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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생이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한 이유

[리뷰] 영화 <가타카>

14.06.11 10:39최종업데이트14.06.1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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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 ⓒ 콜럼비아픽쳐스


앤드류 니콜 감독의 영화 <가타카>는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종종 등장할 정도로 현대 윤리적 문제점을 다룬 작품이자, 근접 미래 사회를 잘 담아낸 미장센으로 호평 받았던 영화다.

이 시대의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 <가타카>가 무슨 근미래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이냐고 따질 수 있겠다. 1997년생인 이 영화가 그린 시점이 몇 년도인지는 모르지만, 2014년의 우리는 <가타카>가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의 화질보다 훨씬 발전해있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 시대에서 너무나 흔히 사용하는 터치의 개념이나 3D영상 같은 건 <가타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가타카>가 "우아한 SF(이동진 평론가)"라는 이름을 달 수 있는 것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미래 사회의 정서를 담아낸 차가움에 있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미래사회

<가타카>보다 5년 정도 늦게 만들어진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근미래 디스토피아 사회를 표현한 작품이지만 이 둘은 다르다. 물론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사람의 눈에 집중을 하긴 하지만 <가타카>의 미래사회는 그것보다 더욱 직접적인, 혈액이 중심이 되는 사회다. 발전된 유전학으로 태어날 때부터 아이의 수명을 알 수 있으며 발병 가능한 질병까지 수치화되어 산출된다. 이제는 회사에서도 적성검사 대신 유전자검사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에단 호크가 분한 빈센트 프리먼(이하 빈센트)은 우생학에 의해 인공 잉태된 아이가 아닌 자연 잉태자로 태어난다. 그는 시스템에 따르면 서른 살에 단명할 운명이다. 그의 동생은 인공 잉태자이며 모든 결점의 변수를 제거한 우성인자다.

빈센트는 항상 동생 안톤과의 수영대결에서 진다.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것을 우월한 유전자와 그렇지 않은 유전자의 당연한 대결결과라고 생각한다. 그가 병약한 아이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탄생에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며 축복하던 부모의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느낀다. 그들은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어 하는 빈센트에게 "네가 우주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청소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 ⓒ 콜럼비아픽쳐스


어느 날 빈센트의 일생을 바꿔놓을 계기가 등장한다. 매번 지던 동생과의 수영경기에서 빈센트가 이긴 것. 나중에 빈센트는 동생에게 "난 너와 달리 돌아올 힘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이길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성공의 경험은 사람을 바꿔 놓는다. 빈센트는 그후 홀연히 집을 떠난다. 그는 청소부 신분으로 전국을 전전한다. '노력하면 언젠가 될 것'이라고 믿던 그는 철저하게 유전자라는 시스템에 복종되는 사회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느끼게 되고, 이때 <가타카>의 투톱 중 에단 호크를 제외한 나머지 한쪽을 맡은 주드 로가 등장한다.

그는 완벽한 우성인자로 태어난 전직 수영 선수지만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는 상태가 되었고, 유전 증서를 빈센트에게 판다.

이제 빈센트는 자신이 아닌 제롬 모로우(주드 로)가 되어 우주 항공 회사 가타카에서 일하게 된다. 이후 빈센트는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영화가 던지는 것은 단순한 스릴러적 쾌감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억압, 사회가 내 미래를 통제해 버린다고 생각할 때 오는 공포는 정말이지 섬뜩하다.

나는 자퇴생이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학교생활이 내가 보내는 시간에 비해 많은 것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한국에서 검정고시생으로 낙인찍힌 내가 겪는 딜레마와 영화 <가타카>속 이야기 사이에 간극은 그리 심하지 않게 느껴진다.

요즘은 검정고시를 치르는 학생들이 많은 터라 선입견이 많이 사라지긴 했다고 하지만, 가까운 주변에서 보내오는 시선은 아직도 떨떠름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내가 자퇴생이라는 것에 나름의 신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학교 얘기를 하고 내가 자퇴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의 안부라도 물은 것 마냥 미안해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종종 있다.

사실 요즘은 자퇴생에게도 많은 기회가 열려있다. 그리고 나의 얘기를 <가타카>가 주는 메시지와 연결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을 지도 모른다. 허나 과거(자퇴)는 보면서 미래(성장 가능성)를 보지 않는 어른들이 사회에 알게 모르게 여전히 계신다는 점에서, 이미 정해진 유전자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가타카>속의 사회와 유사점이 없진 않은 것 같다.

가타카 앤드류 니콜 에단 호크 주드 로 GATT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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