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뒤엎은 공연, 울산 시립예술단의 <라 보엠>

등록 2014.12.15 20:49수정 2014.12.15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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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열리는 자체 공연에 큰 기대감을 가지지 않고 보는 편이다. 지방의 문화예술 환경은 관련 인프라가 부족함은 물론 공연 횟수나 수준에서도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무대를 만드는 예술 감독이나 출연진의 역량 때문이라기보다는, 운영 자체가 쉽지 않은 지방재정과 기업의 후원 등 모든 환경이 수도권보다 열악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2일과 13일 양일간에 걸쳐 울산 문화예술회관에서 관람했던 푸치니의 오케스트라 <라 보엠>은 이전까지 갖고 있던 수도권 위주의 문화공연에 대한 편견을 일시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예상을 뒤엎는 수준 높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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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립예술단의 <라 보엠> 공연 지난 12월 12일과 13일 양일간에 걸쳐, 울산 문화예술회관에서 푸치니의 3대 걸작 중 하나인 <라 보엠>이 공연되었다. 울산에서 자체적으로 이러한 대작을 공연하기에는 처음이었으나, 정갑균 오페라 연출가에 의해 무대에 올랐다. ⓒ photo@newsis.com

울산시향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현악의 선율과 투박하면서도 시원하게 내뻗는 관악기의 울림은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잠재웠다.

게다가 순수한 발성만으로 무대와 관객석을 사로잡는 배우들의 성량은 파트별 음색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성격을 작가의 의지대로 나타내는 듯 했다.

<라 보엠>은 앙리 뮈르제르의 소설을 바탕으로 재탄생된 오페라이다. '보헤미안의 삶'이라는 소설 제목답게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낙천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보헤미안 기질을 가진 4명의 친구들(음악가와 철학가, 미술가, 시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가난한 예술가로 파리 뒷골목에서 하루하루를 전전하며 살면서도 낭만적인 우정과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이 4명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토스카>, <나비 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불린다.


사실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오페라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단순하고 진부한 형식을 띄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의 귓속말과 당당하게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라든지, 시장바닥에서 군중의 합창 그리고 여주인공 '미미'의 죽음을 앞둔 장면에서 불리는 애절한 노래는, 단선적이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라는 대규모 복합장르에서만이 볼 수 있는 가득한 재미거리가 있다.

관객의 몰입도를 높여 주는 3면 리어 스크린 무대

게다가 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치한 3면 리어 스크린 무대는 눈 내리는 광경이나 파리 골목의 모습과 파리의 번화가에 있는 술집 등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시도는 막과 막 사이의 무대 이동시간을 단축할 뿐더러 화려하고 실사에 가까운 영상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 무대는 우리나라의 오페라 사상 울산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이라 하니 앞으로도 울산에서의 예술문화 공연은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 막과 막 사이의 짧은 시간마저도 주연배우들의 앙증맞은 콩트로 채워줘 관객들이 그 짧은 시간에도 무대로부터 눈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배려도 엿보였다.

수도권과의 거리만큼 문화공연이 부족한 울산에서 울산 시립예술단은 <라 보엠>이라는 대형 오페라를 성공리에 마쳤다. 앞으로 오페라나 교향악같은 클래식 공연 이외에도 국적과 장르를 초월한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지며, 이것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인들이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인정받는 울산시가 되길 바란다.
#라 보엠 #울산 시립예술회관 #정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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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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