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문 대학생들 "누가 우릴 '문송'하게 만드나요?"

[현장 목소리] 황우여발 '대학 구조조정'... 기초학문 고사 우려 속 대학가

등록 2015.03.20 11:13수정 2015.03.2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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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요즘 인문계 출신들의 취업난을 자조적·사회풍자적으로 표현한 유행어다. 또한 기업들이 단기적 성과를 위해 인문계 직무에 이공계를 배치하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인구론(인문계 출신 90%가 논다)'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설상가상일까? 이젠 국가까지 나서 이러한 사회추세에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최근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산업수요'에 따라 입학정원 재조정을 하는 대학에 예산을 대폭 지원하겠다는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적 수요와 대학이 양산하는 졸업생이 매치가 되지 않는데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소위 '미스매치론'을 내세우며 교육제도의 취업중심 재조정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국가가 앞장서 잘못된 풍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까지 나서서 기초학문 학생들을 '시대를 잘못 타고난(?)' 풍운아들로 점찍은 셈이라고나할까? 이들은 사회풍조와 교육정책 덕분에, 참 '문송'할 일 많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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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구조조정 계획안을 놓고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중앙대학교.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교훈 뒤로, '경영경제관'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이 보인다. ⓒ 홍원섭


최근 교육부 정책과 호응해 대학 구조조정을 선도하고 있는 대학은 중앙대다. 지난 2월 26일, 중앙대는 '전공선택제'가 포함된 구조조정 계획안을 발표해 논란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기존에 학과(혹은 전공) 별로 입학정원을 할당해 신입생을 선발하던 방식을, 단과대나 계열별 통정원으로 모집해 재학 중 전공을 선택하게 하겠단 것이다.

중앙대 본부 측은 계획안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의 진로탐색 기간과 전공선택 기회를 확보하고, 교양과정과 이중전공 제도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과 경쟁력 강화 효과 등을 기대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정책으로 결국 취업 잘되는 전공으로 '쏠림현상'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한 기초학문 고사(枯死)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입학정원이 따로 할당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을 덜 받는 전공이 눈에 띄게 되면 해당 학문을 없애는 명분이 되지 않으리란 것을 누가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실제로 2008년 두산그룹 인수 이후, 중앙대는 경쟁력을 이유로 2010년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줄이고 77개 학과를 46개로 통폐합했다. 또한 2013년에는 비교민속·아동복지·가족복지·청소년학과를 폐과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 대해, (당사자들인) 기초학문 대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물론, 문제가 인문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예체능이나 자연계열 기초학문들도 이러한 상황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 들어보았다. 누가 그들을 '문송하게' 만드는가?

누가 우리를 '불량품' 취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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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구조조정 계획안에 반대해, 1인 시위를 진행한 중앙대 철학과 조영일씨 ⓒ 조영일


중앙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조영일씨는 구조조정 계획안 발표 이후 가장 먼저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그는 "(경쟁논리로) 많은 학생들을 불량품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불량품'들의 편에 서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이 어떤 공간인지 질문을 던지며, 대학의 목적에 "학습과 연구"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기초학문과 적성이 맞지 않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학과제를 폐지한다면 오히려 교육당국 스스로 '입시실패'를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대학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며, "우리나라가 특수한 상황에서 너무 급격한 성장을 겪은 뒤, 여전히 중등교육부터 먹고사는 문제와 기업위주로만 돌아가는 풍조가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철학과는 정시가 아닌 수시로만 뽑거든요. 학생들이 자기소개서라도 최소한 한 장씩 다 쓴다는 거죠.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입학사정관제가 실시됐지만) 정작 면접 시 교수님들은 만날 수가 없었어요. 적성 맞는 학생들을 뽑으려면, 학교가 학과와 충분히 논의해 입학전형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면 될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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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구조조정 계획안 발표 이후, 이를 반대하며 예전에 대학가를 휩쓸었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까지 재등장했다. ⓒ 의혈, 안녕들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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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는 최근 교수 구조조정 계획안 찬반투표 참여자 약 92%가 계획안에 반대한 가운데, 학생 구조조정공동대책위도 출범했다. 이들은 "대학본부의 소통 없는 구조정에 반대"한다는 출범 선언문을 발표했다. ⓒ 중앙대 학생 구조조정공동대책위


같은 대학 러시아어문학전공 재학 중인 A씨 역시 "(학교운영 커뮤니티에서) 기초학문 전공하는 학생들은 모두 수능점수와 대학간판 맞춰 온 것처럼 비하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어서 속상"하다며 "그런 논리라면 취업 잘 되는 학과에도 적성 안 맞는 사람들이 있긴 마찬가지"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자신의 학과에)적성이 잘 맞는 편"이라면서, "학부 4년간 배우는 거 무시할 수 없고, 응용학문이나 융·복합학문도 독립적인 기초학문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과 일자리가 있도록, 정부가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우리가 '문송'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누가 우리의 붓을 꺾었는가?


"피카소와 고흐가 취업하였습니까?"
"이중섭과 박수근은 4대보험이 뭔지도 모르고 그림만 그렸습니다."
"붓을 꺾지 않는 한 우리는 무직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입니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는 42년 전통의 화가 양성 산실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학생들은 취업률 등 경쟁력을 이유로 학교 측으로부터 갑작스런 '신입생 모집중단', 즉 사실상의 '폐과' 통보를 받았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었던 20대 초반의 여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교육당국에 맞섰지만, 교육당국은 결국 계획을 강행했다. 이젠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을 오직 "전국의 다른 대학생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중"이라는 소식 하나만으로 들려준 학생(B, C)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아래는 B·C학생과 나눈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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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당시, 동양화과 신입생 모집 중단에 반발해 힘을 모았던 동양화과 학생들. ⓒ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 안타깝게도 결국 모집이 중단됐는데, 원래 동양화과였던 학생들의 현재 삶은 어떤가요?
"일부 학생들은 전과를 했고, 남아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은 하고 있지만,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많이 줄어들었요. 지금 남아있는 학생들이 겨우 졸업할 정도는 되는 거 같습니다."

- 교육당국에서 취업률 등 경쟁력을 이유로 사실상 폐과 통보를 했을 때, 심정은 어땠나요?
"미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최소 3년 이상 미술만 바라보고, 그 길을 걸어온 학생들입니다. 미술 할 거면 굳이 대학을 왜 가냐는 주장도 있겠지만, 대학에 오는 이유는 미술에 대해 시야를 넓히고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서입니다. 등록금도 비싸고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행복함을 느끼면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육당국과 사전소통도 없었을 뿐더러, 납득할 수도 없는 이유로 신입생 모집중단을 통보 받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 취업률 등이 반영된 대학평가 배경에는 교육부 정책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예술 하는 사람들을 지원 해줘야할 국가가 오히려 전도된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네요?
"학교 측에서는 우리가 취업률이 저조해서 폐과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 해줬지만,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학과별 등급 평가요소 중 하나가 취업률입니다. 그런데 취업률이 꽤 크게 작용합니다. 우리처럼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졸업을 하고나서 계속 작품 활동을 그게 나름의 취업이에요. 그런데 학교나 국가가 기준 잡는 취업은 4대 보험이 보장되는 곳이죠. 저희는 그런 쪽은 신경도 안 쓰고, 생각 해본 적도 없습니다. 동문들도 각계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고,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예술가가 된 겁니다. 유일한 문제는, 바로 그게 교육당국에서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는 점뿐입니다."

- 어떻게 보면 지금 대학 구조조정을 겪고 전국 대학생들에겐 선배인 셈입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해주고 싶다면요?
"우리는 20대 초반의 여학생들이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지만, 거대한 교육당국과 싸우면서 무력감도 많이 느꼈는데, 그 와중에도 서로서로 의지하면서 몇 번을 다시 일어섰습니다. 가능성도 많이 보았고, 동문 선배님들까지 생업을 중단하고 찾아와 도와주셨습니다. 동문들과 연대하는 것도 좋을 거예요."

'문송'할 일 많은 이유... 황우여 '미스매치론' 과연 맞는가?

이렇게 산업수요에 '미스매치'해 '문송'한 우리네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이들 중에는, 더 이상 불량품으로 규정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며 1인 시위에 나선 학생도 있었고. '문송'할 일 생기기 전에, 정부의 책임부터 다할 것을 비판하는 학생도 있었다. 또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단지 교육당국의 기준에 맞지 않아 '문송'한 학생들도 있었다.

대학교육연구소 한 관계자는 "지금 교육부 주장은 노동부의 2023년까지의 '중장기 인력 수급 전망'을 두고 나오는 것"이라면서, "공학·의학계열은 인력이 부족하고 인문·자연·예체능계열은 넘친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기초학문 정원은 꾸준히 줄고 응용학문은 늘어왔음에도, 인력수급 미스매치 문제는 개선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의 경우 99년 이후 가장 안 좋은 상황이며, 5명 중 1명은 1년 미만 단기계약직으로 노동의 질도 나쁘다"면서 "일단 일자리 자체가 없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나쁜 상황에서, 정부가 정작 할 일은 다하지 못하면서, 마치 인력수급 문제가 모든 것 인냥 주장하며 대학을 조정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우리 학생들을 '문송'하게 만드는가?"
#중앙대학교 #중앙대 #구조조정 #문송합니다 #황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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