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순방으로 '국정원 추문' 가릴 수 있을까

[取중眞담] 검찰 수사 뒤로 숨은 청와대의 의도적인 침묵

등록 2014.03.20 10:39수정 2014.03.20 11:44
19
원고료로 응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a

국정원 간첩 증거 조작 논란 속에 네덜란드, 독일 순방을 떠날 예정인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 1월 23일 인도, 스위스 국빈방문 및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참석을 마치고 귀국하는 모습. ⓒ 청와대


일명 '김사장'으로 불린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블랙요원' 김아무개 과장이 19일 새벽 구속 수감됐다. 법원이 김 과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는 검찰이 확보한 김 과장의 보고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에는 김 과장이 협조자 김아무개씨를 통해 문서 위조를 주도했다는 정황이 담겼고 김 과장은 국정원 '윗선'에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이 국정원 협조자의 진술 외에 '물증'을 확보하면서 당초 난항이 예상되던 윗선 수사는 중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특히 상하 관계와 보고 체계가 분명한 국정원의 특성상 현장 요원들이 독단으로 증거 위조를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제 검찰의 칼끝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아무개 팀장과 그 위의 단장과 국장 등 국정원 윗선을 향하고 있다.

윗선 쫒는 검찰, 계속되는 청와대의 침묵

국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유우성씨의 항소심에서 간첩 혐의를 입증하겠다며 중국의 공문서까지 위조한 사실은 주한 중국대사관의 위조 사실 확인, 검찰의 포렌식 감정, 자살을 기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의 유서에서 그 정황이 충분히 드러났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의 일탈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청와대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언급한 것은 지난 10일 "수사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한 게 전부다. 이후 청와대는 물론 새누리당 친박 핵심 등 주류들은 이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참모에게 개인 의견은 없다"며 철저하게 말을 아끼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갈 수는 없다"며 남재준 국정원장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지만 내부 강경파들의 분위기는 다르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가기관이 한 개인을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해 재판부에 제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법체제를 뒤흔드는 국기문란 사건을 저질렀지만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핑계로 국정원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 수사 뒤에 숨어 시간을 벌고 출구 전략을 가다듬기 위한 의도적인 침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는 사이 국정원이 책임을 떠넘기고 꼬리를 자르기 위한 언론플레이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땅에 떨어진 대통령의 수사 협조 지시

검찰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18일 국정원의 이런 행태를 경고했다. "협조자 김모씨가 '먼저 문서를 가져오겠다고 했다'고 진술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국정원이 일부러 언론에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수사에 협조하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마저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남재준 원장 등 국정원 수뇌부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상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검찰에서는 윗선 수사 범위를 확대해 대공수사국과 대북공작단을 각각 지휘하는 서천호 2차장, 한기범 1차장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경우 국정원의 최고 수장인 남재준 원장도 검찰 수사의 직접 영향권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남 원장이 이번 사건에 직접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관리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사건이 드러난 후에도 거짓 해명과 책임 회피에 급급했던 국정원의 좌충우돌은 남 원장이 직접 책임져야 할 문제다.

제 2의 윤창중은 국정원? 대통령 발목 잡는 국정원

박 대통령은 네덜란드와 독일 순방을 위해 오는 23일 출국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는 한미일 3자 정상회담 가능성도 거론되고, 이어질 독일 방문에서는 '통일 대박' 행보가 이어질 예정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다시 한 번 골치 아픈 국내 악재들을 뒤로하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상외교 무대에 오르게 된다. 

청와대는 내심 이번 해외순방 행보로 국정원의 증거조작 파문이 조금이라도 가려지길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침묵을 통한 청와대의 국정원 엄호가 계속될 경우 남재준 체제의 국정원은 해외 순방에서 가져올 '성과'에 먹칠을 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지난해 미국 순방의 판을 깬 것이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었다면 이번 네덜란드·독일 순방의 경우 국정원의 증거조작 사건이 그 역할을 맡을지도 모른다. 지난 1년 내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대통령에만 충성을 바친다는 국정원인 셈이다.
#국정원 #박근혜
댓글1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