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어바웃 타임', 새해인사보다 이 영화가 필요한 때

[리뷰] 진부할 수 있는 인생의 진리, 진심 어린 위로로 이야기하는 감독의 재능

14.01.03 10:23최종업데이트14.01.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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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연말연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싱숭생숭하다. 이맘때쯤 사람들은 지난 한 해의 후회스러웠던 기억을 되짚으며 새해에는 절대 그러지 않기로 다짐하고, 행복했던 일들은 해가 바뀌어도 지금처럼 계속되기를 소망한다.

해를 넘기는 의식이 돼버린 카운트다운의 외침에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담고, 새해 첫 해돋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평소에는 연락 한 번 없던 지인들이 새해 문자를 보내며 연락 좀 하라고 꾸짖는(?) 때가 지금이며, 이처럼 겉치레에 익숙한 이들과 유일하게 연을 맺는 때도 지금이다.

이렇게 형식적이고 요란한 새해의 모든 의식은 사람들에게 새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라고 강요한다. 기술의 진화로 무한 복사해서 붙여넣을 수 있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따위의 인사말은 21g의 영혼 무게만큼도 안 되는 중량으로 가볍게 전파되어 결국은 내 복을 기원 받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쓰일 뿐, 진심을 느끼기는 어렵다.

새해 달력이 탁상에 놓이고 그 안에 날짜가 12월에서 1월로, 31일에서 1일로 바뀌었다는 것 외에 작년의 어제와 새해의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새해맞이 의식을 유난스럽게 치른다. 그건 아마도 강제로 '제로세팅'된 인생을 다시 힘차게 시작할 기준 시점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시간 여행자를 통한 메시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 워킹타이틀


지난 12월 5일 개봉한 영화 <어바웃 타임>은 크리스마스와 겨울이라는 계절적 상황을 노린 로맨틱 코미디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 새해를 맞이한 지금 이 시기에 더 어울린다. 영화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남자 주인공 팀(돔놀 글리슨 분)의 사랑 이야기를 전반부에, 가족 간의 정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후반부에 배치하며 우리네 인생을 성찰하고 있다.

어둠의 공간과 불끈 쥘 수 있는 두 주먹만 있으면 과거로 이동할 수 있다는 단순하고 간편한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은 부작용도 적어서 절대 능력으로 과용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사랑과 미래,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팀에게 시간 여행 능력은 어떻게 사용될까?

성년이 된 팀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로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가문의 남자들은 성년이 되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 단, 이 시간 여행은 과거 전용이며, 그 과거는 자신의 것으로만 한정된다. 역사 속 인물을 만나 혁명을 일으키거나 여신과 사랑을 나누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팀은 이 황당한 이야기를 믿지 않다가 간단히 시험을 해보고는 첫 시간 여행지로 얼마 전에 있었던 송년파티를 선택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의 끝에서 숙맥처럼 굴다 키스 한 번 제대로 못 했던 팀은 시간 여행이 만들어 준 두 번째 기회에서 한(?)을 푼다. 시간 여행의 효용을 체감한 팀은 이 놀라운 능력을 자신의 사랑과 미래의 완성을 위해 사용하기로 마음먹는다.

<러브 액츄얼리>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리차드 커티스는 사실 각본가로서의 재능이 더 뛰어난 인물이다. 이전에 그가 집필했던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을 보면 리차드 커티스 표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엉뚱하면서 유쾌한 상황을 잘 그려낸다. 그의 영화 속 인물은 어수룩하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사랑스럽고, 그의 영화 속 대사는 결이 고와 심장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어바웃 타임>에서도 그의 이러한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인물들은 독특하고 엉뚱하지만 착하고 사랑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으며, 툭툭 내뱉어지는 대사는 단순해 보이지만 계속 곱씹게 된다.

로맨틱 코미디로 채운 전반은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작품을 기다려온 관객에게 화답하는 이야기와 상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애를 해보지 못한 한 남자가 시간 여행을 통해 상대의 정보를 미리 파악하여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 전반부의 내용이다. 감독은 이 평이한 서사 위에 남녀의 다른 심리를 상세하게 수놓아 극의 재미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런 디테일이 가장 돋보인 장면이라면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가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메리는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팀의 의견을 구한다. 팀은 건성으로 메리가 입은 옷마다 잘 어울린다고 둘러대는데, 메리는 그런 팀의 태도를 못마땅해한다. 결국 메리는 팀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맨 처음에 입었던 옷을 고른다.

이 장면에서 팀과 메리가 부딪히는 이유는 태생적으로 다른 남녀의 본성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의 진심 어린 공감을 원하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답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감독은 사람들이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을 통해 남녀의 심리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 워킹타이틀


전반부의 로맨틱 코미디가 여성 관객의 마음을 훔친다면, 후반부의 휴먼 드라마는 남성 관객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가족 간의 사랑에 집중한 후반부에서 팀은 시간 여행 능력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의 팀은 첫눈에 반한 메리와 결혼한 지금이 마냥 소중하고 행복하기에 과거로 돌아갈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다.

그랬던 팀이 다시 시간 여행 능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교통사고를 당한 동생 킷캣(리디아 윌슨 분)과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아버지 때문이다. 팀은 과거의 삶을 조금씩 조정하면 동생과 아버지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 여행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과거의 특정 부분을 바꾸면 현재도 바뀌게 되어 있었다. 결국 과거의 한 부분을 고친다고 해서 현재의 삶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과거의 조각이 현재의 나를 완성하기에, 과거의 한 부분을 바꿀 수는 있어도 인생 전체를 바꿀 수는 없었다.

영화에서 시간 여행 선배(?)인 팀의 아버지는 팀에게 행복 공식을 일러준다. 첫 번째, 다른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 것. 두 번째, 매일 똑같이 두 번 살아볼 것. 팀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하루를 열심히 살며, 똑같이 두 번 살아본다. 두 번의 상황은 똑같았지만, 팀의 마음은 달라진다. 같은 하루였지만 미리 겪었던 하루를 한 번 더 겪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행복감이 자라나게 된 것.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줄로 요약하면 '긍정적인 태도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사람을 통해, 책을 통해, 영화를 통해 수도 없이 보고 들었던 낡은 진리이지만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이 메시지를 살가운 어투로 이야기하며 힘겨운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있다.

<어바웃 타임>은 사실 완성도 측면에서는 흠결이 많은 작품이다. 시간 여행이란 소재를 간편하면서도 매력적으로 설정했음에도 다양한 상황에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고, 시간 여행의 규칙을 모호하게 설명한 부분이 많아서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갑작스럽게 변화시키며 플롯 포인트를 만들었지만, 이전에 어떤 암시나 복선도 제시하지 않아 생뚱맞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바웃 타임>은 이러한 영화적 단점에도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뚝심 있게 전하며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리차드 커티스 감독의 필력이 연출력을 압도한 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수 강백수의 노래 '타임머신'이 떠올랐다. 화자인 아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지 않도록 부동산 투자를 일러주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도록 건강을 챙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곡이다. 웃기면서도 슬픈 이 노래 가사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엄마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께 잘해야지'라고.

서두에도 밝혔듯이, <어바웃 타임>은 새해를 맞은 모두에게 필요한 조언 같은 영화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새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1월 1일을 기준 삼아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지 못해 연말에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말이다. 진부할 수 있는 인생의 진리를 진심 어린 위로로 이야기할 줄 아는 리차드 커티스 감독. 앞으로 나올 그의 영화가 더욱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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