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떠나면, 끝? 박근혜의 꼼수는 이것

[게릴라 칼럼] '공영방송 정상화', 이제 시작이다

등록 2014.06.09 18:25수정 2014.06.1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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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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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사회장 앞에서 피켓시위 벌이는 기자협회 회원 청와대의 외압 논란을 빚은 길환영 KBS 사장에 대한 KBS 이사회가 열린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KBS 기자협회 회원들이 이사회에 참석하는 이사들을 기다리며 길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KBS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국민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하는데 기여해야 하겠습니다."

1년 7개월 전, 제18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 뜨겁게 달아오를 무렵이던 2012년 11월 23일. KBS 본관 공개홀에서는 제20대 길환영 KBS 사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이날 KBS 양대 노동조합은 '관제사장 취임반대'를 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당시 이명박 정권의 비호 아래 '국민의 방송' 사장 취임식은 기습적으로 치러졌다. 

취임 당시 길 사장은 KBS가 '국가기간방송'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취임한 후 불과 1년 6개월 만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정반대였다. 이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국민보다는 청와대를 최우선으로 살피며 보호했다는 사실이 부하직원의 폭로로 들통 났다. 안팎에서 거센 공분이 일자, KBS 이사회는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길 사장의 해임안을 통과시켰지만 찜찜한 구석은 여전히 많다

선거 끝나자마자 KBS사장 해임, 홍보수석 교체

노조가 총파업 돌입을 선언한 상황이었음에도, 표결을 연기한 이사회가 선거가 끝난 다음날인 5일, 즉각 길 사장 퇴임을 결정한 것에선 다분히 '정치적'인 냄새가 풀풀 난다. 우선,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선거 후로 결정을 미룬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하나는 KBS 후임사장 선임을 앞두고 청와대가 홍보수석 교체 인사를 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분노의 표적이 돼 온 이정현 홍보수석 교체 과정은 영락없는 '할리우드 액션'이다. 청와대는 KBS 보도통제 및 인사개입에 주된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정현 홍보수석이 사의를 표명하자, 그 자리에 권력 편향적인 언론인 출신을 즉각 내정했다. 홍보수석 후임으로 내정된 윤두현 디지털 YTN 사장은 그동안 편향적인 언론인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이 인사만 봐도, 앞으로 권언유착을 공고히 하겠다는 청와대의 속내를 알 수 있다.

홍보수석으로 내정된 윤두현 사장은 과거 '정부 비판적인 내용에 대통령이 언급되면 안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 영상을 기사에서 빼라'고 요구하다가 결국 리포트를 일방적으로 불방시킨 전력을 갖고 있다. 만약 이를 감안해 그를 발탁한 것이라면 실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전히 공영방송을 길들여 정권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속셈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나락으로 추락한 공영방송의 공정성에 기름을 부은 꼴이나 다름없다.


'공영방송 정상화', 이제 대통령이 답변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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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환영 사장 물러나라" KBS양대노조 한목소리 5일 오후 여의도 KBS본관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안을 처리하는 이사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KBS노조와 언론노조KBS본부 조합원들이 '박근혜 사과' '길환영 해임'을 촉구하는 연대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KBS 김인규 전임 사장은 임기 내내 '정권의 낙하산'이란 소릴 들었고, 후임 길 사장은 '부역 사장'이란 오명을 안고 등장하더니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결국 불명예 퇴진을 앞두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국민이 주인인 '국민의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얼마나 어려운 현실인지 잘 일러주는 대목이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청와대와 KBS 유착관계' 폭로가 불쏘시개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KBS의 이번 사태(노조 총파업에 이은 사장 해임안 이사회 통과)는 노조 외에도 평직원과 간부 등 전 직군의 구성원들이 '청와대 방송을 국민의 방송으로 돌려줄 것'을 한 목소리로 촉구하며 나선, 한국 방송사상 유례없는 결과로 기록될 만하다.

물론 KBS 사장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는 상태지만, 대통령이 길 사장의 해임안에 사인만 한다고 해서 '국민의 방송'이 옛 모습을 되찾거나 작금의 KBS 사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리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권력의 방송'으로 돌아선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되돌아오려면 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전제돼야만 한다. 

"청와대의 뉴스에 대한 개입을 안 했던 사장이 정연주, 이병순 전 사장이었다. 뉴스 큐시트를 받기 시작한 게 김인규 사장이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정권의 KBS 통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 KBS 사장에 임명된 김인규 전 사장으로부터 시작됐으며 박근혜 정부 들어 KBS에 대해서는 이정현 홍보수석이 직접 개입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KBS 전 보도국장이 폭로한 내용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정현 홍보수석 관련 내용에 대해서도 당사자 교체만으로 일단락 지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KBS 보도 통제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또 차후에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후속·보완조치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궁금증과 의구심만 증폭될 뿐이다.

공영방송 정상화는 '산 넘어 산'인 형국이 됐지만, 공은 여전히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이제는 결단을 해야 한다. 그동안 KBS와 MBC의 양대 공영방송 사장의 해임과 선임과정에서 국민들이 똑똑히 보아왔던 것처럼, 말로는 공정성 보장과 정치적 독립을 외치면서도 늘 정치적 개입이 필연적으로 수반돼 왔던 것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디.

대선 후보시절 국민 앞에서 약속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모른 척 외면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공영방송을 얼마든지 정권의 홍보수단, 즉 관제방송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길 사장의 퇴임이 KBS 사태 해결의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발탁해 앉히면 제 아무리 드센 노조 반발과 국민적 저항도 별 것 아니라는, 그저 방송은 권력의 시녀일 수밖에 없다는 비루하고 저급한 인식이 팽배한 이상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공정성 회복은 한발 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근혜'의 언론장악 정책의 뿌리는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공영방송 사장선임의 타깃이 됐던 MBC를 보라. 지금도 '김재철 시대' 그때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KBS '국민의 방송' 복귀투쟁은 이제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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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KBS 길환영 사장의 불명예 퇴진 이후에도 '낙하산 사장' 등장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아마 청와대는 이미 KBS 사장 인선작업을 마무리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KBS 보도나 인사 등에 개입했던 길 사장은 해임됐지만, KBS의 공정성 확보와 정치적 독립,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의 복귀투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것을 실현시키기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관련법과 제도를 개정, 개선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 있다. '낙하산 사장' 등장에 때를 맞춰 반대하고 저지하며, 극렬한 저항으로 맞선다고 원천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선 뜻있는 정치인,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개선책과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혜안, 동력을 집약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방송의 주인인 국민들이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본다. 우선 공영방송 사장 선임의 첫 단추 역할을 하는 KBS 이사회와 방문진 구성에 관한 지배구조 요건부터 바꾸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추천 인사가 절대 우위인 현실에서 다수결로 사장 선임 등 중요 안건을 결정하는 비민주적 시스템을 뜯어 고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와 정치적 독립은 고사하고 늘 충돌과 마찰, 갈등이 반복될 것은 자명하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공영방송 개선책을 제시하며 공약을 이행해야 할 장본인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한 번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히 유감스럽지만, 마침 KBS 길 사장 해임을 계기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공약 이행 여부가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침묵과 헛발질 대신 이제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아야 할 차례다. 국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다.
#길환영 #KBS이사회 #이정현 #윤두현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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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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