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참... 중국에서 온 수묵화 맞아?

티엔리밍 중국화전... 학고재갤러리에서 6월 15일까지 전시

등록 2014.05.31 10:48수정 2014.05.3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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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리밍 I '도시의 소리(都市之音 Sounds of the City)' 종이에 잉크와 컬러 70×101.6cm 2009.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티엔리밍 ⓒ 김형순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에서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중국의 대표적 현대수묵화가 티엔리밍(田黎明 1955-)의 작품 33점을 6월 15일까지 선보인다. 그는 88년 권위 있는 '신문인화전'에 참가한 후 중국 '신(新)수묵'의 장을 연 선구자로 한국에선 첫 전시다.

작가를 더 소개하면 중국명문 중앙미술학원를 졸업, 1982년부턴 모교교수가 되었고 1988년 베이징국제수묵화전에서 '냇물'로 대상을 수상했다. 2008년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명예교수, 2009년엔 국가화원 부원장, 2010년부터 중국예술연구원 부원장을 맡는다. 문집으론 <햇빛에 들어가다>, <인연과 물건은 물과 같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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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리밍 I '산들바람(Gentle Breeze)' 종이에 잉크와 컬러 50.8×69.6cm 2011 ⓒ 김형순


그는 주변의 평범한 풍경 속에서 천진한 '도(道)'를 구한다. 그의 평범함 속에는 비범함도 숨어 있는 듯하다. 색을 먹 쓰듯 해 현대적 미감을 주는 수묵화를 낳는다. 또한 사람이 자연에 몸을 담고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살아가는 인생관을 보여준다.

위 산들바람이 또한 매력적인 건 계곡의 물소리와 사람의 숨소리를 함께 들려줘 관객은 이 작품을 시각보다는 청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런 소리와 움직임이 그림에 활력과 에너지를 줘 동양미의 근간인 '기운생동'도 느끼게 한다.

'물·공기·햇빛'을 소재로 공존세상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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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리밍 I '산야(山野 Mountains and Fields)' 종이에 잉크와 컬러 47.8×70cm 2012.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녀나 어린이 얼굴이 훤하다. 그림 속 시골풍경은 작가의 고향인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가 그 배경이다 ⓒ 학고재제공


전체 화풍에서 '물'과 관련성이 깊어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작가는 "오늘의 중국을 동양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맑은 물의 속성과 불순물 없는 순 중국산 천연안료를 써 그렸다"라고 말한다. 여기선 재료가 작가의 철학과 정체성마저도 규정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수묵화에는 연못, 개울, 강물, 바다의 풍경이 다수다. 투명한 연못 속에 물고기, 개울물에 발을 담고 있는 소녀들, 여름날 물가에 신선처럼 놀고 있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몽롱한 분위기 속 마치 자연의 품에 안긴 듯 편안해 보인다.

'물'은 이번 전시의 부제인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부드러운 햇살 중 하나일 뿐이다. 작가는 이같이 우주만물과 일체감 속 인간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세상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 마치 관객의 손을 잡고 어딘가 모를 이상세계로 데려가는 것 같다.

현대어로 번역된 '천인합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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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리밍 I '맑은 시내(Clean Creek)' 종이에 잉크와 컬러 69.4×70.2cm 2013 ⓒ 김형순


작가는 포토숍에서 보는 '블러(blur)'효과 같은 보일 듯 말듯 흐릿하게 하는 기법을 쓴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좀 답답할 수도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작가만의 차별화된 참신하고 독특하고 흥미로운 화풍이다.

이런 화풍은 속세와 동떨어져 평화롭고 조용한 별천지 같은 무릉도원의 영험한 분위기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동양의 겸양이라는 미덕을 찬양하는 것 같다. 또한 위 작품 '맑은 시내'에서 보듯 '장자'가 말하는 자연과 나는 하나라는 '물아일체'나 유교에서 말하는 우주와 인간이 하나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세계도 체감하게 한다.

도심에서도 '인간본위' 살리는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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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리밍 I '자동차 시대(The Automobile Era)' 종이에 잉크와 컬러 69.4×49.8cm 2006. 차의 홍수는 베이징 아침출근시간대를 연상시킨다 ⓒ 학고재제공


그의 작품을 통해 본 작가의 성품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관대해 보인다. 자신의 것을 주장하기보다는 먼저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공감도 느껴진다. 그의 작품 속에서 자연의 수려함과 도심의 번잡함은 충돌하지 않고 뜻밖에도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점이 흥미롭다. 도시의 어둡고 칙칙한 일면도 평온한 판타지로 처리한다.

또한 인상파에서 보듯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니라 빛의 인상과 작가의 주관이 감미된 듯하다. 그만의 빛과 색에 대한 예리하고 세심한 관점으로 그린 흐릿한 수묵화. 눈에 금세 띄지는 않지만 내밀한 울림을 주며 신묘한 기운을 일으킨다.

위 작품을 보면 그림이 자동차로 뒤덮여 있다. 그만큼 중국이 산업화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작가가 도시를 보는 시선이 고까운 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연이 훼손되고, 사람이 치이는 걸 보면서 인간본위를 살리고 싶다"고 말한다. 경쟁과 속도에 지친 이들에게 삶의 여백을 되찾아 보라는 뜻인가 보다.

전통을 지키되 시대정신도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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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리밍 I '도시의 점심(The Urban Lunch)' 종이에 잉크와 컬러 182×145.6cm 2012. 중국의 경제번영과 함께 일상이 급속하게 서구화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학고재제공


중국의 사회분위기는 여전히 전통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으냐고 물어보니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그건 역시 중국교육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최근 중국의 현대회화이 전 세계 미술시장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최근 작가로서 고민이 뭐냐"는 또 다른 질문에 "교육과 창작에서 자신의 최대고민은 역시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그걸 또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창조할 수 있느냐"는 대답이다. 전통 관념과 문화를 현대적 환경에 맞춰 참신한 감각으로 개발하는 게 과제란다. 하긴 고전이 없는 현대는 없고, 전통이 없는 창조는 있을 수 없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에서 미대생은 중국전통화 나오는 소제 하나를 택해 집중적으로 모사하는 훈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통을 익힌다"라고 하는데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서양화를 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도 대학에서 1년 정도는 우리 전통화를 배운다면 서양화를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도달해도 그 출구를 만들 것이다.

하여간 작가는 '도시의 점심'에서도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지만 필묵의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감성을 살려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에 맞는 패턴과 색감을 발굴해 왔다. 그렇게 자신만의 온화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성과 예리한 심미안을 뒤섞어가며 여러 모로 실험해왔다. 거기에 '조화와 공존'이라는 동방의 가치도 덧붙인다.

'도학'에 도취한 학자적인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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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리밍 I '사람과 자연(Man and Nature)' 종이에 잉크와 컬러 59.8×68.6cm 1988 ⓒ 학고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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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리밍 I '산수고사도(Painting of virtuous Scholars and Lanscape)' 종이에 잉크와 컬러 68.6×139cm 2009 ⓒ 학고재제공


이번 전시도록에서 작가를 사람을 '근본'으로 하면서 도를 취하는 방식으로 수묵화를 현대화했고, 시대의 전환기에 과감한 탐구정신과 창조성을 보인 학자적 예술가라고 서술하고 있다. 위 20년간 세월의 간격을 둔 두 작품을 봐도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 중국 개혁개방 30년 동안, 수묵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엿볼 수도 있다.

끝으로 한 가지 추가하면 한국에선 덜 알려진 가장 중국적 현대화가의 전시를 학고재에서 연다는 건 '작은 문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전시는 민간차원의 문화 교류로 비판매이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관객이 봐주는 게 중요하다. 특히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이를 통해 전통을 어떻게 현대화시킬지를 배울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학고재 갤러리 종로구 삼청동 50번지 02)720-1524 www.hakgoj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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