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한 파수꾼... 우리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리뷰]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등록 2015.01.21 15:30수정 2015.01.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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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사실적이면서 곳곳에 등장하는 은유와 유머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적나라한 보고가 가득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책을 읽으면서 소설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미국에서 1945년부터 이듬해까지 연재물로 발표되다가 1951년 책으로 출판됐다. 표지를 넘기면 서문을 대신한 "To My Mother(엄마에게)"이라고 쓰인 페이지를 만난다. 이 페이지를 넘기면 이야기가 시작된다.


홀덴과 같은 학생에게 필요한 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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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her In The Rye> 표지 호주의 한 서점에서 파는 가격은 호주달러로 24.95불(한화 약 23000원)이다.꽤 비싼 편인데 공산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8파운드에 팔리고 있으니 우리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가격과 비슷하다. ⓒ PENGUIN BOOKS

주인공 홀덴 콜필드는 17살 소년이다. 홀덴은 '펜시 프렙'이라는 사립학교를 다니는데 다섯 과목 중 영어를 뺀 네 과목에서 낙제 점수를 맞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 둘 작정이다. 아버지는 회사 고문 변호사고, 형은 할리우드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두 살 어린 남동생 앨리는 몇 년 전 백혈병으로 죽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여동생 피비가 있으며, 어머니는 신경쇠약으로 고생하고 있다. 동생의 죽음과 홀덴의 계속되는 학교에서의 부적응이 원인이다. 설상가상인 것은, 홀덴이  네 번째 학교를 그만 두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주인공 홀덴은 비관에 가까울 정도로 매사에 비판적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학교가 싫은 이유가 등장한다. "1888년부터 저희는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명석한 생각을 할 줄 하는 훌륭한 학생으로 만들어 왔습니다"라는 학교 광고 문구에 대해, 홀덴은 자기가 다니는 동안, 전교생 중 그런 아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서 '뛰어나고 명석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많으면 두 명은 되려나' 하고 조롱 섞인 독설을 퍼붓는다. 1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의 소설에서 주인공 홀덴이 던지는 문장마다 욕설이 기본으로 들어 있다.

홀덴의 고귀한 첫사랑은 제인 겔러거인데, 그녀와 데이트하게 되는 기숙사 룸메이트 스트라드 래터에 대한 평도 인색하기만 하다 '자기 몸만 너무 사랑하는' 놈이어서 너무나 세속적이라는 것. 그러니 그런 친구가 정신적인 교감에 대한 이해가 있을 리 없다고 판단한다. 상대의 취미나 습관보다는 육체적 욕망에 충실할 것이기 때문에 제인과의 데이트를 상상하며 괴로워한다. 그런 이유로 기숙사를 떠나기 전 이 친구와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운다.


홀덴에게 'F'를 준 역사 선생님 스펜서는 떠나는 제자에게 말한다. "미래에 대한 염려는 안 하니?"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 이 질문은 사실 청소년에게 가혹하리만큼 자주 거론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없애버리다시피 한 '현재'가 미래의 명문 대학이나 조건 좋은 직장으로 완전히 보상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홀덴이 자퇴한 또 다른 학교 엘크튼 힐스의 학생, 제임스 캐슬은 동급생들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버티다가 창밖으로 몸을 던져 죽게 된다.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은 아이에게 다가가 자신의 코트를 덮어 양호실로 옮겨 간 사람은 홀덴이 자신의 멘토로 삼게 된 교사, 안톨리니다. 학생들에게는 바로 안톨리니와 같은 교사가 필요하다. 고약한 반전은 책에서 확인하시라.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면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고 빈부의 격차는 물론, 협박과 폭력이 일상적일 수 있다. 제임스 캐슬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죽은 것이라기 보다, 동급생들의 협박과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었던 것이다.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으로 대부분의 생활이 가능해야 책도 읽고, 공부도 할 맛이 날 텐데... 학교에서마저 돈과 힘의 논리가 통할 때 대부분의 학생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학교에는 제임스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이 넘쳐날 것이다. 죽지 않더라도 자존감을 훼손 당한 아이들의 미래가 밝을 순 없을 것이다.

홀덴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결국 '선생님'

홀덴의 유일한 희망이자 한줄기 빛과도 같은 인물은 바로 동생, 피비다. 천진한 동생은 이번에도 학교를 때려치우는 오빠를 안타까워 한다. 학교가 형편없었다는 오빠의 말에 피비는 말한다.

"오빠는 좋아하는 학교가 하나도 없었잖아. 학교가 싫었던 핑계는 수 백 가지도 더 됐고. 그러니, 아무리 그랬더라도 학교 하면 떠오르는 좋은 거 하나만 얘기해봐."

그때 홀덴은 뉴욕의 거리에서 방황할 때 만난 두 명의 수녀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짚으로 만든 낡은 바구니를 들고 모금을 하고 있었다.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수업이 없을 땐 모금을 하는 이들의 선한 모습이 시나브로 떠오른 것이다. 떠오른 또 하나의 인물은 앞서 언급한 제임스 캐슬과 교사 안톨리니다.

집으로 가기 전 홀덴은 뉴욕의 호텔에서 머물기로 결심한다. 전화를 걸어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알게 된 형도 만나고, 자신을 좋아한 여자친구를 만나 연극도 본다. 담배를 하루에 세 갑씩 피우고, 매일 위스키를 마신다. 

그는 억울하게 죄수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사회에 헌신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변호사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처럼 골프를 하고, 좋은 차 타고, 술 마시고, 게임하고, 멋지게 꾸며 입고 돌아 다니는 사람이 변호사라고 비아냥거리지만 이미 사회는 그렇게 생겨 먹었기에 홀덴의 저항은 무기력하고 공허하다.

홀덴의 눈에 비친 학교 밖 사회

뉴욕의 호텔에서 5불에 합의보고 매춘을 시도하지만 창녀 써니는 홀덴의 또래가 바라는 온정 넘치는 천사가 아니다. 대화만 나눈 채 헤어지지만, 사기꾼 모리스에게 5불을 더 뜯기게 된다. 제임스 캐슬이 동급생 모리배들에게 그랬듯이 홀덴은 5불을 더 달라는 모리스 일당에게 강력히 저항하지만 역부족이다. 일당들에게 10불을 강탈당한 홀덴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날 식당에서 만난 두 수녀에게 10불을 기부한다.

좌충우돌하며 부조리를 겪는 홀덴에게 꺼지지 않는 희망이 있다면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준 첫사랑 제인이다. 그녀를 만날 수 없어 대신 자신을 좋아하는 샐리를 만나 데이트하고, 데이트 중 우연히 샐리의 전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남자를 만나고, 또 홀덴은 자신의 허황된 얘기를 비판적으로만 받아들이는 샐리와 싸우고 헤어진다. 기승전결이 없는 부조리의 연속이다.

홀덴이 택시 기사와 대화하던 중 반복적으로 던진 질문이 있다.

"겨울에 래군 호수가 얼면, 호수에서 헤엄치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 지 혹시 아세요? 누군가 와서 오리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아니면 지들이 알아서  남쪽으로든 어디로든 날아가는지 말이에요."

이 질문에서 호수는 학교다. 계속되는 질문에서 홀덴은 오리에 자신을 투사하게 된 것이다. 결국, 홀덴은네 번의 퇴학 아니면, 자퇴 그리고 술과 담배, 그 밖에 어른들도 잘 견디기 힘든 여러 경험에 녹초가 된 채 집으로 무사 귀환하게 된다.

그리고 홀덴 콜필드는 "어떤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일체 말하지 말라, 말하는 순간부터, 당신은 그들 모두를 그리워 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라는 인상적인 마지막 문장을 남긴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던 스트래드 래터와 5불을 더 뜯어간 사기꾼 모리스에 대한 이야기도 했으니 그들도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호밀밭에서 참새 떼를 쫓는 이야기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나의 예상을 깨고, 읽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학교와 사회에 대한 독설과 비판적 시선으로 가득했다. 60년 전의 소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용된 문체와 내용이 오늘날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만큼 적나라하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청소년 권장 도서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감 예방주사가 독감 바이러스를 미리 우리 몸에 침투시켜 면역력을 높이듯이, 청소년들에게 간접 경험이 필요하다는 어른들의 공통된 합의가 작용했기 때문일 게다.
덧붙이는 글 <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영국 펭귄북스, 2010년 판, 24.95불

호밀밭의 파수꾼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1998


#홀덴 #제인 #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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