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더러운 입을 비질할 청소부 어디 없소?

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된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등록 2015.04.14 14:11수정 2015.04.1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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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비 '서시' ⓒ 박도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위의 시는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 시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졸업 1개월 앞둔 1941년에, 그의 첫 시집 서문으로 쓴 작품이다. 곧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시(序詩)인 만큼 윤동주의 시 세계를 잘 말해주는 작품으로, 그의 순결성, 인간애, 운명애 등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서시의 주제는 '부끄러움이 없는 순결한 삶에 대한 소망과 의지'로 시인의 올곧은 양심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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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촌 윤동주 생가 ⓒ 박도


'부끄러움의 미학'

윤동주는 1917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명동촌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망국민들이 괴나리봇짐으로 몰래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 외진 마을에서 오순도순 모여 숨죽이며 광복을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가난한 마을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 마을에서 선택받은 삶으로, 명동소학교를 거쳐 용정의 은진중학교를 다녔고, 다시 평양의 숭실학교로, 서울의 연희전문학교로 유학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그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을 했다. 그 무렵은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때로 고국의 친구들은 징용이나, 정신대로 끌려가는데 자기는 그런 선택받은 삶이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고향의 친구들은 헐벗고 굶주리거나 전쟁터로 끌려가는데, 자기는 남의 나라 육첩방에서 대학노트를 끼고 강의를 들으러 가는 게 크나 큰 양심의 가책이었다. 시인은 그런 부끄러움을 그린, 올곧은 양심의 소리로 '참회록' '십자가' '쉽게 씌어진 시' 등 여러 시를 남겼다. 곧 윤동주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이후 티 없이 맑은 청소년들의 영혼을 맑게 하는 시로 사랑을 한껏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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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모교 명동소학교 ⓒ 박도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윤동주 '참회록'.

자기 성찰의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는, 한 지식인의 아픔을 노래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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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무덤 ⓒ 박도


슬픈 현실

나는 1999년 여름, 항일유적답사 길에 명동촌을 찾아가 그의 집과 명동교회, 그리고 명동소학교, 용정 시내 대성중학교를 답사한 다음 마지막 여정으로 그가 영원히 잠들고 있는 용정현 뒷동산 중앙교회 묘역의 윤동주 무덤을 찾아 깊이 묵념을 드렸다.

윤동주의 고결한 '서시'의 한 구절은 이즈음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의 입에 거침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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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자료사진

사실 이 말은 이전에도 각종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의 입에서 여러 번 쏟아진 말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쇠고랑을 차고 교도소로 가는 씁쓸한  뒷모습을 이 땅의 백성들은 수없이 보아왔다.

나는 한 문학인으로, 윤동주 서시의 한 구절이 정치인들의 자기 변명으로 남발되고 있는 현실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하늘에 계신 윤동주 시인은 지상을 내려다보며 뭐라고 말씀하실까?

"너희들의 그 더러운 입으로 제발 내 시를 읊지 말라."

아마도 이런 말로 그들을 질타하실 테다.

맑은 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듯이, 고결한 시도 부패한 정치인들이 읊으면 매우 듣기에 역겨운 말로 젊은 영혼을 더럽히는 슬픈 현실이다.

부도덕이 도덕을, 비양심이 양심을, 불의가 정의를 제압하고 있는 오늘 대한민국의 25시다.

"오호 통재라! 저들의 더러운 입을 태평양 바다로 비질할 청소부 어디 없소?"
#성완종 #윤동주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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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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