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당'과 '시대정신'

베일 벗고 있는 안철수 신당이 나아가야 할 길은?

등록 2013.12.12 11:56수정 2013.12.1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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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안철수 신당'이 점차 그 모양새를 드러내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지난 8일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 추진 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발표하면서, 신당 창당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과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기존 정치 세력은 즉각 경계의 목소리를 냈고, 시민사회의 여론도 '기대'와 '우려'로 양분되는 모양새다.

안철수 신당이 과연 어떤 지향점을 지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있지만, 지금 신당 관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시대정신'이다. 어느 정치인이나,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정치권에서의 성공은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별다른 정치적 기반 없이, '안철수'라는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와 지지를 거의 유일한 자산으로 출범하려 하는 '안철수 신당'은 더욱 그렇다. 시대의 냄새를 제대로 맡고, 국민들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해서 현실 정치에서 구현해 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기대감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사례 배워야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참여정부는 거세게 불었던 '노풍'에 담긴 많은 이들의 꿈과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출범했다. 하지만, 뜨거웠던 국민들의 기대감은 정권 말기에는 거의 다 이탈해 버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것은 참여정부의 책임만은 아니었다. 물론 역량의 부족이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은 맞겠지만, 정치계와 언론계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기득권 구조는 두 번째 민주정부에 너무나 적대적이었고, 그것은 상상 외로 단단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정권 말기에 출범 당시 표출됐던 국민들의 기대를 거의 다 잃어버리고 좌초한 것에는, 그 당시 참여정부의 약간 어긋난 '방향 설정'이 한 몫을 했다. 참여정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의 시대정신과 과제에 있어서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 확립'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통해서, 국민의 정부 시절 어느 정도 이뤄진 가치였다. 최소한 국민들은 그렇게 판단했음에 틀림없다.

즉, 민심이 그 상황에서 민주정부를 연장시켜 준 것은, 이제는 그러한 민주주의를 내실화시키는 것에 대한 기대였던 것이다. 그 때 참여정부가 보다 집중했어야 할 일은, 민주주의의 틀보다도 속살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결과론'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국민들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 어느 정도 충족된 외피적 민주주의보다는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 등을 보다 더 강한 화두로 삼는 정권, 즉 '실제로 내 밥그릇을 채워줄 정부'를 요구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본인들이 목표로 삼은 지방 분권, 권위주의 해체 등의 영역에서는 훌륭한 업적을 냈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잘 방어해 내지 못함으로써 그 당시 강하게 요구되었던 '시대정신'은 온전히 달성하지 못했다. 만일 그 당시, 현재 강하게 요구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나 '보편적 복지' 등에도 집중해서 이슈를 개발하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면, 정권 말기의 양상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참여정부는 지금까지 탄생했던 모든 정부 중에서, 그러한 이슈들에 가장 많이 관심을 가졌던 정부였고, 실제로 큰 성과도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중점적인 타깃은 조금 다른 곳에 설정되어 있었고, 그것은 결국 이명박 정부의 탄생을 불러오고 말았다. 참여정부가 국민들이 진정 원했던 영역과는 조금 다른 곳에서 역량을 소진해 버리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가장 '반(反)서민'적이고 '친(親)재벌'적인 세력이 그 열망을 이루어줄 세력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48년 이후로 가장 나았던 정부 뒤에, 87년 이후로 최악이었던 정부가 들어섰던 이유이다.

안철수 신당이 집중해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이러한 참여정부의 사례는, 현재 출범을 앞두고 있는 안철수 신당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지금 '안풍'은 10여년 전의 '노풍'과 굉장히 비슷한 양상으로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신당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지금 안철수 신당의 명운은 87년 이후로 고착화된 지역 중심의 보수 양당 체제에 어느 정도로 창조적인 균열을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확실한 '중도 개혁형 정당'으로서,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양당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이것이 안철수 신당이 집중해야 할 핵심적인 '시대정신'인 것이다.

즉, 안철수 세력의 과제는 87년 체제와의 합리적인 결별이며, '지역 중심 보수 양당 체제'의 해체다. 바로 거기서 리더십을 발휘해내야 한다. 안철수의 새 정치가 '전가의 보도'처럼 전락되지 않으려면 이 지점에서 성과를 내야만 한다. 국민들은 지금 총체적인 기존 정치 질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적, 정책적으로 협소한 틀 내에서 지역 중심 보수 양당이 펼치는 경쟁으로 구성된 현재 한국의 정치 체제가 낳는 가장 큰 문제점은, 특정 계층이 정치권에서 대변되지 않고 유권자와 정치권 간의 긴밀한 연계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정당과 사회적 기반의 접맥이 없기에, 지금 상당수의 국민들이 '정치 혐오증'에 빠져 있는 것이다. 안철수 신당의 높은 지지율은, 그러한 '정치 불신'의 에너지가 안철수라는 정치인에게 대한 기대로 쏠린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에, 신당은 더욱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 현 정당 시스템의 문제는 그동안 민주화를 거쳐 오면서 줄곧 노정된 고질적인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화의 여정 자체가, 야권 세력과 운동 세력이 제대로 연계되지 않은 채 전개되었다. 항상 정치는, 극히 협소한 이념적 토대 위에서 소수의 엘리트 중심의 정당들이 펼치는 협상과 타협의 게임에 불과했고, 시민사회와의 접촉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국민들이 외치는 근본적인 개혁은 실종된 채, 정치권은 적절한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기득권을 보호해 온 것이다.

줄곧 정당정치를 강조해 왔고, 사회의 갈등이 정치 과정, 특히 정당을 통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해 온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 의원 측의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직을 잠시 맡았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안철수 신당이 지역 중심의 보수 양당 체제를 깨고,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긴밀하게 연결시켜 줄 정당이 될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분명한 비전 제시하고, 사회와 접목된 시민참여형 정당 만들어야

안철수 신당은 지금 막 걸음마를 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진정으로 시대정신에 맞는 정치행보를 펼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온전히 탈피하지 못한 '전략적 모호함'의 태도부터 벗어버려야 한다. 결국, 이념적 정체성과 정책적 비전을 쉽고 선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대중들이 '안철수 신당은 무엇을 추구하는 어떤 정당이냐?' 라고 물을 때,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며, 정부는 무슨 정책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A4용지 한 장 정도의 어렵지 않고 짧게 설명할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그 정당의 형식은 '거버넌스' 시대에 맞게 네트워크 시민참여형 정당으로 설계해야 한다. 국민들은 진정으로 시민들과 접목된 정당, 언제나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국민들에게 '내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정당이 있다'라는 감동을 줄 수만 있다면, 안철수 신당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안철수 의원은 세계적인 IT 전문가다. 무엇보다 온라인으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기에는 최상의 조건이다.

안철수 신당이 '시대정신'에 맞게 분명한 정책적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과 가장 밀접하게 접목된 시민참여형 정당으로 승부수를 던져서, 기존 정치권에 건전한 충격을 가하고 사회에 팽배한 정치 불신의 분위기도 지워 주기를 바란다. 확실한 것은, 사회와 가장 가까운 정당이 될수록, 가장 큰 정당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안철수 신당의 어깨에, 87년 체제와의 합리적인 결별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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