의뢰서를 보여주고 진료를 받았다. 세포흡인검사 결과 암 진단을 받았다고, 검사결과가 잘못됐을 확률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임상병리사가 시료를 착각해서 바뀌지 않는 이상 90% 이상 신뢰해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 진료실에서 나와 다시 초음파 검사와 세포흡인검사를 받았고 주사기를 꽂은 김에 시료채취를 좀 더 해서 암의 종류를 알 수 있는 '유전자 검사'까지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약 2주 만에 목에 초음파기기를 세 번을 갖다댔고 주사바늘을 두 번 찔렀다. 몸서리치게 싫어하던 병원을 내 집 드나들듯이 하고 있다. 너무 괴로웠다. 특히 대학병원에 오니 너무 많은 환자들이 몰려 있었고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내 자신이 더 아플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병원 역시나 세포흡인검사를 통한 임상병리 검사에는 일주일이 걸린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난 2013년 10월 4일, 다시 한 번 암 선고를 받았다. 두 번에 걸쳐 '당신은 암입니다'라고 듣고 나니 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날, 나는 건강보험공단에 '중증환자'로 등록됐다. 그렇게 이제 진짜 암환자가 되었다.
#갑상샘 #암진단 #대학병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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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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