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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이는 다큐', 작정하고 만들었다

[쿡방 이야기③] <요리인류> 이욱정 PD "요리는 자연과 인간의 고리"

15.03.06 10:29최종업데이트15.03.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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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쿠엔스. '요리하는 인간'이란 뜻입니다. 먹는 모습을 담은 '먹방'에 직접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쿡방'까지 요리 프로그램이 대세라고 하지만 형식이 점차 다양해졌을 뿐, 요리를 다룬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꾸준히 있었죠.

요리 프로그램의 녹화 현장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내가 하면 1시간은 족히 걸릴 요리를 셰프들은 어떻게 15분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또 이런 생동감 넘치는 요리를 다큐멘터리에 담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 것일까요. 이 모든 궁금증을 풀어봅니다. [편집자말]

KBS 1TV <요리인류>를 연출한 이욱정 PD ⓒ KBS


|오마이스타 ■취재/이언혁 기자| 소리 없이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을까. 내레이션으로 대부분의 정보를 전달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다큐멘터리를 소리 없이 영상만 보는 것은 그리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KBS 1TV <요리 인류>라면 가능하다. 영상만 봐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충분히 알 수 있고, 다양한 색감을 통해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다.

<요리 인류>를 연출한 이욱정 PD는 소리만 들어도 대번에 무엇을 다루는지 알 수 있는 기존 다큐멘터리의 화법을 과감히 깼다. 이미 UHD 시대에 접어들었고, 스마트폰으로 각종 영상을 찾아보는 젊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정보의 양을 줄이고, 압도적인 영상미로 '보는 다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고민의 끝에 <요리 인류>가 있었다.

"빵 고기 향신료, 다루고 싶은 100가지 음식 중 일부" 

ⓒ KBS


<요리 인류>는 지난 2014년 세 편, 2015년 다섯 편을 방송했다. 후련한 마음에 한숨 돌릴 법도 하건만, 이욱정 PD는 여전히 바빴다. 많은 시청자들은 <요리 인류>가 8편을 마지막으로 끝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지난 2년간 빵과 고기, 향신료 등 세상을 움직인 음식을 다룬 <요리 인류>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오디세이아>처럼 매년 계속되는 시리즈다.

"빵은 <누들로드>를 만들면서부터 생각했던 주제다. 밀가루로 만드는 음식의 뿌리는 국수보다 빵이니까. 길게는 7천 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그래서 빵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만 할까 하다가 욕심을 냈다. 인류의 삶을 바꾼 음식을 100개 정도 다루고 싶은데 한 해에 하나씩 하면 안될 것 같아서 고기, 향신료까지 다루게 됐다."

그렇다면 이욱정 PD가 생각한 100가지 음식은 무엇일까. 그는 2016년 선보일 <요리 인류>의 테마는 '발효'라고 했다. 김치를 포함한 절임 채소, 콩, 치즈 등을 다룰 예정이다. 이 PD는 "인류의 음식, 조리법 중 시간의 장벽을 넘어서 내려오는 것이 발효 음식이다"면서 "한국 음식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음식 문화에서도 발효는 중요한 영역이다. 흥미로운 테마"라고 전했다.

"'듣는 다큐'에서 '보는 다큐'로...다양하게 체험"

ⓒ KBS


<누들로드>, 그리고 요리하는 PD. 이욱정 PD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다. 인터뷰 전, 그가 꺼내 든 명함의 한 면에도 조리복을 입은 이 PD의 캐리커처와 함께 'BAD COOK'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요리학교를 간신히 졸업했다"는 그는 스스로를 'BAD COOK'이라고 했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만드는 요리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요리 인류>는 일찌감치 큰 관심을 받았다.

"제작에 대한 압박감이 어느 정도 있다.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결국 몸이 고단할 수밖에 없다. 공부를 많이 하고 가지만 현장에서는 예상과 완전히 다른 상황과 맞닥뜨릴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 찍지 않고, 뭔가를 더 잡아내려고 한다. <누들로드>에서는 영화적인 영상을 선보였다면, <요리 인류>는 소리를 끄고도 영상에 빨려들게 하려고 했다."

그 결과, <요리 인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보지 않던 젊은 세대의 시선도 사로잡았다. 인터넷 블로그에 관련 글도 많이 올라왔고, SNS에서도 꽤 언급됐다. 이 PD는 이런 성과에 대해 "고무적"이라고 했다. 영상과 함께 전하는 정보와 지식의 양을 최소화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관심을 가진 이들이 포털사이트의 칼럼 등 '멀티미디어 글쓰기'로 자세한 정보를 접하게 하는 방식. 이러한 <요리 인류>의 시도는 시청자의 궁금증과 함께 적극적인 체험을 이끌어냈다.

"상상력·창의력 있는 오지의 주방, 유명 식당 못지 않아"

ⓒ KBS


'초 긍정'적인 성격이라 웬만해선 걱정을 잘 안 한다는 이욱정 PD도 힘들 때가 있다. 찍어온 영상을 편집할 때다. 그때의 모습을 다시 보면 힘든 기억이 떠올라 괜히 몸이 쑤셔온다고. 비행기나 차를 타고 17~18시간 이상 이동하는 것은 기본이요, 30일 동안 하루도 안 쉬고 세계 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아찔한 경험도 많았지만, 툰드라에서 순록 떼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요리는 결국은 자연의 산물이 인간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이다. 자연과 인간의 고리라고 할까. 촬영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오지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이 발휘했던 주방의 지혜에는 지금 최고의 셰프들이 생각해내는 것 이상의 응용력과 상상력, 창의력이 들어가 있었다.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음식을 만들고, 신과 자연에 감사하고, 주변 사람과 나누는 것이 음식 본연의 뜻을 잘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 KBS


이 PD가 <요리 인류>를 준비하는 동안, TV에는 요리 프로그램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그는 이러한 모습을 두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식문화가 진화하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누구와, 어디서 먹는지,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이어 이 PD는 "다들 힘들고 외롭고 지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위로받고, 기쁨을 얻는 가장 손쉬우면서도 근원적인 수단이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먹는 것에 너무 신경 쓰면 속물 같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요리를 잘하고 싶어 하고, 더 많이 알고 싶어한다. 음식이 패션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나는 거기에서 나아가 그것들 뒤에 담긴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보는 시각이 있었으면 한다. 요리는 내게 결국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도다. 음식은 다른 어떤 문화의 요소보다도 인류의 여정을 굉장히 잘 보여주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자 상징이다."

ⓒ KBS


"직접 (요리를) 배워보니까 함부로 평을 못 하겠다"는 이욱정 PD. 그는 <요리 인류>의 2016년 판 이전에 또 하나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4월부터 선보일 10분짜리 데일리 프로그램 <요리 인류 키친>이다. 3개월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면서 요리법을 알려주고, 그 요리에 숨은 이야기 등을 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일주일에 1시간 짜리 한 편을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이를 하루 단위로 쪼개볼 계획이다.

"<요리 인류 키친>은 <요리 인류>의 심화 버전일 수도 있다. <요리 인류>를 통해 소개된 요리를 보여줄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를 선보일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요리에 관심을 갖지만 '소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운전을 하지만, 누구나 F1 레이서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 요리의 참된 즐거움은 체험을 통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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