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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위해서라면 죽을 때까지 화장실 청소 해도 좋아"

[인터뷰] 연극 '백마강 달밤에' 할멈 역 성지루 "연기 시작할 때 마음, 지금도 여전하다"

14.07.03 09:23최종업데이트14.07.0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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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백마강 달밤에>에서 할멈을 연기하는 배우 성지루. ⓒ 박정환


성지루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배우다. 십 수 년 전에 했던 공연의 대사를 마치 어제 공연한 것처럼 줄줄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매 공연을 하고 나서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공연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를 수 있는 경지였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후배들에게 폐가 되는 걸 걱정할 정도로 겸손함을 잊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는 SBS 드라마 <너희는 포위됐다>를 찍으면서 연극 <백마강 달밤에>를 하는 게 공연에 폐가 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무대에 설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이번 공연이 30주년을 맞은 극단 목화의 '잔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기하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오태석 연출가 슬하의 자식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연기할 수 있는 무대라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네가 연습한 것만큼만 보여주면 된다"는 오태석 연출가의 말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는 그는 <너희는 포위됐다> 촬영장과 무대를 오가며 쉴 새 없이 땀흘리고 있었다.

"보름 연습하고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큰 일 난다"

- 연극 무대에 마지막으로 선 게 언제인가.
"극단 목화 20주년 기념작으로 10년 전에 무대에 올랐다. 지금 (박)희순이 연기하는 박수무당 영덕을 연기했다. <백마강 달밤에>를 무대에 올릴 때마다 오태석 연출가님이 강조하고 싶은 방점이 다르다. 예전에는 다른 배역으로 벌레 옷을 입고 나와서 무술을 선보인 적도 있다.

간만에 무대에서 서니 많이 떨린다. 공연을 하자는 이야기를 몇 년 전부터 들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이 무대다. 짬날 때마다 연습하고 올라갈 곳이 아니다. 관객과 만나는 데 있어 죄송한 일이다. 연기적인 잔재주만 갖고 무대에 올라갔다가는 큰 일 난다.

공연 기간이 언제냐고 묻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항상 연습 기간을 먼저 묻는다. 만일 연습 기간이 한 달이라고 하면 수락하지 않는다. 연습 기간이 짧아서다. '무슨 소리입니까. 보름 연습하고도 섭니다' 하는 반응이 나오면 '보름 연습하고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를 찾으십시오' 하고 거절한다. 관객과 그렇게 무대에서 만나면 안 된다.

<백마강 달밤에>를 초연부터 해왔다. 십 년 전이지만 이 작품이 마지막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꿰고 있다. 어느 장면에서 어떤 연기적인 에너지를 뿜어야 하는 걸 안다. 극단 목화 배우 중 <춘풍의 처>를 연습하라고 하면 몇몇 배우는 일주일 만에 완벽하게 소화할 거다. 대사를 모두 꿰고 있으니까."

▲ 성지루 "<너희들은 포위됐다> 촬영이 들어가기 전날에는 세트에서 밤을 지샌다. 힘들어 죽겠다.(웃음) 처음에는 살이 많이 빠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밤에 주전부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마이크 없이 대사를 전달하려면 살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가능하다." ⓒ 박정환


- 이번에 할멈 역은 여장을 해야 한다. 다른 작품에서 여장을 한 적이 있다면.
"1990년도에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졌는가>에서 인당수에 팔려가는 여자 중 하나를 연기한 적이 있다.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인당수에 팔려가는 여자를 구한다는 이야기다. 주인공과 심청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배 위에서 인질극을 벌이는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한 명씩 배 위의 여자들을 물에 빠뜨리는데 물에 빠지기 전에 여자들이 자기만의 사연을 한 명씩 털어놓는다. 여자들이 한 명씩 물에 빠지고서야 헬기로 생중계가 되고 매스컴의 집중을 받는다. 제가 연기한 왕길자는 제가 물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가 우물에 빠져 돌아가실 것을 걱정하다가 결국에는 물에 빠져 죽고 만다."

- <너희들은 포위됐다> 촬영하면서 연극도 병행하고 있다.
"촬영이 들어가기 전날에는 세트에서 밤을 지샌다. 힘들어 죽겠다.(웃음) 처음에는 살이 많이 빠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밤에 주전부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마이크 없이 대사를 전달하려면 살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가능하다."

- 할멈의 대사는 웃음을 유발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관객을 웃게 만든다.
"상황에 맞춰 연기하는 것이지 일부러 웃음을 의도하고 연기한 건 아니다. '팍 삭았네, 칠레산이야? 아니, 에꽈도르 산이야~' 이런 대사는 할 때마다 빵빵 터진다. 관객을 웃게 만드는 대사만이 갖는 미학이 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예의 갖추기, 극단 목화에서 배웠다"

▲ 성지루 "모든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건 극단 목화 안에서 시작되었다. 오산에 냉장고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 그 공장 노조에서 초청받아 공연하러 내려간 적이 있다. '왜 우리가 그 먼 데까지 내려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당시 (박)희순이와 제가 막내라 제일 열심히 움직일 때였다. 생산 라인에서 땀 흘리는 분들이 연극이라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분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했다." ⓒ 박정환


- "후배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들을 때 겸손함이 느껴진다.
"후배들이 참으로 열심히 땀 흘린다. 어제도 무대 세트 가운데 자그마한 걸 후배들이 만들고 있길래 같이 만들었다. 후배들 옆에 가면 불편해할까봐 항상 유쾌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후배들이 제게 와서 농담을 걸어줄 정도로 편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 대중에게 폭넓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었다. 극단 목화에 있을 당시 대중에게 이만큼 사랑받는 배우가 될 걸 알았나.
"처음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향해 달려가겠다는 꿈을 키운 적은 없다. 하다 보니 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거다.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 계속해서 연기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화장실 청소를 해도 좋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다. 한데 그 생각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찍을 때 감사한 게 있다. 촬영장에 들어서면 모든 이들이 반겨준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촬영장도 마찬가지다. 감독님이나 촬영감독, 배우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보조 출연하는 분에게도 제가 먼저 반갑게 인사한 결과다. 저랑 함께 작업하는 분들 모두에게 '잘 부탁합니다' 하고 먼저 인사하는 편이다. 어떤 작품을 만나든 즐겁게 촬영하고 싶다.

모든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건 극단 목화 안에서 시작되었다. 오산에 냉장고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 그 공장 노조에서 초청받아 공연하러 내려간 적이 있다. '왜 우리가 그 먼 데까지 내려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당시 (박)희순이와 제가 막내라 제일 열심히 움직일 때였다.

생산 라인에서 땀 흘리는 분들이 연극이라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분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 후 어쩌다 제가 실수할 때에는 커튼콜을 하지 않고 빨리 나오고 싶다. 초대권이라도 돌리고 다시 오시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 들어서다."

성지루 너희들은 포위됐다 백마강 달밤에 목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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