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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피 탐하는 뱀파이어, 의사가 된다고?

[드라마리뷰] 뻔한 설정 난무한 첫 회, 다음은 다를까

15.02.17 09:20최종업데이트15.02.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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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블러드>의 포스터 ⓒ KBS


16일 KBS 2TV <블러드>가 첫선을 보였다. 뱀파이어가 영상물에 등장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일찍이 뱀파이어를 잡는 뱀파이어를 그린 <블레이드>를 시작으로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의 대립을 그린 <언더 월드> 시리즈를 지나, 하이틴 로맨스 물 <트와일라잇>까지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영화가 있었다. 미국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뱀파이어가 등장한 <트루 블러드>에서 역시나 로맨스 물로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뱀파이어 다이어리>까지 다양한 시리즈물이 명멸하고 있다. 그렇게 바다 건너에서 인기를 끌던 뱀파이어는 2011년 tvN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국내로 영역을 넓혔다.

서구 문화에서 뱀파이어는 이질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중세 이후 발칸 반도를 중심으로 떠돌던 민담의 주인공이었으며, 그 캐릭터는 브람 스토커가 1887년 발간한 <드라큐라>를 통해 집대성되었다. 역사적 전통을 가진 이 캐릭터는 피와 그 피를 지닌 여성에 대한 갈구로 오히려 많은 여성 독자를 매료시켰으며, 서양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변주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뱀파이어가 우리의 영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전통적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우리의 민담에는 귀신이나 도깨비는 있을지언정 남의 피, 그것도 여성의 피를 탐하는 뱀파이어는 없었으니. 그래서 우리 TV로 온 뱀파이어는 탄생을 불치병처럼 기괴한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처리한다. 그들은 감염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뱀파이어가 되었고, 그것은 가족 내의 전이로 유전된다.

여기서 뱀파이어가 된 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편이 갈린다. <블러드>에서 주인공 박지상(안재현 분)의 부모로 등장하는 박현서(류수영 분)와 한선영(박주미 분)은 뱀파이어임에도 자신의 능력을 나쁜 방향으로 쓰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감염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 반해 다짜고짜 등장하여 박현서를 없애고 한선영과 박지상을 쫓는 이재상(지진희 분)은 아마도 뱀파이어의 능력을 나쁜 데 사용할 듯 보인다. 그러니 박현서를 없앨 수밖에.

<블러드>의 첫 회는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박지상의 과거를 비극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서사로 그려냈다. 부모의 감염과 유전으로 선택의 여지도 없이 뱀파이어가 된 아이, 아버지의 불행한 죽음과 어머니와의 도피 등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던 주인공은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갑갑해 하다, 조절되지 않는 피의 욕망에 좌절한다. 그렇게 스스로 한없이 모멸감을 느끼던 주인공은 뜻밖의 사건으로 한 소녀를 구하게 되고,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구원의 감정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그와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적의 손에 어머니마저 죽는다.

이미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한 번 써먹은 감염이야 한국적 상황에 맞추려니 어쩔수 없다 치자. 그러나 이후 등장하는 의로운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은 뻔해도 너무 뻔하지 않은가. 심지어 이국의 병원에서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과거의 소개는 박재범 작가의 전작 <굿닥터>를 보는 듯하다. <굿닥터>에서도 천재 외과 의사 박시온을 설명하기 위해 장황한 어린 시절을 불러오더니, 이번에도 기괴한 뱀파이어의 설정을 위해 부모까지 희생한 과거를 끌어들인다. <굿닥터>에서는 어린 시온이 자폐적 증상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전사가 그럴 듯했지만, <블러드>의 어린 시절은 운명적 상황의 뻔한 조합처럼 느껴진다.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국에도 뱀파이어가 있을 수 있어' '그에 어울리는 비극적 과거 정도야 역시나 눈감고 넘어가야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당부와, 단 한 번 구한 소녀의 목숨으로 피를 가장 두려워해야 할 뱀파이어가 의사라는 직업을 택하는 아이러니는 또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 역시 또 한 번의 딜레마가 되는 것일까.

<블러드>의 기괴한 설정은 앞서 방송됐던 드라마 <아이언 맨>을 떠올리게 한다. 남자 주인공의 등에서 돋는 칼은 뱀파이어의 바이러스같은 막연한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성장 주도의 건설 입국 시절을 이기적으로 산 어른들에 의해 상처 입은 표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치유해야 할 상징이었다.

<블러드>는 과연 어떤 상징과 개연성으로 뱀파이어 의사를 그려낼까. 혹시나 <트와일라잇>처럼 매혹적인 뱀파이어 의사로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라면 안이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우려된다. 과연 자폐 3급의 서번트 증후군 외과 의사로 훈훈한 휴머니즘을 그려냈던 전작 <굿닥터>처럼 반전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그러기엔 첫 회는 너무도 뻔했지만 말이다. 과연 이 뻔한 서사를 넘어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는지는 박재범 작가에게 달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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