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위한 '행복주택'? 여전히 불행한 '주거빈곤' 20대

정부의 '행복주택'·'행복기숙사' 실효성 낮아... 청년들 직접 '주거대안' 내놓기도

등록 2014.03.29 09:44수정 2014.03.2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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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 대학을 다니는 황서연(26)씨는 대표적인 '주거 메뚜기족'이다. 비싼 주거비 탓에, 신입생이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 총 10번 넘게 집을 옮겼다. "돈이 없어 싼 방만 찾아다녔다"는 그는 고시원, 하숙, 잠만 자는 방 등 안 가 본 곳이 없다.

7만 원이 더 싸다는 이유로 고시원 '창문 없는 방'에 살던 때를 떠올리며 그는 "집이 아니라 관에 갇힌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두 달 만에 뛰쳐나와 지금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 30만 원을 내는 원룸에 산다. 저렴한 편이지만, 산꼭대기에 위치한 데다 학교까지 걸어서 약 30분이 걸린다.

취업준비생 김태준(29·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대구가 고향인 김씨는 현재 6평 남짓한 공간에 보증금 2000만 원, 매달 38만 원씩을 내며 살고 있다. 정확히는 김씨의 부모가 월세를 내는 중이다. 계약 당시 "너 아니어도 살 사람 많다"는 집주인에게 김씨가 사정해서 깎은 돈은 2만 원. 그는 "부모님께 죄송스럽지만 취업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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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인 김태준(29)씨는 현재 6평 남짓한 공간에 보증금 2000만원, 매달 38만원씩을 내며 살고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청년의 14.7%와 서울 1인 청년의 36%가 주거빈곤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 김태준


행복주택·행복기숙사... 청년들 직접 나서 '대안 주거 공동체' 만든다

20대 청년들의 '주거 빈곤'은 오래된 문제다. 청년주거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아래 유니온)'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청년의 14.7%와 서울 1인 청년의 36%가 주거빈곤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39만 명의 청년이 최저주거기준(4.2평) 미달 주택과 지하방, 고시원 등에서 살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은진씨는 "서울시 집값과 저축가능액을 고려할 때, 사실상 청년들이 소득으로 집을 마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썼다.

박근혜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대학생·사회초년생 등 젊은 층에게 80%를 공급하는 '행복주택'과, 비용이 비교적 싼 '행복(공공)기숙사'를 통해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급 지역이 주거과밀 지역인 수도권이 아닌 외곽지역이 대부분이고, 건설 재원 마련도 민간투자 방식을 취하는 등 문제가 적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청년들을 위한 행복주택을 20만 호 짓겠다고 약속했지만 주민 반대, 대상지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지난해 말 14만 호로 대폭 축소했다. 또 전국 시도 중에서 청년 주거빈곤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임에도, 행복주택은 부산 서구·경기도 포천 등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이에 대학생 주거네트워크 등 청년단체들은 지난해 12월 당시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에서 "원안대로 20만 호를 공급하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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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선정된 목동 5호선 오목교역 앞에 붙어있는 플랜카드. 정부는 애초 행복주택을 20만호 짓겠다고 약속했지만 주민 반대와 대상지 확보 등에 부딪혀 결국 14만호로 대폭 축소했다. ⓒ 김동환


박 대통령이 '대학생 주거비 부담 해소'를 위해 짓겠다고 약속한 '행복(공공)기숙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일 단국대 천안캠퍼스(충청남도)에 첫 행복기숙사를 개소하면서 "이를 5개교로 확대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숙사 건축 예정지 중 경희대 한 곳을 빼고는 대구, 충북 등 모두 주거비 부담이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한 곳에 위치해 있다.

실효성 뿐 아니라 재원 마련 방식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지웅 유니온 대표는 "정부는 '공공기숙사'라고 말하지만, 정부 예산이 아닌 국민주택기금·사학진흥기금 등을 빌려 지었기 때문에 실상은 '민자 기숙사'와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부담을 기숙사에 입주한 학생들이 떠안고 22년간 갚아야 하는 건데, 정부는 결국 공적자금은 투입하지 않으면서 '공공'이라고 생색만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당사자들이 직접 주거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민달팽이 유니온'은 28일 저녁 주택협동조합 창립대회를 열고 '대안적 주거 공동체'를 만들기로 했다. 조합이 원룸 건물을 통째로 빌린 뒤 이를 조합원들에게 저렴한 값에 재임대하는 식이다. 독거 청년들이 각자 방에서 생활하되 주방·거실을 공유하는 '쉐어하우스' 형식도 대안으로 느는 추세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집'의 경우 건축과 대학생 세 명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유니온 활동가들은 대안주거공동체 실현을 위해 직접 오는 5월부터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건물에서 함께 생활할 예정이다. 이들은 "월세·관리비 등도 조합원끼리 서로 합의해 관리하기 때문에 주거불안은 훨씬 줄어들 것"이라며, "주거 약자인 청년들을 위해 조합이 직접 공인중개사를 고용하는 등 다양한 해결책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청년주거공동체 #주거빈곤 #청년 주거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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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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