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는다'고 폭행... 채식주의자도 울었습니다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 23] 강자의 약자 폭력, 그리고 다수의 소수 폭력

등록 2015.01.16 16:21수정 2015.01.1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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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워킹맘’ 선차장.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 tvN


지난 8일,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네 살배기 아이를 폭행한 어린이집 교사가 경찰에 입건됐다. 이날 어린이집 CCTV에는 김치를 억지로 먹은 아이가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자, 아이가 고꾸라질 정도로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치는 교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관련 기사 : 인천 어린이집 '상습폭행' 수사... 경찰 "영장 불가피").

"거부하지마"... 강자의 폭력, 사회를 멍들게 한다


저항할 힘이 없는 어린 아이를 말 그대로 '나가 떨어질' 정도로 폭행하는 것은 부모 경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분노하게 하는 행동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아이를 그 정도로 때리는 건 잘못됐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아 가르치려고 했을 뿐"이라면서 "교사가 아이를 때린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한 관계자의 해명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꼭 때려야만 폭력인 걸까?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 당한 아이와 당시 무릎을 꿇고 숨을 죽인 채 친구가 얻어맞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다른 아이들은 이런 곳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 '어른이 주는 음식은 무조건 군말 없이 먹으라'는 가르침일까? '어른에게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일까? 무력한 아이들이 교육을 빙자한 폭력에 노출됐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런 현실에서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나는 이 사건이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일부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 국가라는 '강자'의 이데올로기에 따르지 않는 '약자'에게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고 단죄하는 우리 사회가 음식을 거부한 아이를 가르침을 빙자해 무자비하게 때리는 어른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자의 폭력'은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에서도 발견된다. 문제의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음식을 강요하는 것이 '가르침'으로 불렸듯이, 직장 회식에서는 술을 강요하는 것이 '단합'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나는 아무리 좋다는 술도 쓰디쓴 약을 먹는 것처럼 느껴지는데다가,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속이 불편해져서 술은 종류를 막론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직장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내게 따라준 술을 '원샷'하라는 요청을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상사인 경우 '자신을 무시했다'고, 동기인 경우 '회식 분위기를 망친다'고 싫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술을 못 마시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고충일 것이다. 한국의 직장과 같이 위계질서와 집단주의가 강한 공간에서 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강자의 폭력은 물론, '다수의 폭력'이라는 이중고를 감내하는 셈이다. 이런 회식이 즐겁지 않아 불참할 경우, "얼굴 좀 자주 보자"는 은근한 압력이나 "함께 저녁 한 끼 먹는 게 그렇게도 어렵냐"는 등의 노골적인 비난이 들려온다.


강요로 점철된 우리 사회

'고기와 술'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회식 문화에는 채식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아쉽다. 술을 강요하는 것은 오늘날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지만, 우리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들을 상대로 직·간접적으로 벌어지는 육식 강요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이유로 많은 채식주의자들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행여 충돌을 겪지 않을까 고민한다.

고기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그저 입맛에 맞지 않아서, 또는 종교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채식하는 이유가 '가치관'에 기인하는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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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않는다'고 해서 차별 받아선 안 된다. ⓒ sxc


농장 동물에게 과도한 고통을 주는 현대의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의미로 육식을 관둔 사람 중에는 남들에게 이런 신념을 밝히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밝히는 순간, "식물은 불쌍하지 않냐?"는 식의 비아냥이나 "고기를 먹지 않으면 영양실조에 걸린다"는 충고에 종종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또는 "육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둘러대는 사람이 많다. 

"채식을 강요받는 것이 싫다"며 채식주의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맞는 말이다.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채식을 강요한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동물의 고통과 희생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채식주의는 본질적으로 대중의 동참을 호소할 수밖에 없지만, 채식의 전파가 '설득'이 아닌 '강요'에 기반을 둔다면 반발만 일으킬 뿐이다.

소수와 다수 누구나 즐거운 식사, 가능하다

하지만 '강요로 인한 고충'에 관해 말하자면, 채식 강요가 야기하는 고충보다는 육식 강요가 야기하는 고충이 훨씬 크지 않을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는 절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잡식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채식은 기껏해야 소수 문화로 여겨질 뿐이다. 강요받는 것이 육식이든 채식이든, 그 고통은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경중을 따지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주류에 대한 차별이 비주류에 대한 차별보다 심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채식주의자와 비채식주의자가 함께 식사하기 위해 육식과 채식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극단적인 경우라 할지라도, 육식하는 사람은 한 끼를 채식으로 하기에 별로 어려움이 없다. 비채식주의자가 채식 전문 식당에서 식사하기는 채식주의자가 설렁탕이나 삼계탕만 판매하는 식당에서 식사하기만큼 불편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굳이 채식전문 식당에 가지 않더라도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한다면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식을 주는 대로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를 때리는 행위가 비난받아 마땅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유사한 양상으로 벌어지는 또 다른 폭력들 역시 사라져야 한다. '다름'이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는 성숙한 사회를 꿈꾼다.
#아동학대 #다수의 폭력 #강요 #채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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