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리그'의 부활... 'PC방 폐인'도 돌아올까

[창간기획 - 응답하라 2000 ③]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 되살린 '팬덤'

등록 2015.02.17 13:30수정 2015.02.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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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에서 출발한 '복고 열풍'이 '무한도전 토토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문화를 즐겼던 'X세대'가 이제 소비 중심 세대로 성장한 것이죠. <오마이뉴스>도 창간 15주년을 맞아 2000년으로 돌아갑니다. 21세기에 대한 장밋빛 기대와 '밀레니엄 버그(Y2K)' 같은 불안감이 공존하던 시절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즐겼을까요? 지금부터 우리 마음속 서랍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보겠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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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소닉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최호선 선수와 김성현 선수가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치르고 있다.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최호선 선수가 3대 2로 승리했다. ⓒ 온게임넷


"배틀! 배틀! 배틀!"

세트 스코어 2대 2 접전. 15일 오후 10차 소닉 스타리그(스타크래프트 리그) 우승자를 가릴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을 가득 메운 2천여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보통 1시간 넘는 '장기전'이 백미인 '테테전(테란 대 테란 종족 경기)' 승부가 계속 초반 지상전에서 끝나자, 테란 종족 최강 공중 유닛(병기)인 '배틀 크루저(전투순양함)' 등장을 염원하는 목소리였다.

팬들의 기대와 달리 마지막 경기도 현란한 '벌처(테란 정찰용 오토바이) 컨트롤'을 앞세운 최호선(24) 선수가 기선 제압에 성공하며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했다. 이번 리그 '테테전' 무패 행진으로 '테란 머신(기계)' 명성을 확인했던 김성현(22) 선수도 '시즈 탱크'(테란 공성 전차)를 앞세운 반격에 실패하며 경기 시작 20여 분 만에 'GG(Give up Game: 게임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SK텔레콤 'T1' 소속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다 지난 2013년 초 은퇴했던 최호선 선수는 개인 리그 첫 우승이란 감격을 맛봤고, 같은 해 STX 'SouL' 팀 해체로 프로리그를 떠났던 김성현 선수도 첫 준우승이었다.  

3년 만에 잠실 찾은 스타리그... '팬덤' 힘입어 부활 기지개

이날 게임전문채널 '온게임넷'으로도 생중계된 스타리그 결승전은 스타크래프트 선수들뿐 아니라 팬들과 진행자, 주최자 모두에게 각별했다. 지난 2012년 여름 같은 장소에서 열린 '티빙 스타리그' 결승전을 끝으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아래 '스타1')'를 이용한 '공식 스타리그'가 막을 내린 이래 3년 만에 처음 '대규모 경기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유독 프로토스 종족 '캐리어(우주 모함)'만 등장하면 흥분해 '김캐리'란 애칭으로 불리는 김태형(41) 해설자는 경기 시작 전부터 3년 전 마지막 스타리그 중계를 떠올리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개인방송 해설자 'BJ(방송 자키) 소닉'으로 잘 알려진 '스타1 덕후' 황효진(27) 스베누 대표가 아니었다면 스타리그는 진작 맥이 끊겼다. 지난 2010년부터 소규모 온라인 대회인 '소닉 스타리그'를 계속 개최하다 대회 스폰서까지 자청한 황 대표는 "스타1은 내게 10년 넘게 해온 바둑 같은 게임"이라면서 '스베누 스타리그 시즌2'를 예고하기도 했다. 축하 공연으로 이날 3시간 넘게 이어진 행사를 마무리한 가수도 스베누 공식 광고 모델인 아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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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마니아들 사이에 'BJ 소닉'으로 잘 알려진 황현진 스베뉴 대표(오른쪽)가 15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소닉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승리한 최호선 선수에게 트로피와 우승 상금을 전달하고 있다. ⓒ 온게임넷


이처럼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며 20년 가까이 이어진 스타크래프트의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2000년 게임전문채널 '온게임넷' 개국 당시부터 스타리그 프로그램을 제작해 온 위영광(42) 온게임넷 총괄 프로듀서(CP)는 16일 "스타1이 e스포츠와 온게임넷을 만들었다"며 스타크래프트 게임 자체의 완성도를 강조했다.

"스타1이 대단한 게임이에요. 1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PC방 인기 게임 순위에서 5위권, 10위권 안에 들어요. 기존 유저(이용자)가 계속 붙잡고 있고 유입 인구도 있다는 의미예요. 유저가 경쟁하고 보고 즐기는데 최적화된 게임이에요. 세 종족 간에 균형도 잘 맞고 2차원(2D) 화면에서 작은 벌레들이 움직이는 수준인데도 게이머가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느낄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한국은 '스타크래프트 종주국'... 스타리그-PC방 열기 한몫

미국 게임 개발 업체인 블리자드가 지난 1998년 국내에 출시한 '스타1'은 게이머가 테란, 저그, 프로토스 세 종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인터넷으로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펼칠 수 있는 PC용 온라인 네트워크 게임이다. 스타1은 지난 2009년까지 전 세계 1100만 장 이상 팔렸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700만 장 이상 팔렸다. 여기엔 당시 PC방 열풍과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스타리그)' 인기도 한몫 했다. 

지난 2000년 당시 황형준 온게임넷 국장(현 CJ E&M 본부장)이 만든 투니버스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로 출발한 스타리그는 그해 7월 온게임넷 개국으로 이어졌다. 이후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지난 2012년까지 33차례나 이어지며, '테란의 황제' 임요환, '저그의 황제' 홍진호 등 많은 '스타'를 탄생시켰다. 

수만 관객들 앞에서 열리는 야외 경기도 스타1 인기 확산에 한몫 했다. 지난 2002년 10월 서울 올림픽공원 임요환과 '프로토스 황제' 박정석 선수가 맞붙은 '스카이배 프로리그' 결승전에는 당시 최다 관객인 2만 5천여 명이 몰렸다. 이어 지난 2004년 여름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이른바 '광안리 대첩'에는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많은 관객이 몰렸다. 당시 두 대회 담당 PD였던 위영광 CP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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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닉 스타리그 결승전이 열린 15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 스탠드를 가득 채운 스타크래프트 팬들. ⓒ 김시연


"온게임넷을 개국할 때만 해도 e스포츠나 게임 방송이 얼마나 갈지 확신이 없었어요. 2002년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처음 야외 대회를 열었을 때 처음 소름이 돋았어요. 그 많은 의자를 어떻게 채울까 걱정했는데 꽉 차는 걸 보고 놀랐고 2004년 광안리에 10만 관객이 찾을 때는 정말 감개무량했어요. 정말 사람들이 스타1을 재밌어하고 좋아하는구나, 마이너가 메이저가 되겠구나, 느꼈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고동완(22·대학생)씨도 게임 방송과 프로게이머들을 보며 스타1에 빠졌다.

"게임 방송을 통해 스타1을 처음 접하고 중학생 때까지 또래들과 PC방에서 게임을 즐겼어요. 마침 그때 PC방 열풍과 함께 스타 인기가 오르던 시점이었어요. 고등학교에 가면서 스타1은 끊었지만 스타리그는 꾸준히 시청했어요. 그 당시 'e스포츠'란 말이 생소했는데 프로게이머들 얼굴에 땀이 맺히고 과학적으로 전략을 짜서 이기는 모습을 보고 이것도 스포츠라고 느꼈죠."

승부 조작 사건 '얼룩'... 12년 만에 스타리그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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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소닉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최호선 선수와 김성현 선수가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펼치고 있다. ⓒ 김시연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와 스타리그 인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프로게이머였다. 2010년 5월 스타크래프트 승부 조작 사건 수사 결과 마아무개씨를 비롯한 유명 게이머들과 불법 베팅 사이트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마침 블리자드도 스타1 후속작인 '스타크래프트2'을 내놓았고, 온게임넷도 스타리그 대신 'LoL(리그 오브 레전드)'에 더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관련기사: 패키지 없는 스타크래프트2, 한국서 통할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게임넷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MBC게임'이 지난 2012년 문을 닫으면서 e스포츠도 활력을 잃었다. 스타리그도 '아프리카TV'나 '곰TV' 같은 인터넷 방송으로 밀려나며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2000년 당시부터 게임 전문 기자로 활동해 온 김진욱 <스포츠서울> 기자는 "스타1은 아직 PC방 이용률이 3%가 넘는 괜찮은 게임이지만 블리자드의 수익 모델 측면에선 뒷전으로 밀린 것"이라면서 "게임 타이틀만 있으면 언제든 즐길 수 있어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겠지만 대회 스폰서 구하기가 어려워 스타리그가 부활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김 기자는 "2000년대 e스포츠 수용자들이 지금 30~40대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해 다시 스타리그를 찾는 사람도 많다"면서 "지금 스타리그도 'BJ 소닉' 같이 성공한 팬들의 힘이었듯 스타리그 사업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밝혔다.

"스타리그 부활 어려워도 '팬덤' 살아있는 한 지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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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영광 온게임넷 총괄 프로듀서(CP)는 2000년부터 스타리그 대회를 연출해왔다. ⓒ 온게임넷


사실 이번 소닉 스타리그도 온게임넷에서 생중계만 했을 뿐 '스타리그의 부활'로 보긴 어렵다. 위영광 CP는 "지난 2012년에 스타리그를 그만둔 것도 결국 시청률이 떨어지고 시청자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라면서 "이번 스타리그에 대한 반응이 요즘 잘 나가는 'LoL' 수준에 이를 정도로 뜨거워 많이 놀랐지만 얼마나 지속할지 알 수 없다"며 '스타리그 부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현재 스타1 선수들이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한 프로게이머들로 구성돼, 선수 수급이 불투명하다.

위 CP는 "스타리그 반응이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던 것도 최근 '토토가(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편)'에 나타난 것처럼 예전 이용자들이 지금 삶이 힘드니까 추억에서 '힐링'을 찾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면서 "스타리그 부활은 쉽지 않겠지만 스타1 관련 콘텐츠는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타리그가 부활하더라도 당시 PC방에서 밤새 스타1을 즐기던 'PC방 폐인'들이 돌아오긴 쉽지 않을 듯하다. 10대 시절 열혈 게임 마니아였던 고동완씨는 "한번쯤 스타리그를 본 20~40대가 다시 향수를 느껴 스타리그 인기는 한동안 지속할 것"이라면서도 "예전처럼 게임을 직접 하기는 어렵겠지만 축구를 안 해도 축구 경기는 보는 것처럼 게임을 즐길 것"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 후반 언론고시생 시절 PC방에서 살다시피 했던 위 CP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젠 40대가 돼서 가족도 있고 자식도 있는데, 집사람이 밤새 게임하게 놔두겠어요? 이제 직접 게임을 즐기긴 어렵죠. 'BJ 소닉'에게 연락받고 스타리그를 중계하기로 한 것도 우리가 직접 대회를 열진 못하지만 스타1을 좋아하는 팬들과 선수들이 남아있으니 우리 역할은 다 하자고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기로 한 거예요. 다행히 반응도 좋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네요."
#스타크래프트 #스타리그 #온게임넷 #임요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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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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