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대출 포기하고 집 짓기 시작... "설렌다"

[공모-나는 세입자다] 결혼 앞둔 예비신부... 집 때문에 내적 갈등 깊어졌다

등록 2014.09.28 11:22수정 2014.09.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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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입자다 시즌1'에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내가 사는 곳이 내 집이니 집 마련에 목매지 말고, 대출금에 허덕이지 않고, 남과 비교하며 주눅 들지 않기를…."

그렇게 각오했던 게 2년 전이다. (관련 기사 : '내집 마련' 한 달 앞두고... 갑자기 세상 떠난 아버지) 2년이 흐른 지금, 내 생각은 여전할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니'었다. 새로 지은 집으로 입주하려다 발목이 잡힌 이야기를 솔직히 고백하고자 한다. '나는 세입자다 시즌2'를 계기로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자 한다.

"우리가 살 집이니깐 스스로 해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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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사치부리지 않았다고 자부하는데,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니 내 삶이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 http://pixabay.com


나는 내년이면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다. 결혼을 앞두고 최대 고민은 집이다. 주변에서 말한다. 결혼할 남자 쪽 집안이 아들 하나이니, 어머니가 조금 도와주시지 않겠냐고. 사실 내심 기대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우리 집에서도 내심 바라는 눈치였다. 우리 고모(고모가 나에겐 어머니나 다름없다)가 말했다.

"고모는 아들 장가가면 이 집 팔고, 작은 집 얻어 나갈 생각이야. 혼자 사는 데 큰집이 왜 필요하겠어. 너희 시어머니는 그렇게 안 하신다니?"


딸 가진 어머니 마음이라 그럴까. 그저 잘 키운 딸이 조금 더 윤택하게 살기 바라는 작은 욕심(?)이기에 흘러가는 말로 들을 수 없었다. 남자 친구에게 우회적으로 말했다. 돌아온 답변은 나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어머니가 그동안 키워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어떻게 우리 집 얻자고 어머니가 살던 곳을 작은 곳으로 이사시킬 수 있겠어. 만약 어머니가 그렇게 하신다고 해도 난 말릴 생각이야. 우리가 살 집이니깐 우리가 해결해야지."

백 번 맞는 말이다. '나는 세입자다 시즌1'에서 했던 말이 퇴색한 순간이었다. 매번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었지만 쉽지 않았다. 말로는 깨어있는 생각을 늘어놔도 막상 현실에 부딪히니, 수준 낮은(?) 말과 행동들이 나의 양심을 괴롭혔다.

그래 맞다. 우리가 살 집이니 우리가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을 즈음, 한 편의 CF를 봤다. 공익광고의 카피는 '전세설움 끝, 내 집 행복 시작'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전세를 살면서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느니 한 곳에 정착해 착실히 돈을 벌어 집값을 갚자고. 그렇게 10년만 고생하면 내 집이 생기니 보람이 있지 않겠냐고. 갑자기 새로운 꿈이 부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하니 내 집 마련의 기회는 충분했다. 디딤돌 대출부터 보금자리론, 각종 은행에서 시행하는 주택담보대출 등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금리(3%대)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아파트 값의 70%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금액은 아파트 값의 30%였다.

내 집 마련 고민 끝... 고행이 시작됐다

예를 들어, 집값이 1억 원이라면 3000만 원이 있으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취·등록세도 감면돼 세금도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게 은행 직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집값의 30%였다. 당장 결혼할 자금도 빠듯한 실정에 집값의 30%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줄이고 줄여서 끌어 모으니 집값의 10% 정도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미 양가 부모의 도움 없이 우리 둘이 일구기로 작정했으니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알아본 게 신용대출이었다. 6~7%대 이자로 나머지 필요한 돈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집값의 10%, 90%는 대출이었다. 90%에 대한 최종 이자는 10%. 그리고 갚아나가야 할 기간은 총 10년. 우리는 대출금 상환 계획을 비롯해 한 달 가계계획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디테일하게 작성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담보대출 원금과 이자
②신용대출 원금과 이자
③각자 공과금(보험비, 핸드폰비, 모임비 등)
④생활비(의식주 해결비 등)
⑤각자 부모 효도비(생신, 어버이날, 환갑잔치, 여름휴가 등)
⑥세금 예비비(자동차보험비, 자동차세금, 재산세 등)
⑦아파트 관리비 및 각종 세금
⑧각자 용돈(기름값 포함)


이렇게 산정하고 나니 수입 대비 지출에서 7만 원이 부족했다. 결국, 각자 용돈을 더 줄이기로 했다. 그런데 위의 조건은 둘 다 일을 했을 경우다. 둘 중에 하나라도 일을 그만둔다거나 내가 출산을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장 어디를 어떻게 줄여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삶에 변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 변수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에도 내 집 아닌가. 못을 하나 박아도 주인 눈치 보지 않고 박을 수 있고, 계약기간 끝나는 날짜에 주인과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내 집에 돌아왔을 때 그 희열을 생각하니 조금 나아졌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니 내 집 마련의 길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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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커플사진 연애 때 해맑던 모습들이 결혼 준비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다시 웃을 방도를 찾기로 했다. ⓒ 박영미


하지만, 그 이후부터 우리에게서 여유가 사라졌다. 점심값 6000원도 비싸다고 생각해 1500원짜리 김밥 한 줄로 때우고, 매달 6만 원씩 나오는 휴대전화 요금을 줄이기 위해 최저요금제로 바꿨다. 그만큼 지인들과의 안부 인사에 소홀해졌다.

퇴근 후, 스트레스 풀 겸 즐기던 맥주 한 잔도 우리에겐 사치가 됐다. 지금껏 사치부리지 않았다고 자부하는데,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니 내 삶이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내적 갈등은 깊어졌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꼭 결혼을 해야 하는지, 꼭 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까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남자 친구와의 외적 갈등도 표출됐다. 전화 통화도 안 좋게 끊나는 사례가 잦아지고, 위로하려 만난 자리에서도 결국 싸움으로 번져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서로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건 아닐까.

돈 벌어 집짓기는 어떨까

가계 부채 1000조 원이 넘은 시대. 경제전문가들은 '성장보다 빚을 더 늘리는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재정과 정부, 국민이 모두 파탄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쩌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빚) 굴리기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까지 1억 원이 넘는 돈을 빚지려 했다. 폭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가계 파탄이 날지도 모르는 그 소용돌이 속으로 말이다.

지금은 있는 빚도 빨리 처분해야 할 때다. 잠시 잠깐 내 집 마련에 현혹돼 내게 어울리지 않은 옷을 걸칠 뻔 했다. 안분지족(편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이라는 사자성어가 마음 속에 가만히 내려앉을 즈음, 마음속 은사님이 따뜻한 조언을 해주셨다.

"빚지고 산다고 했을 때 어떠셨나요. 잘 갚을 수 있을지 불안하고 막막하셨죠? 이러면 어떨까요. 10년 동안 낼 이자(3천만 원 이상)로 작은 땅을 사보는 건. 그 땅에서 채소와 과실나무를 키워보면 자연이 주는 선물에 큰 고마움을 느낄 거예요. 그러다가 돈을 좀 더 모아 그 땅에 집을 짓는 건 어떨까요.

기초공사부터 시작해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는 집을 보면 얼마나 설렐까요. 그리고 집을 짓기 위해 돈을 모을 때도 얼마나 행복한 생각을 할까요. 거실 천장은 하늘이 보이도록 설치할 수도 있고, 작은 다락방도 마련해 나만의 서재도 꿈꿀 수도 있고요. 이건 집 사서 '빚 갖는' 것보다 훨씬 희망적이고 기쁘고 설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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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그려준 나의 집 어렸을 때 집은 즐겁고 편안하지만, 어른이 돼 본 집은 빚과의 전쟁이다. 다시 즐거운 나의 집을 그려보고자 한다. ⓒ 박영미


은사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미소가 번졌다. 가슴 속이 확 뚫리면서 빚이라는 족쇄에서 해방된 듯한 기분이었다. 단박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빚 져서 집 사지 말고, 돈 벌어 집 짓기로. 벌써부터 내 집을 어떻게 그릴지 설레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스케치북에 집을 그리듯, 초록색 정원에 2층 집,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집 안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평소 전혀 읽지 않는 건축 관련 분야였다. 관심이 생기니, 책을 읽는 집중도도 높아졌다. 집짓기 강좌도 눈여겨보고 있다. 집 짓기에 대한 꿈과 각오가 서다 보니 돈도 더 착실하게 모였다. 빚지고 내 집 마련하는 기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하고 설렌다.

3년 뒤에 작은 땅은 사고, 5년 뒤에 집을 지어, 2년 뒤에 입주하려 한다. 이건 '나는 세입자다 시즌2'를 통해 나 스스로에게 약속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과 약속 아닌 약속을 하는 것이다. 집 짓는 그날까지 <오마이뉴스>와 소통하며, 훗날에 빚지고 집 사지 않을 걸 훈장처럼 자랑하고도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세입자로 살기로 했다. 좋은 집 주인을 만나길 소망하고, 좋은 이웃을 만나길 고대한다. 그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세입자가 그리고 좋은 이웃이 될 것이다. 앞으로 찾아올 즐거운 나의 집들, 생각만 해도 설렌다.

'빚의 그늘'이 없어야 하는 곳, 집은 그런 곳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공모-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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