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디드 니'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석유전쟁

[해외리포트] 노스다코타 비스마르크 파우와우에서 만난 인디언들

등록 2013.10.03 19:48수정 2016.10.0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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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쥐고 일어서, 머리 속에 부는 바람, 열 마리 곰, 새 걷어차기...  

영화 <늑대와 춤을> 속의 인디언들은 아이 같은 천진한 눈을 가진 유머러스하고 정 많은 이들이다. 하지만 자연을 파괴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적들 앞에선 누구보다 용맹한 장수들이었다.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늑대와 춤을>은 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영웅에서 인디언의 친구가 된 존 더비 중령의 눈으로 본 인디언 이야기다. 영화 속, 더비 중령에게 '늑대와 춤을'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친구가 되는 인디언 부족의 이름은 수족(Siuox). 이들은 150여 년 전 미국의 다코타 지역에서 가장 큰 인디언 부족이었다.

하지만 소위 "서부 개척"이 시작되고 금광과 석탄, 철광을 차지하려는 백인들은 그들의 오래된 공동체를 파괴한다. 죽거나 고향을 등지거나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후손은 지금,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소수가 되어 살고 있다.

파우와우, 영혼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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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와우 축제 화려하게 치장한 어린이들이 춤추고 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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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댄스 대평원에 살던 인디안들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이었던 야생 닭을 형상화한 화려한 춤 ⓒ 엄재범제공


그 수족을 포함한 북미 지역 인디언 부족들이 모였다. 지난 9월 초, 노스다코타(North Dakota)주 주도인 비스마르크(Bismarck)에선 전 세계 부족연합 파우와우(44th Annual United Tribes International POWWOW)가 열렸다. 파우와우(PowWow)는 집회, 모임라는 뜻의 인디언 말로 '영혼의 리더'라는 뜻이다.

올해 마흔 네 번째인 이번 파우와우는 북미 인디언을 포함 70여개 부족, 약 1500명의 춤꾼과 드러머, 연인원 2만명의 관객이 모였다. 소프트볼 같은 체육행사를 비롯해 최고 미인을 뽑는 인디언 미인 대회 등 3일에 걸친 행사 기간 동안 다양한 이벤트들이 펼쳐졌다. 이동 시간까지 포함 최소 3일에서 일주일간 학교를 빠지고, 휴가를 내고, 농사일을 멈춘 북미 지역의 인디언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파우와우의 백미는 부족간 춤 경연대회. 9월 7일 토요일 오후, 가을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성대한 입장식을 시작으로 장엄하고 웅장한 춤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일상에서 먹고 자는 것만큼 매우 중요한 부분. 전쟁이나 사냥, 농사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이들 춤은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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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포맨씨 전쟁춤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 최현정


올해로 예순 여섯인 덕 포맨(Doug Fuhrman)은 미네소타의 화이트랜드 오지브와(Ojibway) 부족 출신이다. 깔끔하고 화려한 젊은이들의 매무새와는 달리 그의 가죽과 무명 천 옷엔 손때가 묻어 있다. 매년 아내와 함께 이 행사에 참가해 온 그의 움직임엔 경륜이 묻어난다. 바삐 움직이는 포맨씨와는 달리 그의 아내는 캠핑 의자에 앉아 채비하는 남편을 흐뭇하게 지켜볼 뿐. 그녀의 눈길에도 경륜이 묻어난다.

다운 클레이모어(Daun Claymore)는 TAT(Three Affiliated Tribes)라는 3부족 연합 공동체에서 온 청년이다. 만단(MANDAN), 히다짜(HIDATSA), 아리까라(ARIKARA) 부족의 대표로 이번 행사를 위해 6개월 전부터 준비했다 한다. 청년 부분 참가를 위해 또래 친척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경연대회에 입을 옷들도 모두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하루 전 캠핑카로 이 곳에 온 이들은 서로의 옷 매무새와 장식을 다듬어 주며 끈끈한 형제애를 자랑했다. 이들 친척 중 가장 먼저 경연에 나가는 둘째 오빠 다운을 위해 자스민(Jasmine Claymore)과 테오(Theo Claymore), 다리안(Darian Claymore)은 행운을 빌어줬다. '라스미니어'란 말로 말이다.

이렇듯 연령과 성별, 부족을 초월한 이번 행사의 대미인 댄싱 경연대회가 펼쳐졌다. 제일 먼저 나이든 참전 군인들이 부족의 깃발을 들고 입장한다. 용맹함과 희생, 충성을 높이 평가하는 인디언들에게 노병들은 존경스러움과 존경 그 자체이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한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행사장에서 만난 알지 마톡(Algie Mahto)씨도 한국과 가까운 오끼나와 미군 부대서 근무한 경력을 자랑하며 자신들의 축제에 온 낯선 한국인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모든 부족들을 소개하는 긴 입장식 후, 네이티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목소리를 모아 '어너링'이라는 그들의 애국가를 합창했다. 기도같기도 하고 우리의 산조같기도 한 이 노래에 대해 마톡씨는 그들의 선조와 그들을 지켰던 용사들을 위한 노래라고 나즈막히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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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족 연합 출신의 친척들 젊은 청년들의 열정이 눈에 띈다. ⓒ 최현정


행사가 시작됐다. 부족원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이가 사회자로 나와 춤 이름을 호명한다. 이에 맞춰 준비한 참가자들은 무대의 중앙에 나와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악기는 관중석 사이 사이에 놓인 북이다. 거대한 북 주변에 4-5명의 남자들이 둘러 앉아 가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른다. 천지를 흔드는 듯한 그 소리에 빠져 나도 한 번 스틱을 잡으려하니,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심장 박동같은 북소리에 맞춰 고음과 쇳소리가 섞인 노래를 남자들이 부르고 그 소리에 맞춰 참가자들은 춤을 춘다. 누가 가장 열정적이고 멋진 동작으로 춤을 추는지 다수의 심사위원들은 춤꾼 못지 않게 열심히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심사를 한다.

파우와우에선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하고 기뻐하는 전쟁춤(war dance), 여러 사람들이 시계방향으로 돌며 함께 추는 원춤(round dance), 야생닭의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는 닭춤(chicken dance), 북쪽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남녀 함께 추는 토끼춤(rabbit dance), 여럿이 한 줄로 움직이는 것이 마치 뱀과 같다 하여 붙여진 뱀춤(snake dance), 관중들도 함께 즐기는 담요춤(blanket dances) 등이 있다.

역동적이고 동작이 큰 그래스댄스(grass dance)는 주로 남자들의 춤인데, 이 춤을 젊은이들이 현대식으로 다시 표현한 것이 팬시댄스(fancy dance)이다. 여성 참가자들의 대결도 뜨거운데, 아름다운 선과 부드러움, 우아함을 강조하는 이들의 정적인 춤은 힘과 강인함을 강조하는 남성 춤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후손들

행사장 밖에는 수십기의 부대시설들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며칠간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식당들이 가장 성황을 이뤘고 다양한 기념품 점과 전통 의류, 신발, 가방 매장은 물론 교회의 전도 부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산림청 홍보 버스의 산불방지 만화는 꼬마들에게 인기였고 초록색 스타벅스 마크의 천막 앞에는 젊은 인디언 청년들이 줄을 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다.

악몽을 좇는 부적과 동물뼈로 만든 목걸이를 파는 상점에는 노란 스폰지밥 인형이 자연스레 매달려 있고 기병대들의 총과 수갑도 별 어색함없이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에게 팔리고 있다. 이런 복잡한 부스들속에서 가장 내 눈에 띄었던 곳은 내무부 산하 아메리칸 인디언 특별 신탁 오피스(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Office of the Special Trustee for American Indians). 이 곳은 인디언 보호구역안의 유전 개발을 위한 정보와 교육을 지원하고 업체들과의 연결을 책임지는 곳이다.

텍사스에 이어 미국 내 최고 원유 생산지역이 된 노스다코타 주에선 유전 개발과 관련,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 이들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특히 '보호구역'이란 이름 하에 도심과 멀리 떨어진 황량한 지역에 몰려 살던 인디언들의 거주지가 주로 유전지대에 속해 개발되고 있는데, 조상들이 물려 준 땅에서 어느날 갑자기 거액의 달러를 매달 입금받게 된 이들의 생활은 매우 복잡하다.

좋은 차와 좋은 집으로 변신하는 이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인디언들이 도박과 알코올, 마약 중독으로 삶이 피폐해지는 게 더 많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부스를 책임지고 있는 만단족 인디언 출신 켈리는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개발과 관련한 교육과 정보는 필수적이라고 부르짖는다. 어쨌든, 보호 구역안의 유전 개발이 과연 이들 원주민들에게 약일지 독일지는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없는 듯했다.

운디드 니의 유전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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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 산하 아메리칸 인디언 특별 신탁 오피스 보호구역 안의 유전 개발 상담을 해주고 있다. ⓒ 최현정


이번 파우와우가 열린 비스마르크에서 차를 몰고 2시간 정도 남쪽으로 가다보면 사우스다코타 주의 파인 리지 보호구역이 나온다. 이 곳은 약 300여명의 수족 인디언들이 학살당한 곳으로 인디언과 백인 기병대 사이의 마지막 전투 장소다. 그들의 추장인 '앉아있는 황소(sitting bull)'가 백인에 의해 살해당하고 어린이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던 수족은 이 곳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고 결국 항복해야 했다.

이날 파우와우에서 만난 이들 인디언들은 기병대에게 간신히 살아남은 그들의 후손들이다. 그들의 조상은 운디드 니(Wounded Knee)를 그리워하며 눈을 감았다. 150년전 그때는 금광과 철광석, 곡창지대 확보가 기병대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후손들은 석유와 석탄을 원하는 이들과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 파우와우에 모인 이들의 후손들이 어떤 전략으로 어떤 결론을 보여줄지 매우 궁금하다. 지금 운드디 니에선 석유를 둘러싼 기업과 원주민 사이의 또 다른 싸움이 조용히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싶다.

"라스미니어…."
#파우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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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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