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5천원으로 LA 누빈 방법, 공개합니다

[해외리포트] 5달러짜리 1일 패스 하나면 하루종일 버스 이용 가능

등록 2014.04.06 13:59수정 2014.04.0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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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버스의 적자를 보존하려는 노력인지 계속해서 광고 방송이 나오고 있다. ⓒ 최현정


지난 3월 9일에서 16일, 일주일 동안 캘리포니아에 다녀왔다. LA(로스앤젤레스)에서 3일을 보낸 후 산호세(San Jose)로 이동해 일요일 아침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봄방학 맞이 저렴한 비행기표는 영하 30도 강추위에 시달리던 나에겐 광명 같은 기회였지만 싼 비행기표는 그 값을 하는 법. 생전 처음 가보는 LA 공항에 난 밤 10시가 가까이 돼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조심하란 말을 여러 번 들었던 터라, 비행기가 트랙에 닿는 순간부터 맘이 조급해진다. 첫날 숙소를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유스호스텔로 잡은 탓이다. 공항 근처 호텔서 잘까 했지만 혼자 묵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어차피 택시나 버스를 이용한다면 3일간의 동선을 고려, 첫날은 서쪽 해변가의 익숙한 배낭 여행자용 숙소를 예약하는 게 낫겠다 싶었던 거다.

수많은 언어들 틈에서 간신히 출구를 찾았다. 후텁지근한 LA 공기를 느낄 새도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얼른 현지인을 찾아 길을 물어봐야 했으므로.

"산타모니카 가는 3번 버스를 탈 건데, 어디서 타야 해?"

마중 나온 차들로 병목이 심한 도로를 정리하던 남자에게 불쑥 지도를 내밀었다. 두꺼운 돋보기를 쓴 남자는 안경 너머로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한쪽 플랫폼을 가리킨다.

"셔틀 버스C를 타고 기사에게 3번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달라고 해."

목이 턱턱 막히는 매연 속에 그나마 공항 앞 병목이 이 정도인 건 쉴 새 없이 승객을 공항 밖으로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 덕이란 생각이 들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C가 써있는 버스가 들어온다. 제일 먼저 뛰어올라 '산타모니카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외치며 요금통을 찾았다. 도착하면 알려주겠다며 뒤에 가 앉아 있으라고 손가락을 까딱하는 젊은 흑인 기사가 요금은 프리(Free, 공짜)라고 알려준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버스기사와 앞자리 아줌마가 동시에 내려야 할 곳을 알려준다.

"저기 보이지? 버스가 오면 기사에게 확인하고 타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불이 환하게 밝혀진 버스정류소로 갔다. 거기엔 나 말고 몇 명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난 하라주쿠 스타일의 양 손 가득 쇼핑백을 든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3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여기 맞지?"

일본어 억양이 진한 영어로 그렇다고 한 그녀는 곧 올 것 같다는 말도 덧붙여 줬다. 미니스커트에 루스삭스를 신은 그녀에게 이 늦은 시간 버스 이동이 괜찮은지 조심스레 물었다. UCLA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는 오사카에서 온 그녀는 쇼핑을 하고 버스로 돌아가곤 하는데 위험한 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와 같은 피부의 그녀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됐고 그녀 말대로 내가 탈 버스는 곧 도착했다.

버스 요금이 1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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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 누워있는 노숙자 ⓒ 최현정


낯선 사람의 선의만큼이나 여행 중 유념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여행 책자와 실제는 항상 다르다는 사실이다. 특히 가이드북의 버스 요금 같은 건 대표적으로 신뢰하지 못할 것. 난 주머니에 25센트 동전과 1달러(한화 약 1000원)짜리 지폐를 몇 장 넣고는 만반의 준비를 한 후, 기사에게 종이를 들이밀었다.

"여기, 산타모니카 브로드웨이까지 갈 건데, 얼마 내야 돼?"

거리마다 달라지는 요금제도 있으니 한 시간 거리의 목적지까지 정확히 밝히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기사가 집게손가락 하나를 올리며 말한다.

"1달러."

난 얼른 오른쪽 주머니의 지폐를 꺼내 수거함에 쑤셔 넣었다. 안내 책자보다 훨씬 더 비싼 경우는 있어도 싼 경우는 처음이다. 기사에게 지금 막 도착한 여행자란 말을 하며 제일 앞 좌석에 앉아 도착할 시간을 가늠했다. 다음 정류장를 알려주는 LED 표지를 수시로 확인하며.

버스는 허름한 일꾼부터 장을 보고 온 할머니, 농구공을 든 청소년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태우고 내렸다. 카드를 꺼내 찍는 이도 있었고 손가락 길이의 종이를 요금 대신 기사에게 건네는 이도 있었다. 종이 돈과 동전 몇 개를 넣은 낡은 잠바의 아저씨는 긴 종이를 건네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난 밤 12시가 되기 전,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무사히 마치고는 시차로 인해 새벽 2시가 지났음에도 아직 잠을 못 자고 있을(거라 여겨지는) 영하 30도 동네의 신랑에게 문자를 보냈다.

"LA 공항서 산타모니카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 총 비용, 단돈 1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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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지하철 역 ⓒ 최현정


다음 날 아침, 산타모니카 해변에 앉아 오늘의 일정을 체크했다. LA 서쪽 지역이니 오늘은 게티 뮤지엄, UCLA 그리고 비벌리힐스를 들르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이곳 모두를 버스로 다녀야 한다는 것. 직원에게 게티 뮤지엄과 오늘 밤 숙소인 할리우드 가는 길을 물어봤다. 유스호스텔 특성상 매우 자주 듣는 질문인 듯, 직원은 이미 인쇄된 게티 뮤지엄까지의 약도와 할리우드쪽 숙소까지 가는 버스 노선을 컴퓨터에서 프린트해 내민다. 뮤지엄까진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갈 수 있겠다.

약도에 적혀 있는 대로 1.5달러를 내고 '환승'을 외치니 기사가 길쭉한 종이를 건네준다. 이 종이면 시간제한 없이 다른 버스를 탈 수 있다. 그런데 몇 번 버스를 갈아타다 한 아줌마에게 LA에는 5달러짜리 1일 패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운전 기사에게 카드를 사겠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건네 내준다. 초기 카드 값 1달러까지 합해서 6달러만 내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이 도시를 떠나는 날까지 나흘 동안 20달러 안쪽의 교통비로 LA 곳곳을 다닐 수 있었다. 다운타운 안에선 깨끗하게 정비된 지하철까지 이용할 수 있어 빠르게 움직일 땐 제격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익숙한 지명이나 낯익은 풍경이 나오면 내려서 구경하고 부담 없이 다른 버스를 타는 식의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다. LA 한인타운은 그 유명한 할리우드 간판이 보이는 역에서 지하철로 20분 정도만 가면 된다. 차량 렌트비나 주차 공간, 기름값 같은 걱정은 접어놓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살갑게 다가온다.

저렴한 대중교통, 부담 없는 여행

저렴하게 LA 구석구석을 다니는 즐거움에 한참 익숙해 질만하니, 두 번째 목적지 산호세로 이동할 날짜가 되었다. 3주 전, LA 중앙역에서 오후 2시 반에 출발하는 볼트버스(Bolt Bus)를 예약해 놓았던 참이다. 몇 년 전 앰트렉(Amtrak) 철도를 이용해 뉴욕서 시카고, 시애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왕복 종주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처음엔 철도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시간이며 비용, 편리성을 따져보니 이 구간은 버스가 낫다는 판단이었다. 약 7시간, 거리로는 480km 정도 되는 LA에서 산호세까지의 버스 요금은 단돈 13달러. 이 장거리 버스는 메가 버스(Mega Bus)와 더불어 예약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싸지는 가격 정책으로 미 전역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도시간 교통 수단이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바라보며 달린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의 햇빛을 만끽하며 난 저녁 늦게 산호세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산호세 숙소를 나서며 난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LA만 같아라~"

어떤 이들에겐 이 비교가 불쾌할 수 있겠지만, 저렴하고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했던 LA의 여운이 강했던 탓이다. 그렇게 기원하며 숙소 앞에 있는 바트(Bart) 정류장으로 씩씩하게 향했다. 바트는 우리의 전차 같은 북 캘리포니아만의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정류장에서 난 출근 바트를 기다리는 아가씨에 질문을 건넸다. 지역 교통을 빤히 꿰고 있는 건 역시 젊은 직장인이겠다 싶어서다.

"난 어젯밤 여기 도착한 여행객이야. 앞으로 며칠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할 것 같은데, 여기 산호세에 하루 패스같은 게 있을까?"

짙은 눈매의 그 여성은 요금 자판기로 나를 데려 가더니 싱글 패스 버튼을 가리킨다. 1일 패스란에 6달러라고 써있다. '아싸~' 속으로 쾌재를 지르며 신용카드를 찾고 있으니, 그녀는 자기 지갑에서 노란 토큰 하나를 꺼내 1일 패스를 뽑아 나에게 내민다. 아니... 그냥 정보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런 경우, 나도 내 동네에서 꼭 그렇게 하리라 다짐하며 감사를 표시하면 된다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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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국어로 적힌 바트 요금표 ⓒ 최현정


이로써 산호세에서도 교통문제가 해결됐다. 난 애플 신사옥이 건설된다는 쿠퍼티노(Cupertino)의 부유함과 서부의 아이비라는 스탠포드(Stanford) 대학의 웅장함, 그리고 세상엔 얼마나 많은 IT 관련 회사들이 있는지를 실감하며 바트와 버스로 산호세 구석구석을 누볐다.

여기에 하루 9달러, 3일에 21달러 자전거까지 가세해 발품을 덜어 주었다. 모든 버스 앞면과 바트 안에는 자전거 거치대가 있다.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여유 있고 운치까지 있다. 유럽 어느 세련된 도시에서 보았던 이런 시스템은 '이곳은 인간과 자연 중심의 친환경 도시'라는 소리 없는 웅변 같아 보인다. 특히 나 같이, 시장이나 도서관이나 동네 서점, 작은 찻집 같은 데서 현지인들의 삶을 느끼고 싶은 여행자에겐 매우 흡족한 교통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산호세의 친환경 교통 시스템을 만끽하고 있는 사이, 같은 숙소의 인도 친구는 아침 일찍 캘리포니아 금문교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차를 렌트했나보다 했는데, 바트와 버스, 열차로 다녀온 거란다. 그리고는 나보다 더 열을 내며 샌프란시스코의 저렴하고 편리한 대중교통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냥, 지도 한 장과 패스 하나로 다 타고 다녔잖아. 정말 멋지지 않니?"

서민의 발, 그 이상의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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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세 바트 안엔 자전거 거치대가 있다. ⓒ 최현정


캘리포니아 유씨버클리대학 연구소에서 지난해에 나온 한 논문(Transit Service, Physical Agglomeration and Productivity in US Metropolitan Areas)은 잘 발달된 대중교통이 도시의 경제에 얼마나 이바지 하는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논문은 대중교통으로 발생하는 경제 가치를 도시 규모에 따라 매년 최소 17억에서 2조까지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저자는 인구 1000명당 버스 한 대를 추가 운용 시 19%의 노동력을 더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또 대중교통 수송량이 10% 늘 경우, 도시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6만 원에서 23만 원까지 늘어난다고도 했다.

사회 인프라로서 대중교통이 노동자들과 사업주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결과다. 이런 결과가 나온 곳이 내가 지난 일주일간 감탄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바로 그 캘리포니아였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단순히 버스 한대의 손익이 다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현재 LA시 당국의 고민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지난 2월, LA시는 향후 2021년까지 버스 요금을 $3.25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역시 재정 적자가 이유였다. 이에 맞서 LA 시내 한복판에선 '우리는 승객이다'라는 피켓을 든 시위가 벌어졌다. 요금 인상 계획에 항의하는 버스 승객 조합(Bus Riders Union in LA)의 시위다.

1994년 처음 만들어진 이 단체는 버스 이용자들의 권리를 인권과 환경 문제로 인식하고 싸우고 있다. 그래서 요금 인상은 버스 이용객들의 대다수인 히스패닉과 흑인,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 차별적인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경고한다. 이들의 조직적인 반발에 LA 시장 에릭 가세티(Eric Garcetti)도 버스요금 인상은 "경제 정의 차원의 문제"라며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1955년 12월,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벌어진 로사 파크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기억하는 정치인들에게 버스 승객 단체들의 움직임은 겁날 만도 해 보인다. 이들 단체는 LA의 심각한 공해문제와 교통 문제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으로 더 많은 버스를 저렴하고 편리하게 보급하는 것 이상이 있느냐고 묻는다. 최근 심각한 공기오염으로 무료 버스를 운영한 프랑스 파리의 예는 그들의 주장에 더 큰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민권과 환경, 약자에 대한 보호를 모토로 하는 LA 버스 승객 단체, 이들은 궁극적으로 모든 대중교통 요금의 무료화까지 끌고 갈 생각이라고 말한다. LA 버스 승객 조합원 중엔 한국인 홍보담당 김희복 할머니가 있다. 올해 아흔 두 살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를 이용한다는 그녀는 함께 일하고 있는 이들 중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제자와 증손자뻘인 어린 고등학생들도 있다고 자랑한다. 할머니는 짱짱한 목소리를 나에게 말했다.

"버스 타는 사람이 행복하면 나라가 건강해지는 것 아닌가요?"

물론, 나도 매우 동의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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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시내 자전거 주차장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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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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