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충돌 우려' 한·중·일...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

꾸준히 지속되는 시민사회 교류... 이젠 '지역화' 지향해야

등록 2013.09.08 16:22수정 2013.09.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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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9일 일본 정당 지도자 토론회에 참석한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 ⓒ 연합뉴스/EPA


최근들어 일본 아베(安倍晋三) 정권의 우경화 일방주의가 단기간 내 행동전략으로 바뀌면서 두드러지고 있다. 충분한 국민적 논의조차 생략한 채 말이다. 1981년부터 집단적 자위권은 매번 위험으로 판정돼왔으나 아베 정권은 해석 변경을 통해 이를 합헌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헌법개정이 쉽지 않는 현실에서, 우선 당장 헌법해석권을 내각과 수상에게 위임시켜 집단적 자위권을 도입할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외무성·방위성으로 분산돼 있던 부처별 대외정책을 묶어 본격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포괄할 지침인 국가안보전략(NSS)을 연말까지 작성할 예정이다. 또한 재정 위기로 감축해오던 방위 예산을 내년에는 3%나 늘리고 내각정보국을 신설할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센카쿠열도를 겨냥한 중국의 해공군 군사력의 증강, 향후 10년간 미국의 1조 달러 국방비 삭감 등 미일 방위분담의 필요성을 들면서 일본 정부는 군비증강을 공공연히 정당화시키고 있다.

불과 수년 전 일본민주당 하토야마(鳩山由紀夫) 정권이 내걸었던 '우애정신'과 '동아시아 공동체론'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왜곡된 내셔널리즘과 군비증강이 횡행하면서 주변국의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항공모함급 헬기 수송함을 건조하고, 유사시 투입될 해병대 창설을 검토하면서 실전용 상륙연습을 실시하고 있지만 연간수입이 200만엔이하인 저소득층이 무려 1000만 명을 넘는 현실에서 민생현장은 도외시한 채 대기업위주인 아베노믹스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자로 피해를 은폐한 채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흘려보내는 처지에 아베 수상은 중동국가에 원전을 팔고자 세일즈 외교를 하고 있다.

한일간 화해협력을 위한 노력

오죽하면 <아사히신문>에서 70대 노년의 변호사가 "아베 정권은 일본을 되찾는다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먼저 양심을 되찾으라"고 호소할까. 그 변호사는 "평화헌법에서 가꿔온 양심을 되돌려 찾고, 화해협력과 민생안정에 힘쓰라"고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6년 평화헌법 제정 70주년을 맞는다.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전 수상의 말처럼 일본국민의 '피와 살'이 된 평화헌법을 잘 지키고, 방사능 오염수 확산을 막고, 식품 안전을 통해 한국·중국의 신뢰를 얻는 게 일본이라는 나라에 더욱 바람직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아시아에서 한·중·일의 갈등과 대립은 영토와 역사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군사적 충돌 위기마저 우려될 정도이다. 독일과 프랑스간 화해 협력은 정치규범과 제도, 단일시장과 단일화폐,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 유럽 시민권과 이민의 자유를 성취한 유럽연합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현실과 유렵연합의 사례를 비교해 보면 부끄러운 나머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다행히도 한일간 화해와 협력을 위한 양국 정부와 시민단체간 상호교류와 지적 대화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오고 있다.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1993년 고노(河野)담화, 아시아각국에 끼친 피해에 대한 반성과 평화를 맹세한 1995년 무라야마(村山)담화는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1998년 김대중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恵三) 일본 수상간 한일파트너십 선언을 비롯해, 일본대중문화 개방(1998), 한일문화교류회의 설치(1999), 한일역사연구 공동위원회 설치(2002), 한일 국민교류의 해(2002), 한일 우정의 해(2005), 한일축제 한마당(2005), 한일 관광교류의 해(2008), 한일신시대 프로젝트(2009), 한일강제병합 100년에 대한 간 나오토(菅直人) 수상담화(2010), 문화교류 5대프로젝트(2011) 등 거의 매년처럼 양국간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들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지역주의와 지역화

동북아 국가와의 화해상생 그리고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많은 일본시민들과 양심세력은 한일 양국의 문제를 뛰어넘어 동아시아형 지역통합의 관점에서 한일 교류 및 협력을 염두에 뒀다. 국경을 뛰어넘어 사회적·경제적 통합을 이뤄낸 유럽 연합과 비교해 볼 때,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중앙정부 주도의 지역통합은 중장기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체제갈등·이념대립·역사논쟁·영토분쟁으로 점철된 동아시아의 분열상을 극복하고 지역통합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식인과 시민단체·지자체가 주도하는 한일교류와 활발한 경제협력 등 다양성과 중층성을 지닌 점진적인 네트워크 구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 갈등이 심화되는 요즘, 한일 양국에서 풀뿌리 교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은 역설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 지역통합을 위해 국가주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역주의가 아닌 지역화로의 접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유럽연합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중앙정부 주도의 인위적인 지역통합은 불가능하다. 지역화 현상은 동아시아의 시민단체, 지식인, NPO/NGO, 지자체 등이 주도하는 교류 증가가 불규칙적이고 복선적인 네트워크로 발전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지역통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역화(regionalization)와 지역주의(regionalism)는 다르다. 지역화는 제도적인 협력틀보다도 인적 교류, 무역과 투자, 노동이동의 흐름이 활발해져서 그 결과로 지역간 상호의존이 증가하는 것이다. 지역주의(regionalism)는 유럽 연합의 경우처럼 중앙정부 주도의 정치·경제 통합이라는 제도적 과정을 거치면서 양국간 또는 다국간 교역과 정치적 제도융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역화는 특정 지역에서 인적 교류의 증대를 의미한다. 정체성과 미래의 운명에 대한 공통인식을 표현하고 집합행동을 유도하는 기구의 설립을 의미하는 지역주의와는 뚜렷이 구분된다.

중앙정부가 주도한 지역주의는 강제성을 보이는 제도적인 틀로서 묶어내는 것이다. 반면 지역화는 시민과 지역간 교류 증대로 서서히 제도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지역화는 점진적인 대외개방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겨나기 때문에 때때로 시장유도형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역경제권인 환황해경제권이나 한일해협권은 전형적으로 사례로서 자연경제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한일 갈등에도 부산경남권과 후쿠오카 등 규슈지역과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환동해권은 이질적인 정부체제의 공존, 국가간 영토갈등, 역사인식의 격차로 인해 유럽 연합식의 제도적인 지역통합이 아닌 교류와 협력의 축적이 더욱 기대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통합을 위한 지역화 전략

동아시아 지역통합은 지역주의가 아닌 지역화의 관점에서, 중앙정부 주도가 아닌 시민교류와 지적대화의 관점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리적 근접성에 따른 지역화 과정이 다양한 조직과 채널간 지적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상호이해와 문화 교류, 문화적 다양성의 수용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냉정한 국제정치의 역학 속에서 중앙정부와 대기업은 역사인식·영토분쟁·이익추구라는 기존 구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종교·문화·평화·통합 등의 많은 실험을 거쳐온 유럽 연합과 달리, 동아시아 지역은 다양성과 원심력으로 인해 단기적인 지역통합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유럽형 지역주의(regionalism)보다 동북아형 지역화(regionalization)가 중장기적인 지역통합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동북아 지역통합을 위해 아래로부터, 점진적으로 시민교류와 지적대화를 확장시켜 공동의 이해와 합의를 모색해가는 과정자체를 중시해야 할 때다. 내셔널리즘과 군비증강이 우려되는 현실 속에서도, 더욱더 동북아 지역 내 시민교류와 지적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일 양국의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양국의 역사, 영토갈등을 완화시키면서, 녹색환경·지역개발·교육과 다문화·저출산고령화·사회적기업·개발원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의견을 교환하며, 비교와 학습을 통한 상호발전에 노력해야 한다.

한일 양국간 상호교류에 그치지 않고, 필요하다면 다자간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로써 동북아 지역과 세계를 향한 공통의 대안과 비전을 설계해야 한다. 동북아 군비경쟁의 우려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동북아 지역통합에 대한 기대도 더욱 높아지게 된다. 보다 냉철한 현실감각과 아울러, 차세대를 위한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열정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양기호 님은 성공회대학교 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아베 #일본 우경화 # 지역화 #지역주의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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