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때문에 공고 간다는 아들... 할 말을 잃다

죽기 싫어 산업체 병역특례 가겠다니... 군대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다

등록 2014.08.06 14:23수정 2014.08.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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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엄마, 저 공고 갈래요."


작은아들이 지난 5일 저녁 심각하게 말했다. 현재 중3이다 보니 2학기에는 '어떤 고등학교에 갈지' 결정하는 문제로 대화를 나누던 터였다. 작은아들은 학교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이라 특목고는 열외고, 고민해 봐야 집 근처 고등학교 중에 하나를 선택할 듯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공고'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요즘 학원 애들도 '공고 가야겠다'는 말을 많이 해요. 들어보니까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요."

'뜨악'하며 쳐다보는 내게 작은아들은 비장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이 공고에 진학하겠다는 이유

작은 아들은 "군대에 가서 억울하게 죽고 싶지 않다"라면서 "차라리 공고에 진학해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겠다"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애들이 뭐라 하는데?"
"요즘 뉴스 안 보세요? 윤 일병 사건도 그렇고 지난번 사건(육군 22사단 GOP 총기 사건)도 그렇고요…. 아빠 때도 그런 일 있었다면서요. 군대 가서 억울하게 죽고 싶지 않아요. 저 그냥 공고 나와서 산업체로 갈래요."


요는 군대에 현역으로 가기 싫어 공고에서 기술을 배우고 난 뒤 방위산업체에서 병역특례를 받아 군 복무를 대신하겠다는 것이었다.

"너의 적성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이유로 공고에 가겠다고 하는 거니?"
"'단지 그 이유'라니요. 제겐 중요한 문제라고요. 친구들이 군대 가서 맞으면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신고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얼마나 무서워하는데요."

아직 어려서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벌써 군대 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엄마도 그러셨잖아요. 제가 군대 가면 '고문관' 될까 봐 겁난다고. 고문관 되면 엄청 맞는대요."

작은아들이 운동을 하기 싫어할 때마다 나는 반 협박조로 "너 고문관 될래?"라고 말하곤 했다. 이 말이 최근 발생한 군 관련 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단다.

"그건(고문관) 네가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한 말었지."
"어쨌든 전 공고 나와서 산업체로 갈래요."

작은아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고 말했다.

"군대, 능력 되면 안 가는 게 좋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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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위원들과 간담회 갖는 28사단 장병들 국회 국방위원회 황진하 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윤아무개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 현장조사를 위해 지난 5일 경기도 연천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 내무반을 방문, 현장조사 후 장병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얼마나 힘든데, 바로 군대 가는 게 좋겠어요? 능력 되면 안 가면 좋죠."

자정 넘어 돌아온 고3 수험생 큰아들에게 작은아들의 말을 전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내가 아이들을 잘못 키웠나 싶기도 하다.

내가 아이들 나이 때에는 '군대'라고 하면 가슴 저 아래서부터 뭔가 올라오는, 벅찬 느낌 같은 게 있었다. 당시 우리에겐 대한민국이 소중했고, 지금 누리고 사는 자유에 빚진 것 같아 여군이 되려고도 했다(안타깝게 3차에서 떨어졌다). 내게는 나라와 애국에 대한 당당한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그 신념이 변하고 있다. 그래도 아들들의 말에 아무런 말도 못하는 엄마이고 싶지는 않았다.

"찰싹!"

나는 작은아들 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녀석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이 녀석이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겁부터 집어 먹고….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군대라도 가서 나라에 이바지할 생각을 해야지…. 뭐라? 군대 가기 싫어서 공고에 가?"

자다가 갑자기 웬 날벼락이냐며 당황해 일어난 작은아들을 뒤로하고 다시 큰아들 방에 갔다.

"군대 안 가는 게 능력이라고 누가 그래? 당연히 가야할 곳 안 가는 게 부끄러운 거지. 어째서 능력이야?"

두 아들은 갑작스러운 나의 '버럭'에 무슨 억지냐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윤 일병,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런데 이렇게 '버럭'을 해놓고 뒤돌아선 나도 내가 믿고 있는 게 진실인지, 아들들에게 '군대에 가라'고 말하는 게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들들이 다시 근거를 들어 '당연히 가는 게 억울한 것'이라고 한다면 나 또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군대 내에서 발생한 사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아들만 둘인 내 마음은 철렁 내려앉는다. 나라를 지키러 간 군대에서 본래 임무가 아닌 일로 안타깝게 생명이 사라진 것 아닌가.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건을 보면서, 윤 일병이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지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고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채 싸늘하게 돌아온 아들의 주검 앞에 윤 일병 부모의 원통함은 말해 무엇할까.

생각만으로도 울컥하는 맘을 움켜잡는다. 나라에 대해, 애국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신념이 옳길 바란다. 또 아들들에게 한 말들이 진실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안타깝게 생을 달리한 윤 일병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군대 #윤이병 #산업체병역특례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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